[인문자의 영화 이야기⑦ | 인간·문화·자연] '왕과 사는 남자' 소헌왕후, 현덕왕후, 정순왕후, 정희왕후 : 네 왕후가 견딘 조선의 구중궁궐
아브라함 곽 입력 2026-02-28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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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관객을 향해 가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겉으로 보기에 남자들의 이야기다. 세조와 단종, 계유정난과 복위운동, 충신과 간신, 칼과 피. 그러나, 이 영화가 진정으로 울림을 갖는 이유는 그 장면들 뒤편에 보이지 않는 얼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얼굴들은 대부분 여인들이다. 어머니로, 아내로, 며느리로, 왕후로 불렸던 사람들. 왕의 결단은 순간이지만, 왕후의 운명은 평생이다.
칼은 한 번 휘둘리면 끝나지만, 눈물은 세대를 건너 흐른다. 오늘 우리는 세종과 문종, 세조와 단종이라는 네 왕을 둘러싼 네 왕후—소헌왕후, 현덕왕후, 정순왕후, 정희왕후—의 시간을 따라가 본다. 영화가 남자의 권력을 보여주었다면, 우리는 그 권력의 뒤편에서 무너지지 않으려 버틴 여인의 인간적 무게를 살펴보려 한다.
1. 소헌왕후 ― 나라의 뿌리를 낳은 어머니
세종의 비 소헌왕후 심씨는 조선 왕통의 근간을 이룬 인물이다. 문종과 수양대군(훗날 세조), 안평대군, 금성대군 등 여러 왕자를 낳았다. 그녀의 품에서 자란 형제들이 훗날 서로의 운명을 바꾸는 칼을 들게 될 줄, 국모는 상상이나 했을까.
세종의 치세는 빛났다. 훈민정음 창제와 반포, 과학기술의 진흥, 집현전의 학문적 번성. 그러나 그 화려한 시대의 중심에서 소헌왕후는 조용히 자식들을 키웠다. 큰아들 문종은 학문과 문치의 길로, 둘째 수양대군은 강단과 결단의 길로 성장했다.
영화 속에서 세조의 냉혹한 눈빛과 단종의 맑은 얼굴이 교차할 때, 우리는 그 근원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 모든 서사의 출발점에는 한 어머니의 자궁과 눈물이 있었다는 사실을. 소헌왕후는 조선의 미래를 낳았지만, 그 미래가 서로 충돌할 운명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왕조는 혈통 위에 세워지지만, 혈통은 결국 인간의 몸 위에 세워진다. 소헌왕후는 조선이라는 거대한 구조의 가장 깊은 뿌리였다.
2. 현덕왕후 ― 아이를 남기고 사라진 어머니
문종의 비 현덕왕후 권씨는 단종을 낳고 며칠 만에 세상을 떠났다.그녀의 영혼은 저승에서도 가슴조리며 어린 단종의 일생을 지켜보지 않았을까.아이의 첫 울음과 어머니의 마지막 숨이 맞물린 비극이었다.
어머니 없는 왕손.
그것이 단종의 첫 운명이었다.
문종은 병약했고, 즉위 2년 만에 승하한다. 열한 살의 어린 단종이 왕위에 오르자, 궁궐에는 이미 숙부 수양대군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계유정난이 일어나고, 수양대군이 김종서와 황보인을 제거하며 권력을 장악한다. 그 후 2년, 단종은 숙부에게 왕위를 내준다.
그러나 비극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단종 복위운동이 실패한 뒤, 세조 정권은 연좌의 칼날을 외가로 확장했다. 현덕왕후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었으나, 사후에 신분이 격하되는 수모를 겪는다.
경기 안산의 능은 옮겨지고 파헤쳐지며, 훗날 중종 때에야 복위되어 문종과 구리 동구릉 합장된다.시신은 세조에 의해 훼손돼 시신없이 합장돼 있다고 전해진다.
죽은 자의 무덤마저 편치 못했던 시대.그것은 권력이 불안했다는 증거다.
영화 속 단종이 눈물을 머금고 세조를 바라보는 장면을 떠올려 보자. 그 눈물은 단순히 조카의 것이 아니다. 그 뒤에는 어머니를 기억하지 못하는 아들의 외로움이 겹쳐 있다. 현덕왕후의 부재는 단종의 정치적 고립을 상징한다.
어머니 없는 왕.
그것은 조선의 가장 연약한 순간이었다.
3. 정순왕후 ― 남겨진 자의 시간
단종의 비 정순왕후 송씨는 열세 살에 왕비가 되었다. 그리고 열여섯에 남편을 잃었다.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로 유배된다. 홍수로 청령포를 떠나 관풍헌으로 거처를 옮긴 뒤, 1457년 11월 16일, 그곳에서 죽음을 맞는다. 나이 열여섯. 그날 이후 정순왕후의 시간은 멈춘 듯 이어졌다.
왕비였으나 궁궐을 떠났고, 남편은 역적으로 불렸으며, 이름은 기록에서 지워졌다. 그러나 그녀는 살아남았다. 팔십이 넘는 나이까지, 남편을 기억하는 사람으로 남았다.
영화는 단종의 마지막을 숙연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그 이후의 시간은 보여주지 않는다. 그 긴 세월, 남편을 잃고도 살아야 했던 왕후의 시간.어떤 죽음은 순간이지만, 어떤 고독은 평생이다.
정순왕후는 단종이 복위되기 전까지 역적의 아내였다. 복위된 뒤에도 그녀는 다시 왕비로 돌아갈 수 없었다. 궁궐은 이미 다른 질서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평생을 단종과 헤어진 청계천 영도교와 인근 동대문 근처서 삯바느질로 연명하며 견디어냈다.그녀의 침묵은 패배가 아니라 사랑의 인내였다.
그녀의 생존은 저항이자 단종을 기리는 지고지순한 사랑이었다. 왕조의 기록은 왕의 승하일을 적지만, 왕후의 고독한 나날은 적지 않는다. 정순왕후는 기록되지 않은 시간을 헌신과 사랑으로 견딘 황후다.
"열여섯 이 내신랑, 단종은 이제 하늘나라에서 이 늙은 할머니 신부를 알아볼 수있을까"라고 읊조리며 한많은 셍을 마감했다. 오죽했으면, 그녀가 잠든 남양주 사릉의 소나무들은 단종이 잠든 영월 장릉을 향해 자란다고 하지 않는가.
4. 정희왕후 ― 권력의 곁에서 균형을 잡은 여인
세조의 비 정희왕후 윤씨는 조선 권력사에서 결코 가벼운 인물이 아니다.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킬 때, 그녀는 궁중의 중심에서 가문과 세력을 묶는 역할을 했다.
세조가 즉위한 뒤에도 왕통의 안정은 그녀의 몫이었다. 장남 의경세자가 꿈속에서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의 저주를 마주하고선 병환이 깊어져 열아홉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서, 세조의 정치적 불안은 더욱 깊어졌다.그리곤 두 달후 단종은 영월 관풍헌에서 사약을 받는다.
정희왕후는 이후 손자 성종을 보필하며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칼은 권력을 얻을 수 있지만, 칼로 왕조를 유지할 수는 없다. 왕조를 유지하는 것은 질서와 제도, 그리고 왕통이다. 정희왕후는 바로 그 ‘질서’의 편에 서 있었다.
현덕왕후와 정순왕후의 처우와 복권 문제에서도 비교적 온건한 태도를 취했다는 전승이 남아 있다. 세조가 냉혹한 결단의 군주였다면, 정희왕후는 권력의 후면에서 균형을 잡는 인물이었다.
영화 속 세조의 강한 장면들 뒤편에는, 정희왕후의 침착한 시선이 겹쳐진다.
권력은 혼자 완성되지 않는다.
왕의 결단 뒤에는 왕후의 계산이 있다.
5.왕들의 전쟁, 왕후들의 시간
소헌왕후는 왕통의 뿌리였고, 현덕왕후는 출산과 죽음으로 비극의 서막이 되었으며, 정순왕후는 남겨진 아내의 시간을 견디었고,정희왕후는 권력의 균형을 붙들었다. 네 여인은 같은 궁궐을 살았지만 서로 다른 계절을 살았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세조와 단종의 충돌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러나 그 충돌은 네 왕후의 운명까지 흔들었다. 무덤이 파헤쳐지고, 신분이 격하되고, 남편이 죽고, 자식이 잃어졌다. 왕의 전쟁은 하루의 사건이지만, 왕후의 비극은 세대의 기억이다. 역사는 왕의 이름으로 쓰인다. 그러나, 인간의 깊이는 여인의 눈물로 완성된다.영화가 끝나고 극장의 불이 켜질 때, 우리는 묻게 된다.
“누가 옳았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오래 견디었는가”를.
조선의 네 왕후는 권력의 승패를 넘어 인간의 존엄을 보여준다.
소헌왕후의 모성,
현덕왕후의 비극,
정순왕후의 인내,
정희왕후의 균형.
이 네 이름을 기억하고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왕과 사는 남자의 이야기를 완성한다.
왕은 역사를 만들고, 왕후는 그 역사를 견딘다.
그 견딤이 있었기에, 조선은 무너져도 다시 일어섰고, 비극은 있었으되 인간은 남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단지 권력의 서사가 아니다.인간과 문화, 그리고 시간의 서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