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지훈 한국국방연구원 대외협력실장 "북한 신형 구축함 좌초…기술사고 넘은 정치적 사건"

지난 21일 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새로 건조한 5000톤급 구축함 진수식을 열었으나 함정을 제대로 물에 띄우지 못하고 크게 파손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지난 15일 촬영된 청진조선소에서 건조를 마치고 진수 준비 중인 구축함의 위성사진 사진연합뉴스
지난 21일 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새로 건조한 5000톤급 구축함 진수식을 열었으나 함정을 제대로 물에 띄우지 못하고 크게 파손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지난 15일 촬영된 청진조선소에서 건조를 마치고 진수 준비 중인 구축함의 위성사진. [사진=연합뉴스]

북한 청진시 조선인민국 소속 최현급 2번함으로 추정되는 신형 구축함이 진수식에서 널브러진 지 일주일째지만, 제대로 수습되지 않은 채 책임자와 노동당 간부 처벌로 확대되고 있다. 김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이 직접 좌초를 목격하고 진노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가운데, 앞으로 어떻게 정리될지 국내외 눈과 귀가 지금 북한을 향해 있다.

28일 아주경제는 서울 종로구 모 카페에서 유지훈 한국국방연구원 대외협력실장(해사 54기)을 만나 북한 속사정을 살펴봤다. 유 실장은 미국 해군대학원에서 안전보장학 석사, 시라큐스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 경항공모함 사업과 장보고-III 잠수함 확보 사업에 참여했다. 2045년까지 해군발전 방향을 제시한 ‘해군비전 2045’의 주 저자다. 한국의 대표적인 해양안보 전문가인 유 실장은 현재 이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다음은 유 실장과 일문일답. 

지난 21일 북한 청진시에서 좌초된 신형 구축함은 정확히 무엇인가.
-이번에 좌초된 북한의 5000톤급 구축함은 최근 북한이 해군력 강화를 목표로 건조해 온 신형 전투함이다. 지난달 서해 남포조선소에서 진수한 ‘최현함’과 동급 함정으로 추정된다. 북한 해군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전투함으로 꼽힌다.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진수식에 참석했을 만큼 전략적 상징성이 있는 함정이다.

외형상으로도 북한 해군 역사상 최대 규모의 수상 전투함이다. 길이는 약 130~140미터, 만재 배수량은 약 5000톤에 이른다. 함포·대함미사일·단거리 지대공 미사일 등 기본적인 무장체계를 갖춘 것으로 추정된다. 상부 구조에는 △76mm급 함포로 보이는 주포 △4연장 대함미사일 발사기 △단거리 대공미사일 △근접방어무기(CIWS)류 장비가 탑재된 모습이 한·미 정보당국에 포착되기도 했다.

다만, 외형 대비 실제 성능은 제한적일 가능성이 클 것으로 판단된다. 이지스 전투체계나 네트워크 중심 작전 능력, 고성능 레이더와 같은 현대 구축함의 핵심 기능은 갖추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추진 체계도 디젤 기반으로 추정된다. 장거리 항속이나 연합작전 수행 능력은 낮을 것으로 평가된다”
 
유지훈 한국국방연구원 대외협력실장이 28일 아주경제와 만나 지난 21일 좌초된 북한 신형 구축함 사고를 놓고 기술사고이자 정치적 사건이다고 말했다 사진정현환 기자
유지훈 한국국방연구원 대외협력실장이 28일 아주경제와 만나 지난 21일 좌초된 북한 신형 구축함 사고를 놓고 "기술사고이자 정치적 사건이다"고 말했다. [사진=정현환 기자]

신형 구축함이 진수식에서 좌초됐는데,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진수 과정에서 균형을 잃었다. 함정 일부가 침수되면서 선체가 파손됐다. 이는 북한의 조선 기술력 부족과 무리한 속도전식 건조 지시가 겹쳐 발생한 결과로 해석된다. 특히 대형 군함 건조 경험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공정 관리와 품질 통제가 미흡했을 가능성이 크다. 사고 이후 현재 북한 당국은 관련 간부들을 숙청하며 책임을 묻고 있지만, 이번 사건은 단순한 기술적 실패를 넘어 북한 해군력 증강의 구조적 한계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특히, 이번 북한 구축함 좌초 사고는 배를 물에 띄우는 과정인 ‘진수’ 중에 발생했다. 쉽게 말해, 경사진 레일 위에 배를 올려놓고 미끄러뜨려서 물에 띄우는 방식인데, 이 과정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원래는 배의 앞뒤가 균형 있게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북한 군 당국의 지휘 미숙과 조작 실수 때문에 뒤쪽부터 먼저 미끄러져 내려가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배의 무게 중심이 갑자기 틀어졌다. 선체 밑부분이 일부 긁히거나 충격을 받으면서 앞부분은 레일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멈췄다.

처음에는 바닥이 찢어졌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나중에 확인된 바로는 배 바닥에 큰 구멍이 생기진 않았다. 오른쪽 측면이 긁히고 배 뒤쪽 통로로 해수가 일부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고는 북한이 대형 군함을 제대로 건조하고 진수할 기술적 경험과 안정된 공정 관리 능력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지난 25일 북한은 책임자들을 구속했는데, 무슨 의미인가.
-현재 강정철 청진조선소 기사장, 한경학 선체총조립직장 직장장, 김용학 행정부지배인 등이 이 사건에 책임을 물어 구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단순히 업무상 과실 책임을 묻는 차원을 넘어서, 체제 차원의 정치적 책임 추궁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참관한 진수식에서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체제의 권위와 지도자의 위신이 손상됐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를 만회하고 내부 기강을 다잡기 위해 책임자들을 신속히 처벌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조치는 북한 내부에 ‘실패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경고 메시지를 보내면서, 지도자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 특유의 정치문화가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기술적 실수 이상의 의미가 있는 상징적 처벌이다

북한이 과거에도 유사한 사례에서 비슷한 조치를 했나.
-북한에서 군사 또는 군수 관련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자를 문책하거나 처벌하는 사례는 과거에도 종종 있었다. 다만, 이번처럼 조선소 간부들을 공식적으로 구속하고 이를 외부에 알려진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경우다. 과거에도 무기 개발 실패나 군 장비 사고가 있었지만, 대부분은 내부 숙청이나 인사 조치 수준에서 비공개로 처리됐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기술적 사고를 넘어 지도자의 권위, 체제의 안정성과 직결되는 정치적 사건으로 볼 수 있다. 그만큼 처벌 수위나 공개성에서 예외적인 대응이 이뤄졌다.
 
유지훈 한국국방연구원 대외협력실장이 지난 21일 북한에서 좌초된 신형 구축함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사진정현환 기자
유지훈 한국국방연구원 대외협력실장이 지난 21일 북한에서 좌초된 신형 구축함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사진=정현환 기자]
 
현재 북한의 해군력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이번 구축함 건조는 북한이 단순한 연안 방어를 넘어 일정 수준 이상의 원해 작전 능력을 확보하려는 의도를 보여준 사례다. 특히 최근 북한이 전략무기뿐 아니라 해군의 대형화·현대화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5000톤급 전투함은 북한 해군으로서는 상당히 이례적인 시도다. 해상에서 지속 운용 능력과 항속 거리, 무장 탑재량을 모두 확장하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북한이 해군력 증강에 나서고 있는 배경은.
-크게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는 전략적 과시다. 김정은 정권은 핵 무력뿐만 아니라, 해상 전력도 강화하고 있다는 점을 대내외에 드러내려는 목적이 있다. 특히 군사 강국으로서 위상을 대외적으로 보여주고, 내부적으로는 체제의 자신감을 선전하기 위한 상징적 행보로 해석할 수 있다. 최근 ‘해군력 현대화’ 발언이나 대형 구축함 건조, 수중 무기 개발 시도 등이 그렇다. 

둘째는 비대칭 전략의 확장이다. 북한은 기존의 지상 중심 비대칭 전력에서 해양 영역으로도 그 범위를 넓히려 하고 있다. 특히 남측의 주요 항만과 도서 지역, 해상 교통로에 대한 위협 수단으로 해군력을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무인 수상정과 잠수정, 기만 전술 등 비정규 해상전 수행 능력 강화에도 집중하는 추세다. 이에 우리 군은 상시 감시·정찰 태세를 유지하며, 해상 작전에서 ‘초기 대응 능력’과 ‘도발 억제력’ 강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
-북한은 지금도 핵 무력과 재래식 전력을 동시에 강화하겠다는 ‘양면 전략’을 밀어붙이고 있다. 우리는 이번 북한의 사고를 단순히 비웃거나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기술적 한계가 분명하더라도, 북한은 상징과 위협의 정치에 능숙한 국가다. 따라서 이번 사건으로 북한 해군력의 실체를 정확히 진단해 앞으로도 감시·대응 능력을 지속해서 강화하고, 상황 변화에 맞춘 유연한 전략적 대응을 준비해야 한다. 군사적 도발이나 과시보다 한반도 안보의 안정과 평화를 실질적으로 증진할 수 있는 외교적·정치적 해법이 우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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