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 이란의 핵시설 3곳 공습으로 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에 직접 개입하면서 오일쇼크 공포가 한국 경제에 드리우고 있다. 출범 3주차를 맞아 본격적으로 경제 회복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이재명 정부 행보에 찬물을 끼얹은 것으로 물가·환율 급등으로 경기 진작 효과가 반감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번 사태가 장기화하면 가뜩이나 관세전쟁 후폭풍으로 둔화하는 수출까지 영향을 받으며 0%대로 전망되는 올해 경제 성장률이 더 주저앉을 수 있어 대통령실에서도 예의 주시하며 대책 마련에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2일 포르도를 비롯한 이란의 주요 핵시설 3곳을 공격한 이후 백악관에서 대국민연설을 갖고 이번 군사작전 목표를 "이란의 핵농축 역량을 파괴하고 세계 최대 테러 후원 국가가 제기하는 핵 위협을 저지하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이란 핵 개발을 무력으로 저지하겠다는 뜻을 다시 한번 강조한 셈이다. 반면 이란은 모든 선택지를 꺼내 대응한다며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맞섰다.
중동전쟁이 확전 양상으로 번지면서 새 정부의 경기 부양 기대에 따라 회복 조짐을 보였던 우리 경제는 또다시 악재에 직면했다. 단기적으로는 중동발 석유 공급 차질로 유가와 운임 상승이 우려되는 가운데 최악의 시나리오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현실화할 경우 무역, 물류 등 산업 전반에 직격탄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중동 지역은 세계 최대 원유 매장지역이자 세계 원유 생산량의 31%가량을 차지한다. JP모건은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고 충돌이 중동 전역으로 확대되는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경우 국제유가가 배럴당 120∼130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예상했다.
정부와 한국은행의 거시경제 운용 기조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부와 한은은 국제유가가 큰 폭으로 낮아진 덕분에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개월 만에 1%대로 낮아졌으며, 하반기 1%대 후반 수준으로 안정적 흐름을 보일 것이라 전망했는데 기대가 어긋날 가능성이 커졌다.
한은이 제시한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0.8%) 달성도 위태로울 수 있다. 옥스퍼드이코노믹스는 최악의 경우 국제유가가 배럴당 130달러까지 오르고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6%에 육박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렇게 되면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시기가 더 미뤄지면서 한은의 금리 인하 속도도 더뎌질 수밖에 없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경기 부양 효과도 상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0조원대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해 경기 회복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는데 3년 6개월 만에 3000선을 회복한 코스피가 다시 흔들리고 내수 회복세도 더뎌질 수 있다. '유가 상승→물가 상승→구매력 감소→수요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어서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국제유가가 80달러를 초과할 경우 물가는 점진적으로 상승하며 인플레이션 압력이 확대될 것"이라며 "연준의 금리 인하 여지는 줄어들고 달러는 강세를 보이며 엔화 등 주요 통화는 약세를 보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고유가로 인한 소비 위축이 실물 경제와 성장률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대통령실은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습과 관련해 긴급안보경제상황 점검회의를 열었다. 위성락 안보실장은 "무엇보다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국민이 안정적인 일상을 영위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최근 중동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상황들이 한반도의 안보와 경제 상황에 미치는 영향이 최소화되도록 관계부처 간 긴밀한 소통과 협업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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