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설 I 진리·정의·자유] 5·18의 진실이 법과 상식의 이름으로 돌아왔다

역사는 해석될 수 있어도 조작될 수는 없다. 특히 국가 권력이 시민의 생명과 존엄을 짓밟은 비극이라면, 그 진실은 어떤 변명과 수사로도 흐릴 수 없다. 대법원이 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하고 관련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판단을 확정한 것은, 단순한 손해배상 사건의 종결이 아니다. 민주주의가 스스로의 기억을 지키기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법치가 허위의 유통을 어디에서 멈춰 세울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선언이다. 소송 제기 이후 9년 가까운 시간 끝에 내려진 결론이어서 더욱 무겁다.

이번 판결의 요지는 명확하다. 회고록에 담긴 핵심 표현들, 즉 북한군 개입설, 계엄군의 헬기 사격 부인, 총기 사용의 정당화 같은 주장들이 객관적 근거가 없는 허위 사실로 증명됐다는 것이다. “사실로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는 항변 역시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진실을 가장한 허위는 의견이 아니라 침해이며, ‘회고’라는 외피를 썼다고 해서 책임이 면제되지 않는다는 원칙을 대법원이 재확인한 셈이다.

또 하나 주목할 대목은 피해자 특정에 관한 판단이다. 회고록이 5·18 단체들의 명칭을 직접 적시하지 않았다고 해서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는다는 주장은 배척됐다. 통상적 독자라면 해당 표현이 누구를 겨냥하는지 알아차릴 수 있고, 그러한 방식으로 사회적 평가를 훼손했다면 명예훼손의 피해자로 특정할 수 있다는 취지다. 허위는 늘 교묘한 우회로를 찾는다. 이름을 직접 부르지 않더라도, 독자가 충분히 식별할 수 있게 겨냥해 상처를 내고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번 판결은 그 우회로를 법이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신호다.

배상 책임의 귀착 또한 상징적이다. 전 전 대통령 사망으로 소송을 승계한 부인 이순자 씨와 회고록 발간·판매에 관여한 아들 전재국 씨에게 총 7천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단이 확정됐고, 왜곡된 일부 표현을 삭제하지 않고서는 출판·배포를 금지하도록 했다. 금액의 많고 적음이 본질은 아니다. 핵심은 “허위의 유통을 멈추라”는 명령이다. 왜곡된 기록이 계속 시장과 서가를 떠돌며 피해자와 유족을 2차 가해로 몰아넣는 현실을 사법이 더는 용납할 수 없다고 못 박은 것이다.

더 의미심장한 지점은 ‘추모 감정’과 인격권 침해를 둘러싼 법리의 확장이다. 대법원은 조비오 신부의 조카인 조영대 신부의 청구권을 인정하면서, 사망한 사람에 대한 허위 사실 적시나 모욕적 인신공격이 남긴 상처가 단지 법률상 정형화된 유족 범위에만 갇히지 않는다는 취지의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혈연의 범주를 넘어, 망인을 향한 경애와 추모, 삶의 궤적 속에서 형성된 깊은 관계가 침해될 수 있다는 점을 정면으로 바라본 것이다. 

5·18의 기억이 개인의 사적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공동체의 공적 기억으로 확장된 현실을, 법이 상식의 언어로 따라잡은 장면이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되묻는다.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인가. 민주주의는 비판과 논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가 ‘허위의 자유’로 변질되는 순간, 민주주의는 스스로의 기반을 허문다. 의견은 자유롭게 다툴 수 있지만, 사실은 공동체가 공유해야 할 바닥이다. 허위가 사실의 자리를 차지하면 공론장은 분열하고, 불신은 제도를 좀먹으며, 결국 힘 있는 자의 말이 진실을 대체하는 사회로 퇴행한다. 

5·18 왜곡은 단지 과거를 둘러싼 말싸움이 아니다. 현재의 민주주의, 그리고 미래의 법치를 겨냥한 공격이다.

더욱이 지금은 왜곡이 순식간에 증폭되는 시대다. 플랫폼과 알고리즘은 정보의 유통을 가속하고, 그 속도는 사실 확인의 속도를 압도한다. 이런 환경에서 역사 왜곡을 “또 하나의 주장”으로 방치하는 태도는 무책임하다. 언론의 책무가 여기에 있다. 

기록을 확인하고, 거짓을 ‘양비론’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세탁하지 않으며, 피해자와 공동체의 기억을 공론장의 중심에 세우는 일이다. 진실을 지키는 언어가 사라질 때, 사회는 쉽게 선동과 혐오의 포로가 된다.

이번 대법원 확정판결은 늦었지만 반드시 필요한 결론이다. 5·18의 진실은 정치적 취향에 따라 흔들리는 선택지가 아니다. 법과 상식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공공재다. 그리고 그 공공재를 훼손하는 허위의 반복은,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 기억은 민주주의의 뿌리이며, 그 뿌리가 썩으면 자유도 정의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진실은 때로 더디게 온다. 그러나 끝내 돌아온다. 이번 판결은 바로 그 사실을 확인한다. 5·18의 진실이 법과 상식의 이름으로 돌아왔다. 

이제 남은 것은 이 사법적 결론을 사회적 상식으로 굳히는 일이다. 진실을 지키는 것은 과거를 처벌하기 위한 일이 아니라, 미래를 살리기 위한 일이다. 민주주의는 기억 위에 서고, 기억은 진실 위에 선다. 그리고 진실은, 결국 공동체를 다시 앞으로 걷게 만든다.
故 전두환 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故 전두환 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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