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온실가스 규제의 법적 근거였던 ‘위해성 판단’을 폐기하기로 하면서 미국 기후정책이 근본적인 전환점에 들어섰다. 규제 완화 효과를 내세운 행정부와 달리 환경단체는 즉각 소송을 예고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9일(현지시간) 복수의 미 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가 이번 주 후반 온실가스 규제의 핵심 근거인 ‘위해성 판단’ 폐기를 공식 발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위해성 판단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09년 마련된 것으로 이산화탄소 등 6가지 온실가스가 공중보건과 복지에 위협이 된다는 연방정부 차원의 결론이다. 이후 발전소 배출 규제와 차량 연비·온실가스 기준 등 미국 기후정책의 핵심 토대로 기능해왔다.
화석연료 업계는 이번 조치를 사실상 ‘승리’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식 당일 환경보호청(EPA)에 위해성 판단을 유지할 필요가 있는지 검토하라고 지시했고 EPA는 지난해 7월 폐기가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리 젤딘 EPA 청장은 WSJ 인터뷰에서 이를 두고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규제 완화”라고 평가했다.
행정부는 이번 조치로 1조 달러(약 1460조원) 이상의 규제 비용 절감 효과가 발생하고 자동차 한 대당 2400달러(약 350만원) 이상의 비용을 아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환경단체들은 즉각적인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비영리단체 환경보호펀드는 성명을 통해 “위해성 판단의 폐기는 기후변화를 초래하는 오염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가장 핵심적인 수단의 일부를 없애버리는 것”이라며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사회를 더 오염되고 위험한 공기 질로 몰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WSJ은 이번 결정을 미국 기후정책 역사상 가장 광범위한 후퇴로 평가하며 글로벌 기업들에도 새로운 불확실성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짚었다. 미국 내에서는 낮아진 규제를, 해외에서는 상대적으로 높은 기준의 규제를 동시에 적용받아야 하는 ‘이중 규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방 차원의 기준이 사라질 경우 각 주가 자체 규제를 도입하면서 기업들이 법적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물가 안정 성과를 부각하기 위해 이번 주 위해성 판단 폐기 외에도 추가 조치를 내놓을 계획이다. WSJ에 따르면 11일 트럼프 대통령은 크리스 라이스 에너지부 장관과 젤딘 EPA 청장과 함께 백악관에서 국방부가 화력발전소 전력을 구매하도록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할 예정이다.
또 오하이오·노스캐롤라이나·켄터키 등에 위치한 화력발전소 5곳에 시설 개선 자금을 지원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라이트 장관은 WSJ 인터뷰에서 석탄 산업을 부흥시켜 인공지능(AI) 산업의 전력 수요를 충당하고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할 수 있다며 "우리의 목표는 미국인을 위해 에너지 가격을 낮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1년 넘게 위해성 판단 폐기를 추진해 왔으며, 지난해 여름 폐기안이 공개된 이후 이에 반대하는 내용을 포함해 50만 건이 넘는 국민 의견이 접수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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