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칼럼] '국민주권정부'는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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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병 시사평론가]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첫날인 지난 4일 첫 인선을 발표하면서 “국민에 대한 충직함과 책임, 실력을 갖춘 인사들과 ‘국민주권정부’의 새 출발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이재명 정부의 별칭으로 ‘국민주권정부’를 공식화한 것이다. 물론 이전 정부에서도 별칭은 있었다. 김영삼 정부는 ‘문민정부’, 김대중 정부는 ‘국민의 정부’, 노무현 정부는 ‘참여정부’라는 별칭으로 통했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별칭 없이 대통령 이름에 정부를 붙여서 사용하다가 17년 만에 이재명 정부의 별칭이 생긴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민’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정치인들 대부분이 툭하면 국민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살긴 하지만 최근 들어 이재명 대통령은 국민이라는 단어를 좋아해도 너무 좋아한다. 대통령 취임사는 ‘국민’이라는 단어의 잔치였다. 무려 42번이나 나왔다. 입만 열면 자유를 꺼냈던 윤석열 대통령 취임사에서 나온 ‘자유(35번)’보다도 많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첫 공식 일정인 현충원 참배에서 남긴 방명록도 ‘국민’이 핵심 단어였다. 심지어 최근 출간한 책 이름에도 ‘국민’이 들어갔다.
이재명 대통령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사태와 탄핵으로 인한 조기 대선을 통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 과정에서 국민이 보여준 의연한 분노와 저항은 정권교체의 핵심 동력이었다. 국회 앞 도로를 가득 메웠던 ‘빛의 혁명’ 주역들과 헌법재판소 앞에서 눈보라마저 떨게 했던 ‘키세스 시위대’의 열정은 이재명 대통령이 말하는 바로 그 ‘국민’의 전형이다. 이재명 정부의 별칭인 국민주권정부는 그 연장에 있다는 뜻이다. 애써 국민주권정부라고 별칭을 붙인 이유와 그 진정성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국민주권(popular sovereignty)은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뜻이다. 국가의 지도자는 국민이 선출한 대표자이며, 국정은 주권자인 국민의 동의에 의해 운영된다. 이것이 공화제 국가에서 민주주의를 택하고 있는 모든 나라의 국정 운영 대원칙이다. 우리도 헌법 제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으로서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굳이 국민주권정부임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대한민국은 정치적으로나 헌법상으로도 국민주권정부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지난 정권교체 과정에서 국민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그렇더라도 굳이 이재명 정부의 별칭을 국민주권정부로 하는 것에는 쉬 동의하기 어렵다.
우리 헌법은 공화제와 주권자로서의 국민을 규정하고 있지만 이는 원칙론이며 헌법정신의 기초를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주권이 어떤 방식으로 표출되고, 어떻게 구현되는가의 문제와는 차원이 다르다. 우리 헌법은 선거제도와 정당제도, 의회제도가 주권의 작동 방식이다. 주권자인 국민의 뜻에 따라 국민투표로 의회를 구성하고, 의회가 국민을 대표해 국정을 이끌어 간다는 뜻이다. 의회민주주의가 그것이다. 이를 국민주권에 의한 직접민주주의로 접근하면 곤란하다. 국민주권을 강조해 버리면 정당과 의회의 공간이 축소된다. 의회민주주의가 왜곡될 수밖에 없다. 자칫 대통령에 의한 독재정부가 되기 십상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국민의 주권 의지가 일상적으로 국정에 반영되는 진정한 민주공화국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취지는 알겠지만 그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국민의 주권 의지가 어떻게 ‘일상적’으로 국정에 반영되는 것일까. 국민의 주권 의지를 확인하기 위해 일상적으로 국민투표를 하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매일 여론조사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그도 아니면 국정게시판에 올라 온 국민의 뜻대로 국정을 하겠다는 것인가. 최근의 국민추천제가 그런 것인가.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공화국을 만드는 것인가. 그렇다면 의회는 왜 필요하며 의회민주주의는 진정한 민주공화국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인가.
이재명 정부는 민주화 이후 역대 가장 강력한 권력을 쥐고 있다. 압도적 우위의 국회 권력에 이어 대통령 권력까지 차지했다. 맘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검을 쥐고 있다는 뜻이다. 반면에 이를 견제해야 할 야당인 국민의힘은 모두가 당권에 눈멀어 자중지란이다. 이재명 정부 스스로 자제하지 않는다면 권력의 독주를 막을 방법이 없다. 여기에 더해서 국민주권정부라는 명분까지 밀어붙인다면 민간 독재권력의 유혹에 빠지기 십상이다. 야당의 정당한 저항이나 국회의 견제기능마저 국민주권을 명분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주권은 결코 만능이 아니다.
이재명 정부가 당장 풀어야 할 정치적 과제는 ‘협치의 복원’이다. 무능한 극우세력인 윤석열 정부는 거기서부터 실패했다. 이제 이재명 정부가 답할 차례이다. 비록 답답하고 안타깝지만 국민의힘은 이재명 정부의 국정 운영 파트너이다. 국민주권의 이름으로 내칠 수 있는 적폐 세력이 아니라는 뜻이다. 어떻게든 야당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야당에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한 번이 아니면 두 번, 세 번이라도 손을 내밀어서 의회정치의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 이것이 ‘협치의 방식’이다. 개혁도, 민생도, 안보도 협치에서 나오는 힘이 가장 강력하다. 자칫 팬덤을 국민여론으로 착각하고 그 국민을 의회 앞에 내세운다면 그때부터 정치는 몰락할 수밖에 없다. 역사 속의 독재정치는 대체로 그렇게 자멸했다.
세계의 주요 민주주의 국가들은 이제 총을 든 독재자보다 합법적으로 선출된 권력을 더 경계한다. ‘국민’을 앞세워 어느 순간 독재자로 변질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폴란드, 페루, 필리핀 등 많은 국가들이 그랬다.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그렇다면 국민주권은 강조하되 그 방식은 ‘의회정치’를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 ‘정치의 복원’이 그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재명 정부의 국민주권정부는 위험하다. 자칫 국민을 앞세워 의회정치를 무력화시키고 독재정치로 가는 명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은 언제든 ‘양날의 검’이다. 국민만 앞세우다가 제 손으로 자멸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굳이 국민이니 주권이니 하면서 무슨 깃발처럼 내걸 필요가 없다. 그냥 ‘이재명 정부’라고 하면 될 일이다.



 필자 주요 이력
△시사평론가(현) △인하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선거방송심의위원(전) △혁신과미래연구원 원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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