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
무질서(Disorder)의 시대
세계의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무질서가 새로운 질서가 된 시대다. 자유무역이 아닌 보호무역 시대가 왔다. 전쟁이 없던 시대에서 전쟁이 일상화된 시대로 바뀌었다. 국제법이나 국제기구가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화(Globalization)는 가고 분절화(Fragmentation)가 일고 있다. 지정학적 불안이 세계 경제를 짓누르는 듯하고, 유동성은 금과 같은 안전자산을 찾아 이동하고 있다.
다자주의(multilateralism)가 가고 일방주의(unilateralism)가 왔다. 다자주의는 여러 국가가 범세계적 협의체를 두고 규범이나 절차를 만들어 상호 의존적 질서를 정립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일방주의는 한 국가가 독자적으로 행동하거나 국제협력을 최소화하고, 자국 이익만을 우선시하는 방식을 뜻한다. 일방주의는 단자주의 또는 패권주의로도 불린다.
미·중 패권전쟁이 전개될 4가지 양상
미·중 패권전쟁은 크게 4가지 방면으로 전개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미국과 중국이 향후 수십 년을 어떠한 결에서 싸움을 진행하는지 양상을 이해하고, 이에 적절한 대응책을 강구한다면 불확실성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자원 패권전쟁이다. 중국은 미·중 패권전쟁 장기화에 체계적인 준비를 해왔다. 자동차, 로봇, 국방 장비, 반도체 등과 같은 주요 산업의 소재를 장악해 나갔다. 채굴, 정제, 영구자석 생산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희토류를 중국이 장악했다. 그뿐만 아니라 전기차, 데이터센터, 신재생에너지 등에 활용되는 비철금속들에 대해 중국이 독점적 영향력을 차지하고 있다. 즉 미국으로서는 희토류뿐만 아니라 리튬, 알루미늄, 구리 등 비철금속을 중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미국이 관세를 무기로 압박할 때 중국은 자원을 무기로 압박을 가했다. 2025년 트럼프 2기 들어 미국의 관세전쟁에 맞대응하는 수단으로 희토류 공급 차단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미국도 미·중 패권전쟁을 장기간 끌어가기 위해서는 자원을 확보해야 함을 뒤늦게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는 희토류를 전략물자로 지정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했고, 국내 유일한 희토류 생산기업인 MP머티리얼스에 지분 투자와 가격 보전 등 전략적 지원을 집중하고 있다. MP머티리얼스는 캘리포니아 마운틴 패스에서 채굴·정제하고 텍사스 인디펜던스에서 네오디뮴 자석을 제조하고 있는데, GM 등 미국 제조업체들이 자국산 자석을 공급받도록 하고 있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등과 희토류 공급망 확보 및 자립화를 위해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둘째, 미·중 기술 패권전쟁은 시장에서 실감할 만큼이다. CES나 MWC와 같은 박람회 현장을 가보면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전쟁을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다. AI, 로봇, 전기차, 자율주행차, 반도체 등에 걸쳐서 중국이 맹추격하고 있고, 미국은 이를 따돌리려 질주하고 있다. OECD에 따르면 미국은 세계 1위 R&D 지출 국가로, 2023년 R&D 지출액 9556억 달러를 기록했고, 세계 2위인 중국은 4770억 달러를 투입했다.
미국이 반도체 시장과 데이터센터 용량 등 측면에서 모두 1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중국은 이를 추월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즉 제2, 제3의 딥시크 사태를 만들어 내고자 한다. 미국의 과학기술 전공 졸업생 수가 82만명인 데 반해 중국은 3570만명에 달한다. 또한 미국 대학에서 고등교육을 이수하고, 미국 빅테크 기업에서 경험을 쌓은 중국인 기술인재들을 고려해 보면 미국이 기술 패권을 영구적으로 유지할 것이라고 확답을 내놓기 어려울 정도다. 그 밖에도 AI 논문 건수, 특허 출원·등록 건수도 중국의 성과가 미국을 이미 넘어서고 있다는 점도 미·중 다툼이 첨예함을 확인케 해주는 사안이다.
셋째, 통화 패권전쟁을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기축통화국 지위를 이용해 달러 발권력이라는 수혜를 누리고 있고, 중국은 이에 도전하고 있다. 세계 외환시장에서 위안화 비중은 빠른 속도 늘어나고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위안화 비중은 0%였으나 2019년 4.3%, 2022년 7.0%, 2025년 8.6%로 꾸준히 상승했다. 외환시장뿐만 아니라 무역 결제나 해외자산 투자 등의 관점에서도 위안화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위안화가 기축통화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는 독자들도 상당하다고 알고 있지만 달러-유로화-엔화에 이어 위안화는 이미 4대 기축통화다.
중국은 위안화의 국제화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이 세계 금융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도구로 CIPS(국경 간 위안화 지급 시스템·Cross-border Interbank Payment System)를 도입했다. 중국의 CIPS는 미국 중심의 금융 네트워크인 SWIFT(국제결제통신협회)에 대응하고 있다. 2015년에 도입한 CIPS는 2025년 기준 참여 은행이 193개에 달하고, 연간 약 1700억 달러에 달하는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 자국 통화를 국제화하기 위한 디지털 화폐 전쟁도 동시에 전개되고 있다. 미국은 스테이블코인으로 달러를, 중국은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로 위안화를 국제화하는 수단으로 도입했다. 미국은 CBDC 사용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고, 중국은 스테이블코인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넷째, 에너지 패권전쟁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 만든다. 중국이 희토류 공급 차단을 무기로 고민하는 동안 미국은 원유 공급 차단을 무기로 삼고 있다. 미국은 세계 최대 원유생산국이고, 트럼프 대통령은 에너지 개발사업을 전략산업으로 지정했다. 셰일가스와 셰일오일 개발 등을 통해 미국은 이미 원유 순수출국으로 거듭났다. 2026년 베네수엘라 사태와 이란 분쟁 역시 중국이 이란과 베네수엘라에서 절대적인 원유를 조달받고 있다는 점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미국은 에너지 패권을 장악하고, 이를 통해 국제 유가 조절이나 원유 공급 통제력을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에너지 패권전쟁은 앞서 언급한 다른 영역과도 맞물린다. 먼저, 통화 패권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이 오늘날 기축통화국이 된 배경을 한마디로 ‘페트로 달러(Petro Dollar)’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1970년대 금본위제가 붕괴한 이후 석유 최대 수입국이었던 미국은 사우디와 석유 거래를 달러로만 결제하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중국이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으로서 산유국들에 위안화로 결제할 것으로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기술 패권과도 연결된다. 왜냐하면 AI 패권을 가지려면 데이터센터를 확보해야 하고, 데이터센터는 엄청난 전력을 소모하는데 절대적인 전력량은 화력발전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응 전략
무질서가 뉴노멀이 되었다. 무질서의 시대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첫째, 국방 및 안보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안보 체계가 무너지면 경제도 함께 무너지는 것이니 국내 무기체계 및 군사적 동맹을 강화해야 하겠다. 미국은 국방부(Department of Defence)를 전쟁부(Department of War)로 바꾸고 국방비를 끌어올리고 있다. 중국은 베이징에 ‘펜타곤 10배 규모’의 거대 군사도시를 짓고 있다.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만큼 지경학적 패권전쟁의 흐름은 단기간에 끝날 리 만무하다.
둘째, 외교적 중립성을 확보해야 한다. 안보적으로는 미국과 동맹국이지만 중국을 비롯한 브릭스 국가들과의 경제적 교류를 생각해 볼 때 안보와 경제를 분류한 접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안보적으로 비동맹 국가들과는 외교적인 접근을 통해 경제 교류에 부정적 영향이 없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셋째, 미·중 패권전쟁의 장기화에 대응해야 한다. 글로벌 방위산업에서 기회를 확보해야 한다. 국내 방위산업의 첨단화를 국정과제로 삼고, AI·모빌리티·ICT 관련 민간 산업들과 방위산업 간 적극적인 기술 개발과 공동연구를 추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미·중 패권전쟁 과정에서 경제 제재나 반도체 등 공급 제재를 비롯한 불확실성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질서가 한국 경제에 주는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응 전략들을 사전에 마련할 필요가 있다.
김광석 필자 주요 이력
△한양대 겸임교수 △전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전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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