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휘 칼럼] 한일 경제협력, 수소 산업이 이끌어야

이왕휘 아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왕휘 아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번 주 초 한일 사이에 중요한 행사가 많이 벌어졌다.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 기념행사를 주한일본대관이 16일 서울에서 성황리에 마쳤으며, 주일한국대사관은 19일 도쿄에서 주최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15~17일 캐나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으로 서울 행사에 불참했다. 그러나 G7에서 이 대통령과 이시바 총리의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이시바 총리가 도쿄 행사에 참석하게 된다면, 새 정부의 한일 관계는 당분간 순항할 것이다.
취임 전 이재명 대통령이 한미일 공조를 유지하겠다고 여러 번 발언했지만, 새 정부의 대일 정책에 대한 일본의 기대는 크지 않았다. 일본은 이 대통령이 반일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것은 물론 일본보다 중국을 더 중시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취임 후 이러한 의구심이 점차 해소되어 가고 있다. 이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보다 이시바 총리와 먼저 전화하였다. 지난 9일 통화에서 양 정상은 “그간 한미일 협력의 성과를 평가하고, 앞으로도 한미일 협력의 틀 안에서 다양한 지정학적 위기에 대응해 나가기 위한 노력을 더해 나가자”는 데 합의하였다.
관계 개선의 계기를 살리기 위해서는 공동의 이익을 영유할 수 있는 협력 모델이 필요하다. 현 시점에서 가장 유망한 협력 분야는 수소산업이다. 양국 모두 기후위기에 대비한 탈탄소 경제에 적합한 수소를 새로운 대체 에너지원으로 고려하고 있다. 또한 양국은 세계적 수준의 수소산업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은 수소차와 발전용 연료전지 공급 등 수소 활용에서, 일본은 수소 기술 특허에서 각각 앞서 있다.
이런 배경에서 산업통상자원부는 2023년 6월 경제산업성 자원에너지청과 국장급 회의에서 한국의 수소안전관리 로드맵 2.0과 일본의 수소기본전략 개정본을 협의하였다. 회의 직후 수소가스 안전기관인 한국가스안전공사와 일본고압가스보안협회가 수소 안전관리 제도, 가스사고 사례 및 방지 대책 등을 함께 논의하였다.
2023년 11월 미국 스탠포드대학에서 열린 윤석열-기시다 좌담회에서 한일 수소 협력의 기본 원칙이 확정되었다. 양국 정상은 수소·암모니아 글로벌 밸류 체인을 구축을 위해 제3국에 공동 진출하는 데 동의하였다. 후속 조치로 산업통상자원부와 경제산업성은 2024년 2월 한-일 국장급 수소협력 회의를 개최하였다. 이 회의에서는 청정수소를 조달하는 방안을 집중적으로 논의하였다. 이를 위해 양국은 ‘한-일 수소 협력 대화’를 신설하여 (1) 글로벌 수소 공급망 개발 및 새로운 수소 활용 분야의 창출, (2) 표준·규격, (3) 정책 등에서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합의하였다.
이 합의는 2024년 6월 '제1회 한-일 수소협력 대화'로 이어졌다. 양국 정부뿐만 아니라 11개 유관기관이 참여했던 이 대화에서는 일본은 수소사회추진법, 한국은 청정수소발전입찰시장을 각각 소개하였다. 이 대화 직후 워싱턴 DC에서 열린 산업통상장관 ㅎ회담에서는 청정수소 공급망 구축 협력을 확대하기 위해 청정수소 공급망 개발, 탄소집약도 및 인증, 표준·기준, 안전 분야의 4개 워킹그룹의 신설이 결정되었다.
'제2회 한-일 수소협력 대화'는 올해 3월 도쿄에서 개최되었다. 워킹그룹별로 세부 협력 의제를 점검하고 향후 협력 확대 방안을 협의하였다. 또한 민간이 참여하는 '한일 수소·암모니아 공급망 및 활용 협력 플랫폼'을 추진하고 청정수소 공급망, 수소혼소발전, 수소모빌리티 확산 등으로 협력을 확대하는 데도 합의가 이뤄졌다. 같은 달 도쿄에서 열린 한·일의원연맹 행사에서도 수소 충전기술 표준화, 수소 관련 제품 호환, 공동기술 개발 등이 논의되었다.
민간 차원에서도 양자 협력이 순항하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 업계 3위와 1위인 현대차그룹과 도요타그룹은 보유하고 있는 최첨단 수소연료전지차 기술의 보급 활성화를 위해 수소 생태계를 공동으로 조성하고 있다. 최근 양사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수소차 시장의 위축이다.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이 2022년 1054만대, 2023년 1398만대, 2024년 1763만대로 상승했던 반면, 글로벌 수소차 판매량은 2022년 2만704대, 2023년 1만 6413대, 2024년 1만 2866대로 하락했다. 2024년 현대차 3836대(점유율 29.8%), 토요타 1917대(14.9%), 위통 버스(宇通客车) 1137대(8.8%)를 각각 판매하였다. 위통버스를 제외한 중국 수소차 업체의 판매량 총합은 5976대로 현대차와 토요타의 합계보다 더 크다.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현대차그룹은 올해 1월 도요타그룹의 주요 임원들을 초청하여 주요 계열사의 연구개발 현황을 소개하였다. 양사가 개발한 세계 수준의 배터리 시스템 어셈블리, 실리콘 카바이드 전력 인버터, 전기차용 반도체 등에 대한 협력이 가능하다.
미국의 보호주의와 중국 전기차의 부상으로 한일 협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한편에서 미국은 25%의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 관세를 부과하여 한국과 일본 자동차기업을 견제하고 있다. 미국의 관세율이 대폭 낮아지지 않으면, 양국 모두에서 대미 자동차 수출이 급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한편에서 중국은 국가적 차원에서 친환경 자동차 산업을 지원하여 단시간에 세계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하였다. 아직 안전성과 내구성이 왼벽히 검증되지 않았지만, 중국산 전기차는 가성비가 좋아 판매량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이중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서 한국과 일본은 협력을 도모해야 한다.
양국 정부에서는 현대차그룹과 도요타그룹의 수소 협력이 안착할 수 있도록 정치적 및 외교적 갈등이 산업기술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 2019년 아베 정권의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에 대한 수출통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정경분리 또는 투 트랙 원칙이 철저하게 견지되어야 한다. 동시에 기업 차원의 협조를 촉진하기 위한 정책적 지원도 강구되어야 한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수소 생태계의 조성이다. 양국 정부와 민간기업이 골고루 참여하는 공동 프로젝트가 추진된다면, 수소 산업은 미래 지향적 협력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왕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외교학과 ▷런던정경대(LSE) 박사 ▷아주통일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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