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균 칼럼] 대한민국 경제안보 '삼국지'

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명예교수
[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명예교수]
 
이재명 대통령이 G7 확대 정상회의 참석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서 정치적으로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취임 후 보름만에 등판한 첫 번째 국제무대에서 이 대통령은 에너지 공급망, 특히 신재생 에너지 분야에서의 글로벌 연대를 강화하는 방안을 제안했고 인공지능(AI) 기반 에너지 최적화 기술을 공유할 것 등을 제안하여 ‘실용외교’의 기본을 보여주었다. 연설에서 이 대통령은 “한국은 에너지 자립의 시대로 나아간다”는 메시지로 탄소중립을 향한 강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아울러 “AI는 에너지 전환의 촉매”임을 선언함으로써 신기술에 관한 한 세계적으로 정평이 난 ‘얼리 어답터’ 한국인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핵심광물 공급망의 안정화가 글로벌경제 성장과 번영의 관건”임을 강조함으로써 한국의 관심을 표명함과 동시에 중국의 책임감도 촉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의 연설에 대해 미국 CNN은 한국이 “AI 기반 에너지 전략에서 G7 이상의 기술력”을 보여주었다고 논평했고 로이터는 한국이 “G7의 에너지 재편 논의에서 새로운 활로를 제시했다”고 평했다. 신생 선진국의 대통령으로서 G7을 서방에 치우치지 않은 글로벌 협력의 장으로 활용했을 뿐만 아니라 선진국과 ‘글로벌 사우스’ 사이의 가교역할에서도 ‘이재명’의 공간을 마련했다.
이 대통령이 이번에 천명한 대한민국의 에너지 자립 비전은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더욱 다급해졌다. 이스라엘이 지금까지의 불문율을 깨고 핵시설은 물론 이란의 석유정제 및 천연가스 채굴시설까지 공격한 것이다. 모두가 이란의 핵시설에 주목하는 사이에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에 의한 세계 에너지공급을 위축시킴으로써 자신들의 에너지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실속’도 챙기고 있다. 에너지 안보는 중동전쟁의 파생요소가 아니라 구성요소이다. 화석연료는 기후위기와 함께 생태적 수명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더라도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게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화석연료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에너지 공급망의 내재화’이다. 2027년부터 천연가스 공급이 포화상태에 이르러 가격하락이 예상될지라도 ‘탄소중립 2050’의 목표는 고수되어야 할 것이고 에너지 자체뿐만 아니라 태양광 패널과 인버터 역시 ‘내재화’ 대상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트럼프 정부가 낡은 해군함정의 대체는 물론 유지·보수를 위해서도 한국 조선업의 지원이 절실하면서도 시간과 비용에서 비효율적인 미국 조선소를 105년 된 ‘존스법’을 핑계로 고집하는 이유도 조선업을 군사안보뿐만 아니라 경제안보의 관점에서도 바라보기 때문이다. 2019년 일본이 한국 대법원의 위안부 배상 판결을 빌미로 도발한 반도체 소재의 수출금지 역시 한국 최대 수출산업의 붕괴를 노린 경제안보전쟁이었다. 2021년 중국의 요소수 수출 규제 역시 한국의 경제안보를 시험 삼아 흔들어본 게릴라전이었다.
경제안보는 결국 산업구조의 문제로 귀결된다. 국제분업질서에 참여하면서도 가능한 한 공급망을 ‘내재화’하는 길이 경제안보를 가장 잘 달성하는 길이다. 그러므로 경제안보는 경제학의 비교우위론을 거스를 수 있는 상위 범주이다. 국민경제의 확대재생산구조는 경제안보가 보장될수록 대외적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 한일수교 60주년은 무역적자 60년이다. 뿐만 아니라 그 규모도 점차 확대되어 지난 10여 년 동안에는 매년 200억 달러를 넘고 있다. 한국의 수출이 늘어날수록 대일무역적자도 늘어가는 구조적 불균형이 핵심이었고 일본은 경제적 종속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한국과의 통상관계의 핵심목표로 추구하는 데 성공해왔다. 핵심적인 적자요인은 기술격차로 인한 소재, 부품, 장비의 대일 수입의존이다. 1980년대까지도 이에 관한 문제의식이 있어 ‘수입선 다변화’와 같은 ‘몸부림’이라도 있었지만 중국경제의 개방과 함께 시작되어 30년간 지속된 대규모 대중무역 흑자는 대일무역 적자를 경제안보문제로 의식하는 것을 방해했다. 2023년 대중무역이 갑작스럽게 대규모 적자로 반전되었을 때 당시 윤석열정부의 인식은 한덕수 총리의 “꼬꾸라지는 중국경제”로 표현되었듯이 무책임할 정도로 안이했다. 2013년 628억달러 흑자를 정점으로 점차 감소하던 무역수지가 2023년 한중교역 31년만에 108억달러 적자로 급반전하더니 2024년에도 11월까지 65억달러 적자를 이어갔다.
경제안보의 관점에서 볼 때 한국경제는 대중무역에서는 30년의 흑자에 도취되어 아직도 한중경제가 보완관계에서 경쟁관계로 전환되었을 뿐만 아니라 희토류 등 원자재에서는 절대적 의존관계가 심화되고 있다는 ‘현타’가 오는데 시간이 걸렸다. 한국 기업의 대중 투자가 감소하면서 중간재 수출이 감소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기업에 의한 대체재 생산이 중간재에서부터 완성재에 이르기까지 광범하게 이루어지면서 한국제품이 설 땅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그리하여 한국이 중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중간재의 비중은 2016년 27.3%에서 2023년 31.3%로 높아졌다. 이 가운데 전구체와 수산화리튬, 양극재·양극활물질의 대중국 수입이 2016년 1억∼2억 달러에서 2023년 25억∼49억 달러로 큰 폭으로 늘었다. 중국에서 이차전지 중간재를 수입해서 중국산 이차전지와 세계시장에서 경쟁하겠다는 ‘당찬 포부’는 허망한 꿈이 되고 있음은 한국산 이차전지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갈수록 하락하고 있는 현실이 말해주고 있다. 중국이 한국과의 기술격차를 따라잡고 추월하는 동안 한국은 일본과의 기술격차를 좁히지 못했다. 달리 말하자면 한국은 일본과의 기술격차를 축소하기보다 중국에서 기술을 확산하는 데 더 열중했다. 그 결과 현시점에서 한국경제는 일본은 물론 중국으로부터도 경제안보를 잠재적으로 위협받는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일본에 대해서는 소부장에서 기술격차를 해소하고 중국을 향해서는 경제안보의 관점에서 원자재와 중간재를 ‘내재화’하는 다양한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대미 무역에서도 한국은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으나 2022년부터 그 규모가 급증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2022년 280억달러, 2023년 444억달러, 2024년 557억달러를 각각 기록했다. 이러한 양상은 바이든 정부의 제조업 부흥계획에 따라 한국의 반도체기업과 이차전지기업의 대미 투자가 증가함에 따라 필요한 기자재 수출이 증가한 덕분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따라서 중장기적으로는 트럼프행정부의 미국 제조업 부흥정책으로 인해 대미수출이 감소하면서 무역흑자 역시 축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자본시장에 대한 외국인 투자는 미국 내 투자와 경합관계에 있기 때문에 한국의 통화금융정책이 미국 연준의 기준금리정책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외부변화에 취약한 금융시장에서는 혁신보다 안정을 중시하는 기조가 한국경제안보에게는 보다 유리할 것이다.
이차대전 후 세계경제질서는 미국 주도로 대략 40년을 주기로 GATT체제와 WTO 체제라는, 기본적으로 자유무역체제를 거쳐 이제 새로운 보호주의 체제로 이행하고 있다.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것처럼’ 수출주도성장에 매몰되었던 한국경제에게 작금의 ‘대전환’ 국면은 경제안보의 중요성을 각인하고 있다. 한국이 ‘규범수용자’에서 ‘규범설정자’로 격상되려면 외부요인에 의한 충격에 취약하지 않은 경제적 재생산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경제안보의 관점에서 한국 산업구조의 장단점을 전면적으로 점검하고 취약점을 보강해야 할 시점이다.
 
 
 
 
김호균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 박사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