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희 국제언어대학원대학교 총장]
12.3비상계엄이 선포·해제된 지 1년이 지났고, 올해 4월 4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으로 파면된 지도 8개월이 경과했지만 법의 심판은 아직 진행 중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11월 28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역대 11명 전직 대통령의 공과(功過)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윤 전 대통령은 부정 평가가 가장 많았고 긍정 평가는 가장 적었다. 이런 결과가 나온 데는 시대착오적인 계엄 선포가 가장 크게 작용했겠지만, 취임 초에 검찰 출신을 대거 요직에 배치한 인사 난맥, 의대 2,000명 증원과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등 정책 실패, 부인 관련 각종 의혹에 대한 비판에 불통과 아집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2022년 출범하면서 3대 개혁 과제(노동, 교육, 연금 개혁)와 카르텔 척결을 내세웠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반(反)카르텔 정부’를 표방하며 2023년 7월 ‘이권 카르텔 척결’을 언급한 데 이어 2024년 신년사에서 ‘패거리 카르텔 타파’를 강조했다. 카르텔 척결 주장의 배경으로 노조의 이권 개입, R&D 예산 배정과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 출제진 구성, 그리고 제약회사와 의·약사 간의 리베이트 수수 등을 거론했다. 카르텔은 ‘본인들 이익을 위한 담합’으로서 폐쇄적이므로 이를 척결하는 것은 환영받을 일이다.
역대 정부에서 단행한 카르텔 척결 중에 잘 된 사례들도 있다. 첫째,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후 군부 카르텔인 「하나회」를 전격적으로 해체하여 이후 군 간부의 다양성이 확보되었다. 육군 비밀 결사 조직인「하나회」는 전두환 중심의 육사 11기에서 출발하여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은밀한 후원 속에 성장하여 군내 주요 요직을 접수하고, 12.12 군사 반란 후 전두환에 이어 노태우까지 대통령에 당선되도록 했다. 둘째, 윤석열 정부는 건설 공사장에서 장비 사용과 채용 강요, 금품 갈취, 집단행동으로 공사를 방해한 건설 노조 카르텔을 제거한 바 있다. 국내 주요 대기업 귀족 노조의 단체협약에 포함된 ‘신규 채용시 조합원 자녀 우대·우선 채용’, ‘노조간부 인사이동에 대한 사전협의’, ‘근로기준법에 폐지된 월차휴가 인정’ 등 특권 조항들은 역대 정부에서 지속적으로 개선되어왔다.
한편 윤석열 정부에서는 카르텔 척결 시도로 부정적 결과를 낳은 사례들도 있다. 첫째, 국가 R&D 예산을 “나눠먹기, 갈라먹기” 했다며 과학기술계의 ‘연구비 카르텔’을 비판했다. “R&D는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한마디에 2024년 R&D 예산을 16.6%(5조 2000억 원) 삭감하여 과학기술 연구 생태계의 기반이 무너졌는데, 이를 회복하려면 10여 년은 걸릴 거라고 한다. 이공계 연구는 교수 연구실과 실험실(Lab)에서 이루어지는데, 교수가 연구 프로젝트를 수주해 오지 않으면 Lab 팀원들에게 장학금과 인건비를 지불할 수 없어서 연구가 이루어질 수 없다. 이공계 인재가 절실한 대한민국이 AI 3대 강국을 추진하면서 AI 인재 양성과 확보가 절실한 시기에 너무 큰 실책이다. 중국은 천인계획(千人計劃)으로 국가 과학인재 유치에 국력을 쏟아붓는데 말이다. 이처럼 개혁 추진 과정에서 억울하게 카르텔이나 범죄자로 낙인찍혀 제거되는 사례가 다시 발생해서는 안된다. 둘째, 수능·모의평가에 출제·검토위원으로 참여한 후 사교육업체에 문항을 판매한 극히 일부 교사의 탈선을 빌미로 수천 명에 달하는 위원들에게 ‘사교육 카르텔’이라는 불명예를 덮어씌웠다. 이 과정에서 수능 출제진을 소수 대학 출신이 독점한다면서 매도하였다. 수능은 학부모 입장에서 시험의 타당도와 신뢰도보다 난이도(정답율)가 더 중요한 시험이다. 평가 이론이나 전문가의 지식만으로는 난이도가 담보되지 않으므로 출제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가 상당수 참여해야 한다. 따라서 수능 출제·검토 경험이 없는 위원들은 우수한 문항 제작이나 난이도 예측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인물들로만 위원을 선발할 수도 없다.
윤석열 정부의 3대 개혁 과제와 관련된 카르텔을 척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전념해야 할 두 개의 과제가 있다. 첫째, 직권을 남용하거나 각종 의혹을 무시 또는 무혐의 처리한 ‘검찰 카르텔’을 척결해야 한다. 검사들이 임용될 때 낭독하는 검사 선서에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고, “범죄로부터 내 이웃과 공동체를 지키라”는 사명을 언급하고,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 다짐한다. 하지만 검찰의 지난 역사를 보면, 정권의 코드에 맞춰 자의적으로 수사와 기소를 처리한 검사들은 정리되어야 할 대상이다. 둘째, 구시대적 군부·검찰 사고를 가진 ‘정치 카르텔’도 우리가 진정 척결해야 할 대상이다. 대통령과 여당은 지지 세력을 확보하여 국회에서 다수당을 차지함으로써 공약 실천 여건을 갖추어야지, 의석수 다수당인 야당의 견제와 반대가 심하다고 해서 비상계엄으로 해결하려 한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또한 윤 전 대통령을 배출한 국민의힘은 전시와 사변에 준하는 상황도 아닌데도 비상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의 행위에 대한 사과도 없이 아직도 계엄의 원인을 민주당의 지나친 탄핵과 입법 독주때문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이런 정치 카르텔은 선거에 의해서만 제거할 수 있으므로 국민이 정치의식과 민주시민 의식을 고양해야 한다.
앞으로는 윤석열 전 대통령처럼 범죄 혐의자만 다루던 검사식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정치계로 바로 진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검사와 판사는 공무원으로서 정치 중립을 지켜야 하고, 굳이 정치를 하려면 사직하고 시작해야 한다. 또한 이재명 정부가 검찰청과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거나 법왜곡죄를 신설하려는 것은 무리수이다. 잘못을 저지른 판검사 처벌은 현행법 체제에서 직권남용죄로 기소하거나 탄핵제도를 활용하는 것부터 할 수 있다. 끝으로,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헌법 제1조 제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와 제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2026년 새해에는 대한민국이 ‘적폐 청산’. ‘카르텔 척결’, ‘내란 종식’ 같은 요란한 구호 대신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주의 물결이 도도히 흐르는 나라가 되길 바란다.
이재희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사범대학 영어교육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교육학박사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원 ▷미국 텍사스대(오스틴) 연구교수 ▷한국초등영어교육학회 회장 ▷경인교육대학교 6대 총장 ▷국제언어대학원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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