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희 국제언어대학원대학교 총장]
이재명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원회는 지난 8월 13일 123대 국정과제를 보고한 데 이어 20일 국정과제 5개년 계획의 세부 내용을 공개했고, 정부의 최종 검토와 국무회의를 거쳐 확정될 예정이다. 교육 부문 5대 국정과제는 ‘지역 균형성장’과 ‘기본 사회’ 목표 아래 지역교육 혁신을 통한 지역인재 양성, AI 디지털시대 미래인재 양성, 시민교육 강화로 전인적 역량 함양, 교육격차 해소를 위한 공교육 강화, 학교 자치와 교육 거버넌스 혁신이 설정되었다.
교육부장관 공백이 장기화되면서 윤석열정부가 추진해오던 주요 정책은 동력을 잃었고, 이재명정부의 주요 교육정책도 아직은 안개 속에 있다. 더구나 좌초되거나 표류한 교육정책들은 대입제도와 연관이 있어서 국가교육위원회(이하, 국교위)와 보조를 맞춰야 하는데, 다음 달로 임기 3년이 만료되는 국교위 1기는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5월 대선에서 주목받은 ‘서울대 10개 만들기’ 공약이 ‘지역교육 혁신을 통한 지역인재 양성’이란 국정과제로 확정되어 전문가들의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란 9개 지역거점국립대학교를 서울대학교 수준으로 육성하여 대학 서열화와 수도권 중심의 교육 불균형을 완화하겠다는 발상이다. 하지만 이 구상은 윤석열정부가 구체적 근거와 로드맵도 없이 내놓은 ‘의대 정원 2천 명 증원’ 계획이 기나긴 의정 갈등을 초래한 것처럼 또 다른 갈등을 낳지 않을까 우려된다. 따라서 추진과정에서 예상되는 다음과 같은 암초를 고려하여 이 과제를 재검토해야 한다.
첫째, 특단적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한 9개 지역거점국립대학교에 서울대 수준으로 투입해야 할 재정을 확보할 수 없다. 교육부의 검토 결과 서울대 학생 1인당 교육비는 6500만 원인데 비해, 지역거점 국립대학은 평균 2500만 원 이하로 서울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또한 2025학년도 서울대학교 세입·세출 예산이 1조 1200억 원인데 비해, 부산대학교 예산은 3400억 원으로서 서울대의 30%에 불과하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이행하려면 연간 3조 원의 재정 투입이 예상되므로 5년에 15조 원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는 총액 15조 8635억 원인 2025년 고등평생교육특별회계 맞먹는 막대한 금액이다. 또한 이 사업은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이미 시행 중인 글로컬대학30 사업 및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사업과 목적이 상당 부분 중복되므로 기존 사업이 축소되거나 폐지될 가능성이 크다.
둘째, 지역거점 국립대학을 집중 지원하면 수도권과 지방 사립대의 역차별 논란과 반발은 불가피하여 전국의 대학가가 혼란에 휩싸이고 과제 추진도 어려워질 것이다. 신입생 미충원이 이미 보편화된 지방의 군소 대학은 국·사립을 막론하고 폐교 위기에 처할 것이고, 수도권의 경쟁력 있는 사립대도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셋째,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거대 목표를 가진 국정과제는 5년 단임 대통령제에서는 연속성이 보장되지 않으므로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으로 수립되어야 한다. 수도권의 인구와 경제 집중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10~20년 동안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외국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 프랑스는 2004년에 산업 클러스터 정책을 법제화해서 대학·연구소·기업을 연계한 산업·연구 거점을 육성하려 했고, 영국은 2014년에 북부원동력(Northern Powerhouse) 프로젝트를 시작했으나 정권 교체 후 동력을 잃어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국가 재정과 수도권과 지방의 국·사립 대학 여건을 고려하면서 ‘지역 균형성장’ 목표를 달성하도록 ‘서울대 10개 만들기’ 과제를 재정립해야 할 것이다. 1986년 개교한 포항공과대학교(Postech)와 1992년 개교한 한국예술종합학교는 소수 정예로 출발했지만, 10년 만에 각각 과학기술과 예술 분야에서 국내 최상위 대학으로 자리 잡았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 경쟁력도 확보하였다. 이런 사례를 참고하여 지방에 서울대 수준으로 행·재정적 지원을 하여 공공 의대와 AI 인재 양성 대학 등 특성화 대학을 2~3개 설립하고, 학생 교육비와 교수 보수를 획기적으로 개선하여 우수 인재들이 모일 수 있도록 한다. 이와 같은 작은 성공들이 쌓여서 국민 신뢰가 확보되면 지방에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이루어질 수 있다.
국정과제는 대선 공약에 바탕을 두고 거시적으로 출발하지만, 5개년 계획은 가급적 임기 내에 실현되도록 추진 로드맵과 재정 조달 방법 등 구체적 내용이 제시되어야 한다. 교육 부문 국정과제로 박근혜정부는 8개, 문재인정부는 6개, 윤석열정부는 5개에 이어 이재명정부도 5개의 과제를 설정했다. 이 과제들 중에 미래 인재 양성, 지방대학 육성, 공교육 강화, 대학 재정 지원 등은 공통적인 부분이어서 지속적으로 추진이 가능하다.
끝으로, 교육 국정과제와 교육현장에서 절실한 과제들을 순조롭게 추진하려면 관련 기관들이 역할을 분담하고 협력해야 한다. 교육부는 5년 단위 교육계획을 담당하고, 시·도 교육청은 초중등 교육정책을 집행하며, 대통령 소속 행정위원회로 설치된 국가교육위원회는 국가교육과정, 대입제도 등 10년 단위 교육계획을 담당한다. 그러나 국교위가 지난 3년간 운영된 것처럼 설치 목적에 맞는 기능을 할 수 없다면 위원 구성과 운영 방법을 개선하거나 폐지를 검토해야 한다.
이재희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사범대학 영어교육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교육학박사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원 ▷미국 텍사스대(오스틴) 연구교수 ▷한국초등영어교육학회 회장 ▷경인교육대학교 6대 총장 ▷국제언어대학원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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