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희 국제언어대학원대학교 총장]
2024년 12월 비상계엄 선포 사태로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후 교육부 장관 공석이 오래 이어졌다. 지난 6월 29일 교육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이진숙 전 충남대 총장이 연구윤리 위반과 자녀 불법 유학 및 업무역량 부족으로 7월 20일 지명이 철회되고, 8월 13일 최교진 세종시교육감이 새 후보자로 지명되었다. 최 후보자는 만취 운전, 입시비리 옹호, 논문 표절 의혹 등에 대한 여론 검증과 인사청문회를 어렵게 통과하여 9월 12일 취임했다.
그동안 정부는 7월 13일 교육부 차관을 임명하여 일상적 업무를 수행하도록 했으나 7월 29일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퇴임하면서 수장의 완전 공백 상태가 되었다. 교육부 장관 공석 기간이 표면적으로는 두 달이 안 되지만 실질적으로는 작년 비상계엄 이후로 9개월 이상 교육부의 주요 업무가 중단된 상태였다. 이제 새 장관과 함께 2기 국가교육위원장도 임명되었으니 국가 교육정책이 안정되기를 기대한다.
뒤늦게 임명된 최교진 교육부 장관은 지난 9월 16일 국무회의 의결로 확정된 이재명 정부의 교육부문 5대 국정과제 ‘지역교육 혁신을 통한 지역인재 양성, AI 디지털시대 미래 인재 양성, 시민교육 강화로 전인적 역량 함양, 교육격차 해소를 위한 공교육 강화, 학교자치와 교육 거버넌스 혁신’에 대한 추진계획을 조속히 제시해야 한다. 또한 이전 정부가 추진해오던 정책 중 미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고교학점제, AI 디지털교과서(이하 AIDT) 및 유보 통합 정책의 미흡한 점을 보완하여 정착시켜야 한다. 첫째, 고교학점제는 준비기간이 비교적 충분하여 올해 시행에 돌입했으나 다양한 선택과목을 가르칠 교원 수급 부족으로 인한 학생의 선택권 제한, 평가 기준 불균형 등 문제점으로 인해 교육 현장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다. 둘째, AIDT는 집필자와 출판사가 질 좋은 교과서를 제작할 시간과 여건이 부족한데도 교육부가 밀어붙였고, 실질적인 연수 자료도 없이 진행된 교사 연수 등 문제 때문에 교육 현장에서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로 인해 AIDT는 초중등교육법에 명시된 교과용 도서(교과서)에서 교육 자료로 지위가 격하되면서 사실상 좌초될 위기에 처해 있다. 셋째, 유보 통합은 2024년 6월 보육과 유아교육의 관할 중앙부처를 교육부로 일원화하는 유보 통합 실행계획을 발표했고, 후속 입법이 국회에 계류 중이어서 정지된 상태다. 최교진 장관은 고교학점제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다행이지만 준비가 거의 완료된 AIDT와 유보 통합 정책도 정상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한편 국민 전체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유·초·중등 학부모의 걱정거리가 된 ‘n세 고시’와 수행평가 등 교육 현안도 해결해야 한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영어학원 등에서 치르는 ‘n세 고시’가 공교육을 훼손하고 아동 인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확산되고 있어서 조기영어 사교육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수행평가는 학생들이 암기 위주 학습에서 벗어나 창의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기르고, 배운 내용을 실제로 적용하고 응용하는 능력을 기른다는 미래지향적인 목적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에게 과도한 시간을 요구하여 학부모가 방과 후에 대신 작성하는 부정행위와 평가 결과의 공정성에 대한 우려가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하여 수행평가를 수업시간 내 또는 최소한 교내에서 마치도록 하는 개정안이 발표되었지만 수행평가가 굳건하게 정착하도록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대부분 교육 문제들은 대학입시와 연관이 있어서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와 보조를 맞춰야 하는데, 임기 3년인 국교위 1기가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을 확정하지 못해서 아쉽다.
교육부는 이와 같은 미시적인 현안도 해결해야 하지만 국가 미래를 위해 거시적 현안인 교권 회복, 대입제도 개선 및 대학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첫째, 교권 회복은 최교진 장관이 취임사에서 ‘선생님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제시하여 희망의 빛이 보인다. 과거 과밀학급에서 학생을 지도하던 시절에 학생 인권을 외면하면서 폭력적 교육을 행한 교사들이 있었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제는 학생 인권이 오히려 과도하게 보장되면서 교권(수업권과 훈육권)이 실종되고, 학생과 학부모의 악성 민원으로 교사가 교육을 포기하는 실정이다. 최 장관이 취임사에서 강조한 것처럼 교사와 학생 및 학부모가 상호 배려와 존중을 실천하면 교권이 회복되고 비로소 공교육이 정상화될 것이다.
둘째, 대학입학 정책과 시험은 학교 교육의 전 과정, 즉 목표, 내용, 방법 및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 교육과정은 창의적 사고력을 기르도록 꾸준히 개정되어 왔으나 학교 내신 평가와 대입 수능시험은 여전히 5지 선다형 객관식 시험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학교수업에서 암기식 문제풀이 연습을 되풀이하고 있다. 대입 정책은 국교위 소관 업무이지만 최 장관이 수능과 내신의 절대평가 전환에 적극적이므로 양 기관이 협의하여 이른 시일 내에 대입 제도와 시험을 공론의 장에 내놓아야 한다.
셋째, 대학 구조개혁은 대학의 국제 경쟁력 확보와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절실하다. ‘지역교육 혁신을 통한 지역인재 양성’이라는 국정과제의 모태가 된 대선 공약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재정과 사립대학 역차별 등의 문제가 있으므로 폐기해야 마땅하다. 주요 외국 대학의 국제 평가 순위는 상승하는 반면 한국 대학의 평가 순위는 하락하여 국제 경쟁력이 뒤처지고 있다. 그 원인은 지난 17년 동안 우리나라 대학의 등록금이 동결되어 대학 운영과 투자를 위한 재정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대학 등록금을 현실화하거나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전용 또는 고등교육재정교부금 신설 등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재희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사범대학 영어교육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교육학박사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원 ▷미국 텍사스대(오스틴) 연구교수 ▷한국초등영어교육학회 회장 ▷경인교육대학교 6대 총장 ▷국제언어대학원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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