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광해'(2012) '신과 함께'(2017~2018) 시리즈로 세 편의 천만 영화를 탄생 시킨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는 또 다시 낯선 세계에 발을 들였다. 글로벌 메가 히트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을 영화화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선 것이다. 스크린이라는 공간이 가진 힘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는, 상상력 가득한 이 이야기를 현실로 구현하고자 했다. 그리고 관객들이 그 세계 속 감정과 메시지를 오롯이 함께 느끼길 바랐다.
"'신과함께'가 끝난 직후 매우 지쳐 있었어요. '차기작은 무조건 소프트한 작품을 하자'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던 중 후배가 웹소설 '전독시'를 추천해주었어요. 처음엔 가볍게 읽었는데 곧 이야기 자체에 푹 빠져버렸죠. 본능적으로 '내가 해야겠다' '내가 안 하면 다른 사람이 채간다' 싶더라고요. 하하."
'전독시' 영화화에 힘을 싣어준 건 미술팀과 VFX 수퍼바이저들이었다. '신과함께'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전독시' 역시 대규모 예산과 VFX가 중심인 작품. 원 대표는 '신과함께'를 함께 했던 미술팀과 수퍼바이저들이 "뼈와 혼을 갈겠다"는 말에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원 대표는 '전지적 독자 시점' 영화화를 논의할 당시만 하더라도 이 정도 팬덤과 규모감을 가지지 않았었다고 회상했다. 싱숑 작가가 문피아에서 연재하던 때라는 부연이었다.
"'신과 함께' 주호민 작가님 꼬실 때 제가 '한국판 해리포터'를 만들어주겠다고 했었거든요. 하하. 싱숑 작가님께도 '신과함께'를 보여드리며 영화화에 대해 말씀드렸어요. 작가님께서는 '이게 영화화가 되겠느냐'며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신과함께'의 결과물을 보시고는 '(영화로) 나올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셨대요."
영화화 소식이 처음 보도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이렇게 팬덤이 들끓지는 않았다. '전지적 독자 시점'이 오랜 시간 연재를 거치며 단단한 팬덤이 형성되었고 영화화에 대한 기대와 우려 또한 커지게 됐다.
"팬들의 반응도 잘 알고 있고 그들의 말도 잘 이해하고 있어요. 팬들에게 '전독시'는 단순한 웹소설이 아니니까요. 그들 하나하나가 '김독자'인 거죠. 그들의 추억, 청춘이 녹아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반응하시는 거라고 생각해요."
팬들이 지적하는 문제 중 하나는 각색 과정에 있다. 원작에서 중요하게 여겨졌던 '배후성'의 삭제, 이지혜라는 인물의 설정이 대폭 수정되었다는 점이었다. 원 대표는 방대한 설정을 제한된 러닝타임 내에 효과적으로 담아내려 일부 캐릭터와 전재가 조정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지혜는 원작에서 중요한 인물이지만, 이야기 전개의 리듬감과 메시지를 위해 설정을 새롭게 해석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김독자가 혼자 모든 것을 이겨내기보다, '연대'와 '협력'을 통해 성장하는 이야기로 재구성되었고, 이를 위해 이지혜라는 인물이 변화를 맞게 됐어요. 왜 그에게 활이 아닌 총을 쥐어주었느냐고 물으신다면 현실적인 구현에 있어서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영화하는 사람들이 금기어처럼 새기는 말이 '등장인물을 만들지 말라'는 거예요. '캐릭터'를 만들라는 말이죠. 이지혜가 단순한 등장인물로 쓰이지 않고 캐릭터로 활약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원작 팬들 사이에서 '이지혜'의 배후성(이순신) 설정이 삭제된 것이 아쉬움으로 회자된다. 이 같은 결정에 대해 묻자 원동연 대표는 영화화 과정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설명했다.
"배후성이 이순신이라는 설정은 사실 한국 팬들만 잘 아는 백그라운드예요. 글로벌 관객들에게는 낯설 수 있고, 무엇보다 1편에서는 세계관 자체를 이해시키는 게 우선이었어요. 원작을 모르는 관객이 대부분인데, 모든 설정을 다 가져오면 오히려 혼란만 줄 수 있다고 생각했죠. 2시간짜리 파트1 안에서 모든 캐릭터의 배경과 세계관을 설명하는 건 불가능해요. 그래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어요. '배후성'이라는 개념이 있다는 것만 일단 보여주고, 액션에서 '나나'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이해 포인트를 남겨둔 거죠. 이번 1편에서는 세계관의 '기본값'을 이해시키는 데 주력했어요. 신승호 캐릭터나 다른 배후성 설정은 이후를 위해 일부러 남겨둔 부분도 있습니다. 모든 걸 다 보여주기보다 차근차근 확장할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한국영화 산업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급격히 위축됐다. 굵직한 블록버스터의 부재, 잇따른 기대작의 흥행 실패, 급감한 투자 여력까지. '시장이 무너졌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닐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대형 IP '전지적 독자 시점'을 바탕으로, 큰 예산이 투입된 장르영화를 내놓는다는 건 모험에 가깝다. 원동연 대표는 현재 자신이 "본의 아니게 국가대표가 된 기분"이라고 털어놨다.
"처음부터 사명감이나 책임감을 갖고 만든 영화는 아니었어요. 상업영화 프로듀서로서 제 일은 수익을 내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 산업이 돌아가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생태계가 순환 되도록 하는 게 제 책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는 '신과함께' 시리즈 당시와 비교해 지금의 분위기를 '전혀 다르다'고 표현했다.
"'신과함께' 찍을 때는 산업이 호황이었어요. 1편이 잘되면 2편도 웬만하면 됐죠. 동시에 찍어도 큰 불안은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블록버스터를 표방한 영화가 올해 몇 편이나 있나요? 거의 없죠. 작년, 재작년 기대작들도 성과를 못 냈고요."
지금의 한국영화 산업은,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시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해외 자본이 한국영화에 의미를 두겠습니까? 돈이 되니까 오는 거죠. 자본이 움직이려면 '돈이 된다'는 걸 보여줘야 해요. 누군가는 증명해야 하죠. 프로듀서로서 수익은 못내더라도 치명적인 마이너스는 내지 말아야죠. 그 타격은 다들 아는 겁니다. 저야 영화를 오래 했지만, 제 뒤로 능력있고 애정있는 후배들에게 기회가 안 갈까 봐, 그게 가장 불안합니다."
30년 넘게 한국영화계를 지켜온 선배로서, 지금의 위치에서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할까.
"제가 지금 영화한 지 30년이에요. 30편 넘게 상업영화 만든 사람, 그렇게 많지 않아요. 이제 후배들이랑 똑같은 걸로 경쟁하고 싶지도 않아요. 제가 해야 할 일은 한국에도 프랜차이즈 개념을 제대로 정착시키는 거라고 생각해요."
원동연 대표는 스스로 "나는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를 만들 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대신 자신이 잘하는 방식으로, 영화 산업에 꼭 필요한 역할을 해내야 한다고 믿는다.
"창작자들이 유의미하고 가치 있는 작업을 하려면, 산업이 돌아가야 하잖아요. 그러려면 누군가는 돈을 벌어줘야 해요. 후배들한테도 그래요. 작가주의적인 작품이나 영화제용 영화를 만들 수는 있지만, 그걸 가능하게 하려면 한쪽에선 밭을 갈아야 한다고. 그래야 니가 그림도 그리고, 시도 쓸 수 있는 거라고요."

그는 자신이 그 '밭을 가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수확량은 최대치로 끌어올리겠다고 덧붙인다.
"사람들이 프랜차이즈를 별로 섹시하게 안 보는 것 같아요. 근데 저는 달라요. '신과함께'에 이어 '전지적 독자 시점'까지 흥행에 성공하면, 이건 산업적으로 아주 안정적인 '밭'이 되는 거예요. 곳간에서 인심이 나는 거니까. 후배들을 위해서도 안정화를 이루고 싶은 거죠."
원동연 대표는 '더 테러 라이브' 'PMC: 더 벙커' 김병우 감독을 연출자로 내세웠다.
"김병우 감독은 굉장히 드라이하고 세련된 감정을 그리는 사람이에요. 반면 저는 좀 된장 같은 스타일이거든요. 신파고, 눈물도 있어야 하고 희생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독시'는 결국 김독자와 일행들이 '한 팀'이 되는 이야기잖아요. 그 과정에서 관객이 울어야 된다고 봤어요. 그 지점을 최대한 타협한 게 지금 결과물입니다. 저는 통제가 안 되면 신파로 가버리는 사람이라, 김병우 감독이 일종의 통제 장치예요."

이미 2편의 시나리오는 완성돼 있고, 배우들과의 협의도 끝난 상태다.
"1편이 사랑을 받아야 2편도 갈 수 있겠지만, 시나리오는 다 써놨어요. 배우들에게도 2편 얘기를 다 해놨고요. 다들 이 작품을 정말 좋아해요. 2편이 만들어진다면 파격적인 이야기가 될 겁니다. '전독시' 세계관과 메시지는 그대로고요. 5편까지 계약이 돼 있지만, 시장 상황에 따라 3편에서 마무리할 수도 있고, 5편까지 갈 수도 있어요. 준비는 다 하고 있습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