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글로벌비지니스연구센터 원장]
새해가 시작한 지 이제 겨우 두 달이다. 하지만 세상은 바뀐 것이 없고 좋아질 기미보다 나빠질 징조가 더 많아 보인다. 정확하게 꼬집으면 확실성보다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경제 주체들의 불안감이 가중된다. 모두가 앞으로의 세상이 어떻게 바뀔 것인가에 대해 걱정한다. 우리의 일상에서 더 중요한 것은 바뀌는 것보다 바뀌지 않는 것에 대해 통찰력을 가지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바람과는 다르게 세상은 예측할 수 없는 돌발변수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결국 세상에서의 경쟁과 승부는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에 대한 균형적인 이해와 전략적 판단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누가 경우의 수를 읽는 예지력과 순발력이 뛰어나냐에 따라서 기울기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무역에서 또 다른 변수가 생겨났다. 미국 연방 대법원이 IEEPA(국제긴급경제권한법)에 근거한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및 펜타닐 관세에 대해 위법 판결을 내렸다. 이유는 관세 부과는 행정부가 아닌 의회의 전속 권한이라는 이유에서다. IEEPA는 국가 비상사태 시 대통령에게 수입을 ‘규제’할 권한을 부여하고 있지만, 명시적으로 ‘관세’나 ‘부담금’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판결의 취지다. 트럼프 측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신속하게 대체 카드인 플랜 B를 꺼내 들었다. 임시 카드인 무역법 122조를 근거로 최대 관세율 15%의 글로벌 관세를 법적 최장 적용 기간인 150일간 발효하겠다고 발표했다. 한편으로는 특정국을 지정하여 보복 관세를 부과하는 무역법 슈퍼 301조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초점은 자연스럽게 향후 불확실성으로 옮겨가면서 미국을 비롯한 각국 기업과 언론의 대응 추이가 주목된다. 트럼프발(發) 관세 정책에 대한 여론의 부정적(64%) 기류를 반영하듯 미국 업계는 일단 대법원의 판결을 반긴다. 미국 경제에 긍정적 청신호가 될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유로나 파운드 등 주요 통화 대비 달러 가치가 0.2% 하락했지만, 미국 증시는 상승하는 등 금융 시장의 혼돈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다. 트럼프 측은 무효가 된 세율과 구조를 신속하게 재조정하여 관세 조치의 연속성에 방점을 두고 강력한 물리력을 동원할 것으로 예상이 된다. 분명한 점은 트럼프 관세 정책이 오는 11월 중간 선거에서 심각한 악재가 될 것이고, 전세 반전을 위한 트럼프 사단의 무리수는 진정되지 않을 전망이다. 유권자의 선택마저 다음 대선(大選)에 부담이 없는 트럼프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도 있다.
다음 단계는 이번 판결에 대한 각국의 반응과 이들의 노선 정리로 촉각이 모인다. 다만 섣부른 행동이 화를 자초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모습이다. 신중 모드인 것은 트럼프의 남은 카드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돌출 행동을 하다가 연방 대법원도 막을 수 없는 슈퍼 301조의 칼날에 직격탄을 맞을 수도 있다. 중국은 내심 웃는다. 트럼프의 협상력이 약화하여 중국에 버틸 힘이 더 커지고 있다고 판단한다. EU는 더 나빠지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의외로 차분하게 상황을 지켜본다. 반면 인근국 캐나다는 희색이 만연하나, 멕시코는 오히려 북미무역협정(USMCA)에 또 다른 불똥이 튀지 않을까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일본은 공식 입장 발표를 자제하고 대미(對美) 투자를 약속대로 이행할 것임을 재천명했다. 자동차나 철강·알루미늄 등 품목별 관세는 이번 판결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한·미 관계 살얼음판’, 미국 제조업 재건엔 한국 아닌 일본·대만도 상시 대기
한국 정부도 일본과 거의 같은 입장이다. 관세 변경에 연연하지 않고 미국과의 우호적인 입장을 견지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내부적으로는 민간 합동 회의를 열면서 대응책에 대해 긴밀하게 움직이는 모양새다. 약속된 투자 이행 지연으로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를 15%에서 25%로 인상하겠다고 한 차례 으름장을 놓은 적이 바로 엊그제라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다. 본인이 코너에 몰릴수록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는 트럼프의 성격을 고려하면 특히 그렇다. 현재 한·미 간에 형성되고 있는 전반적 기류를 감지하면 결코 안심할 상황이 아니다. 반면에 일본의 다카이치 정권은 미국에 더 가까이 밀접하면서 밀월 관계가 만들어지고 상대적으로 중국과는 대립각을 더 키우고 있어 한국 정권의 포지셔닝을 난처하게 한다.
현재의 동북아 안보 상황을 고려하면 한국을 비롯한 일본과 대만이 트럼프의 미국에 경제적 압박을 외면하거나 거부할 수 없는 노릇이다. 갈수록 중국의 힘이 세지고, 북한의 핵보유국 인정이 높아지면서 중국-러시아-북한의 위협이 실시간으로 현실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의 기능이나 역할도 바뀔 수 있다는 시그널이 계속 나온다. 일본은 전쟁 가능한 국가로의 복원에 가속 페달을 밟고 있으며, 중국의 대만 침공 시나리오는 끊이지 않는다. 별수 없이 대만은 미국에 더 밀착한다. 이와 비교해 한국의 포지션은 애매하다. 정부 내부적으로 자주파와 동맹파로 나누어져 힘겨루기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공공연하게 들린다. 미국이나 일본보다는 중국이나 북한에 더 가까워져야 한다는 논리가 자주파들의 주장이고 이들이 또 득세하고 있다는 현실이 안타깝다.
미국에 대한 투자 이행 약속 지연을 두고도 말이 많다. 트럼프가 수세에 몰려 상황 반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인식한다면 큰 오산이다. 이번 미국 대법원의 판결과 우리 정부의 투자 이행은 전혀 별개 사안이다. 국익을 챙기겠다면 미국 시장에서 이익이 날 수 있는 투자 여건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에너지 수입선 전환을 통한 공급망 다변화나 미국 시장에서 생겨나는 신규 수요를 우리 기업이 선점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미국이 제조업 부활을 하기 위해 서두르고 있는 반도체나 조선의 경우 한국 기업에만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고 대만이나 일본 기업도 거의 대등한 기술력을 갖고 있다. 설사 우리가 배제되더라도 미국의 재건에는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북한이나 중국 눈치를 보며 미국 혹은 일본과의 협력이나 훈련을 꺼리면 경제 전선에서까지 악영향이 미칠 수 있다. 한·미 관계가 여전히 살얼음판이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 박사 △KOTRA(1983~2014년)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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