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설 I 진리·정의·자유] "'단전·단수'는 시도만으로도 민주주의를 흔든다"

'단전·단수'라는 말은 국가가 시민을 향해 쉽게 꺼내서는 안 되는 금기어다. 전기와 물은 생활의 편의가 아니라 생존의 기반이며, 언론의 전기와 물은 곧 공론장의 숨통이다. 

2026년 2월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재판장 류경진)가 12·3 비상계엄 당시 “언론사 단전·단수” 지시 전달 등 혐의로 기소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한 것은, 이 금기어가 한국 민주주의에서 어떤 무게를 갖는지 사법부가 분명히 확인한 사건이다. 

이번 1심 판결의 뼈대는 두 갈래로 정리된다. 첫째, 법원이 12·3 비상계엄을 형법상 ‘내란’으로 보았다는 점이다. 재판부는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 등 국가기관의 기능을 마비시키려는 목적 아래 다수의 병력·경찰을 동원해 출입을 통제하고 활동을 제한하려 했다는 흐름을 “국헌문란 목적의 폭동”, 즉 내란으로 판단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둘째, 그 대전제 위에서 이상민 전 장관이 대통령으로부터 주요 기관 봉쇄와 언론사 단전·단수 지시를 받고 이를 소방청장에게 전달한 행위를 ‘내란 중요임무 종사’로 인정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실제로 단전·단수가 실행되지 않았다”는 항변이 죄책을 지우지 못한다는 취지의 판단이다. 내란죄는 결과의 성패로 면죄되는 범죄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다. 실행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경각심을 낮추는 논리로 쓰인다면, 다음번에는 더 정교하고 더 은밀한 방식으로 ‘실행’이 시도될 수 있다. 재판부가 “목적 달성 여부와 무관하게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둘째 쟁점인 ‘위증’ 판단은, 이 사건이 단지 그날의 지시 전달에만 갇힌 사건이 아님을 드러낸다. 재판부는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과정에서 단전·단수 지시를 받은 적도, 전달한 적도 없다는 취지의 진술을 허위로 보고 유죄로 판단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민주주의는 의견이 다양할 수 있어도, 사실의 바닥이 무너지면 공론장은 붕괴한다. 위증은 단순한 법정 기술이 아니라 공동체의 ‘사실 기반’을 허무는 행위이며, 사태의 책임을 흐리고 사회의 갈등 비용을 키운다. 진실을 향한 절차를 가볍게 여기는 순간, 법치는 정치의 도구로 전락한다.

다만 이번 판결은 직권남용 혐의 일부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고 보기 부족하다”는 취지로, 실제 현장에서 단전·단수 준비 태세가 갖춰졌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 등이 제시된 것으로 보도됐다. 

엄격한 증명 원칙은 형사사법의 대원칙이다. 그러나 사회가 이 무죄 판단을 “그럼 별일 아니었나”로 오독해선 안 된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행위는 ‘성공’이 아니라 ‘시도’에서 이미 위험이 현실화된다. 

특히 언론을 겨냥한 단전·단수 구상은 검열의 원형을 가장 원초적인 방식으로 되살리는 것이다. 활자를 금지하던 시대의 검열이 ‘압수·폐간’이었다면, 오늘의 단전·단수는 물리적 생명선을 끊어 ‘침묵’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이 판결이 던지는 메시지는 결국 한 문장으로 모인다. 헌정 질서를 지키는 최후의 선은, 권력의 선의가 아니라 제도의 설계와 공직 윤리의 실천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처벌’의 논쟁을 넘어 ‘재발 방지’의 설계다. 비상권한이 발동되는 요건과 통제 장치는 실제로 작동했는지, 위법·부당한 지시에 대해 공직자가 거부할 수 있는 보호 장치는 충분한지, 지시·전달·기록의 체계는 투명하게 남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언론의 기능을 마비시키려는 발상”이 공직문화 속에서 단 한 번도 허용되지 않도록 교육·규범·감사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한 번 성취하면 끝나는 상태가 아니다. 매일 갱신해야 하는 생활의 규범이며, 자유는 절차를 통해 지켜질 때만 공동체의 자유가 된다. 

이번 1심은 ‘단전·단수’라는 말이 다시는 국가의 문서와 지시 체계에 등장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다. 

판결은 시작일 뿐이다. 항소심과 상고심에서 법리가 더 정교해지겠지만, 법정 밖의 과제는 이미 분명하다. 

어떤 이름의 권력도, 어떤 명분의 비상도, 언론과 시민의 생명선을 끊는 상상을 다시는 현실 정치의 선택지로 올려놓지 못하도록, 우리는 기본 원칙과 상식의 선을 더 굵게 그어야 한다. 
공판 출석한 이상민 전 장관 사진연합뉴스
공판 출석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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