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같은 날이었어요.”
이현숙 hy 프레시 매니저는 8일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8월을 이렇게 떠올렸다. 전북 군산 나운1동에서 30년 넘게 프레시 매니저로 활동해온 그는 그날 홀몸 어르신의 고독사를 가장 먼저 발견해 고인의 마지막 존엄을 지켰다.
그날도 발효유를 들고 어르신 댁을 찾은 이 매니저는 평소처럼 ‘곧 도착하니 꼭 챙겨 드세요’라는 문자를 남겼다. 그러나 도착한 현장은 뭔가 달랐다. 전달주머니 안에는 지난주 제품이 그대로였고, 얼음팩은 모두 녹아 있었다. 전화도 닿지 않았다. 우편함엔 미납 고지서가 쌓여 있었다. 즉시 주민센터에 연락해 확인을 요청했고, 경찰과 함께 현관문을 열어 쓰러진 어르신을 발견했다. 그는 “불안했던 예감이 사실이어서 마음이 아팠다. 그 순간 책임감은 더 또렷해졌다”고 말했다.
이 매니저의 구역은 군산에서도 홀몸 어르신·취약계층 비중이 높은 곳이다. 주민들은 그를 ‘야쿠르트 살뜰쟁이’라 부른다. 하루에도 같은 길을 여러 번 돌며 주민들과 얼굴을 맞대다 보니 어려움이 생기면 가장 먼저 달려가는 사람이 됐다. 빙판길에 넘어져 다친 어르신을 바로 부축하거나, 저혈당 쇼크로 쓰러진 노인을 발견해 구조한 일도 있다. 이 매니저는 “남들은 평생 한두 번 겪을 일을 나는 일상에서 맞닥뜨린다”며 “매일 배달을 나서기 전 ‘오늘은 좋은 일만 생기게 해달라’고 기도한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 쌓인 관계는 작은 변화도 놓치지 않게 했다. 문 여는 소리, 걸음걸이만 달라도 이상함을 알아챈다는 그는 혹서기·혹한기엔 일부러 방문 횟수를 늘린다. 명절엔 혼자 지내는 어르신들이 더 쓸쓸할까 봐 잠시라도 더 머문다. 최근 이 매니저는 주민센터 마을복지위원으로도 발탁돼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고, 기관과 소외계층을 잇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위원회도 나의 이야기를 적극 들어준다. 수십 년간 나보다 이들의 이야기를 가까이서 들은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하며 미소 지었다.
이 매니저가 동네를 위해 매번 두 팔을 걷어붙이는 것은 결국 ‘사람’이 좋아서다. 그가 30년 넘게 이 일을 이어온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큰딸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해 hy 프레시 매니저의 길을 택했다는 그는 “고객으로 만난 사람들이 친구가 되고, 동네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됐다”며 “이른 새벽 바람을 맞으며 나서면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다”고 말했다.
이 매니저는 고독사 현장을 발견한 공로로 지난 4일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수상 소감을 묻는 질문에 그는 “누구라도 했을 일을 크게 평가해주시니 감사할 뿐”이라며 “단순히 배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동네를 지키고, 어르신들이 기대어 쉴 수 있는 이웃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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