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천의 디지털 산책] 4류 정치가 만든 불타는 한국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30명의 인명을 앗아간 화마는 경북 내륙과 해안을 초토화시켰다. 피해 규모가 서울 전체 면적의 무려 80%에 달했다. 대피 시스템이 참담하게 실패했다. 디지털 시대에 산불 대응 정보시스템은 고사하고 전근대적으로 구두 연락 혹은 방문만 가능했다. 말만 AI니 빅데이터센터니 화려하면 뭐하나. 사물인터넷이란 정작 이런 재난 현장에 써야 맞는 것이다. 인기 영합에만 눈이 먼 정치권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산림 수목관리도 거의 수작업에 의한다. 수도권조차도 엉망이다. 유럽에서는 가로수에도 반도체 칩을 심어 전광판으로 실시간 관리한다. 우리는 어떤가. 나무 밑 뿌리 가까이 구석에 쇠 번호표를 못질해 놓은 자국을 봤을 것이다. 볼 때마다 아프겠다는 생각이 든다. 동작은 빨라도 생각의 속도가 느린 한국 사회의 결정적 단면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주요 고위직에 IT 전문가들을 대거 등용한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무려 12명이나 등용됐다. 우리로서는 이것도 요원한 일인가.

산불 진화에 투입된 군 병력은 7000여 명에 헬기는 290대다. 초대형 군 수송기도 동원돼 한번에 물 5톤을 쏟았다. 이래봤자 이건 산불 사후 대비다. 사전 대비가 문제다. 상황 전파를 위한 비상연락망이나 유사시를 위한 대피체계도 전혀 준비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마을 이장이나 주민이 일일이 이웃을 돌며 인기척을 확인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이로 인해 영양군에선 이장 부부가 이웃을 찾으려 노력하던 중 그만 대피소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는 바람에 화마에 참변을 당한 일도 있었다. 두 분 모두 돌아가셨다. 우리는 여러 참사를 겪으면서 교통이나 도심 재난에는 대응체계를 제법 구축했다. 그러나 농촌·산촌·인구 저밀 지역은 예외다. 안동에서는 재난문자에 대피장소가 명시되지 않은 경우까지 있었다. 구형 폰을 쓰는 고령자 중엔 재난문자를 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미국은 다르다. 미국 서부 오클랜드시에서는 연기 냄새를 감지하는 고성능 센서를 2년 전부터 산에 설치했다. 이른바 야외화재 검출센서다. 일산화탄소 등 유해가스를 즉각 감지함으로써 냄새 데이터와 풍속을 종합해 발화 지점과 화재 규모를 단 1분 만에 정확히 예측해내는 정보시스템이다.  그러나 첨단기술이 다가 아니다. 산불은 기후변화 탓보다 방치된 산림이 더 큰 원인 제공자이므로 낙엽과 고사목을 먼저 제때 정비하지 않으면 산불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런 위기를 기회로 이겨낼 방도는 과연 없을까. 분명 있을 것이라고 본다. 수목을 새로 심을 때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안달루시아 지방 여행 경험담이다. 서울 크기의 100배가 넘는 그 넓은 지역에 산마다 올리브 나무 천지였다. 운전대를 2시간 여 잡고 시속 100㎞로 달리는 동안 다른 수종은 보이질 않았다. 올리브 재배의 65%는 지중해 지역에 몰려 있다. 스페인이 그중 53% 가까이 차지한다. 그다음은 이탈리아인데 많아 봐야 10%다. 올리브 글로벌 시장은 연 20조원 상당이므로 스페인 몫은 연 10조원이다. 온난화농업대응연구소에 의하면 우리도 추위에 강한 올리브 수종을 쓰면 제주나 남해 지방에서 재배가 가능하다고 한다. 월동에 견딜 5개 수종을 이미 발굴하여 실제로 제주도와 전남에선 10여 년 전부터 노지 재배에 성공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하여 스타링크란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공중 인터넷이다. 통상 지상 혹은 지하에 인터넷 케이블이 깔려 있으나 해저에도 깔려 있다. 미국은 지상·지하는 물론 땅이 넓어 공중(위성)에도 깔려 있다. 이 기술이 저개발국인 아프리카 지역에 무상 제공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에도 무상 군사 지원된 것이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종전 협상 전략으로 스타링크 지원을 당장 중단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은 것도 그 때문이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지난 80년간 3도나 높아졌다. 2100년엔 지중해성 작물도 한국에서 재배 가능하단 뜻이다. 가온(하우스) 재배를 비롯한 여러 가지 실험 시도를 해봐야 한다. 연 매출 1000억원만 나더라도 후대를 위해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꼭 그 나무가 아니라도 대대로 쓸모 있을 쪽으로 발상의 전환은 필요하단 뜻이다.

이번 산불로 씁쓸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불과 3년 전 60㎞에 달했던 대규모 삼척·울진·동해안 산불을 벌써 잊은 듯했다. 이번 피해는 그때보다 훨씬 컸다. 산불 유발 처벌 수위 강화는 이제 필수다. 이번 피해는 얼마 전 LA 산불 피해의 2배 규모다. LA 산불 피해액은 무려 40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피해 규모가 몇백조 원인지도 추산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선진국에선 피해 규모가 25만 달러, 즉 3억원 정도면 사형에 처한다. 우리는 시대에 뒤떨어져 과학적이지 못하고 수치적이지도 못하다. 산불 유발자에 대한 처벌 수위도 바뀐 게 없다. 정치권에서 민생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고의가 아닌 실화죄는 오래전부터 최대 3000만원 벌금으로 되어 있다. 이제는 이걸 최소 그의 10배인 3억원으로 상향해야 한다. 국내 산의 3분의 2가 개인 소유라 하니 산불 예방에 소유주 책무도 고려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또한 산에 갈 때는 화기를 소지하지 못하도록 금지해야 한다. 길거리 문화도 작은 버릇부터 고쳐 나가야 한다. 담배꽁초를 버리는 행위는 경범죄로 3만원이다. 경범죄로 보는 것 자체도 문제다. 운전 중 꽁초 무단 투기에 대해선 벌금이 고작 4만원이다. 이번 경북 지역에서도 어느 앞차 운전자가 꽁초를 버리고 나서 발화됐다는 뒤차 목격자의 진술도 있지 않았나. 바늘 도둑이 나중에 소 도둑 된다는 말이 있다. 꽁초 투기 벌칙금을 최소 3000만원으로 상향 조정하여 함부로 버릴 수 없게 해야 한다.

올봄에 습설이 예상보다 많아 산불이 없을 것이라는 어느 산림 전문가의 말을 뉴스로 본 기억이 난다. “지금 내리는 눈으로 강원 지역 당분간 산불 걱정을 덜게 됐다”는 보도(YTN 2025년 3월 16일 “3월 중순에 눈 '펑펑'···산불 걱정 덜었지만 폭설 피해 우려”)가 있었고 “이번 눈은 메마른 강원 산지에 산불 걱정을 덜어주는 고마운 눈 이기도 하다”는 보도(YTN 2025년 3월 18일 “40㎝ 눈 내린 강원도 또 폭설···산불 걱정 '뚝'”)도 있었다. “큰 피해만 없다면 산불 걱정을 덜어주는 고마운 눈과 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는 뉴스 (연합뉴스TV 2025년 3월 16일 “강원 산지는 다시 겨울왕국…내일까지 최대 30㎝ 눈 예보”)도 있었다. 경북 산불이 발화되기 시작한 것이 22일이나 이는 놀랍게도 불과 나흘 전 뉴스였던 것이다. 이렇게 방심하고선 무슨 일인들 아니 터지겠는가.

방심의 압권은 정치권이다. 돌이켜보면 정치권이 자초한 산불 재난일수도 있다. 정국이 오로지 탄핵과 법원 판결에만 집중돼 정치인 누구 하나 봄철 산불에 신경이나 썼던가. 무려 30곳에서 동시다발로 산불이 났으니 정치권이 자초한 산물이나 다름없다.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올봄 산불 조심하자"고 미리 말했더라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대통령이 심판받고 은둔하며 지내는 형국에 국가에 무슨 령이 서겠는가. 국가나 군대에 질서와 기강이 무너지면 불행한 일은 불시에 예고돼 있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 이번 산불재난이다. 공직사회에 책무 실종이 이처럼 극에 달한 적은 역사상 없었다. 종일 산불 끈 소방관에게 일회용 컵 미역국에 김치 몇 조각 주었다는 소식도 있다. 무엇보다 정쟁 여파로 산불 대응 예산까지 대폭 삭감된 것을 잘 알 것이다. 화재 진압 직후 삭감 원인을 놓고도 여야가 서로 떠넘기며 책임 공방을 벌였다. 삼류도 못 되는 사류 정치다. 이러고도 국민들 앞에 창피하지도 않나. 삭감 유발자를 가려 내어 꼭 책임 귀착 소재를 물어야 할 중대 사안이다.

이렇게 정치권이 이전투구 혈투를 벌이는 몇 개월 동안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옆 대한만국역사박물관에서는 어떤 전시회가 조용히 열리고 있었다. 현존하는 사회 원로들이 1970년대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기 위해 어떤 노력했는지를 보여주는 ‘나의 보물, 우리의 현대사’ 전시회였다. 국가를 기둥처럼 이끌어온 60인의 소장품이 그들의 서재를 잠시 떠나 만인에게 현대사의 진수로 공개된 것이다. 전시물 중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국가행정전산화 지시(1975)로 출간된 교과서로 당시 IT 기술뿐만 아니라 전산학 대학원도 없던 시절에 이 첫 한글 컴퓨터 교과서들은 훗날 IT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주춧돌이 되었다”는 문구도 있었다. 관람객 수는 20만명을 넘은 가운데 정치인 중에서 이를 관람한 이는 극소수였다. 유일하게 단 한 명이었다. 여기서 누구라고 밝히지는 않지만 강직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이미 신문지상에 공개된 바 있다(조선일보 2025년 2월 6일자). 그는 박물관 측에 전혀 알리지 않은 채 조용히 관람하고 간 뒤 “뜻깊은 전시였다”는 소감을 전했다고 한다. 그는 방문 당시 노동부 장관이었고 지금은 대선 후보다. 노동과 헌신의 가치를 익히 잘 알았기 때문일까. 사람은 누구나 단점과 약점이 있다. 우리가 정치지도자를 존경하는 이유는 개인 특유의 역량이 갖는 영향력, 즉 카리스마 때문이다. 아무도 생각 못하던 시절 국가전산화라는 기치를 세우고 탁월한 영도력으로 세계 최빈국이라는 오명 속에서 환란의 질곡을 떨치고 한강의 기적을 연출한 지도자가 가진 속성이라 할 수 있다. 국회의원은 많다. 유감인 점은 현대사에 공을 세운 족적을 보여준 전시회에 그들 중 아무도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민초들 삶의 흔적에 관심이 없는 이들로서 공개적으로 자신을 드러낼 동선은 아니었기 때문일까. 그러면서도 선거 때면 앞다퉈 민생 운운하는 걸 보면 위장 정치의 전형이 따로 없다. 이기주의로 무장한 이들에게 애타심을 바라는 건 삼류 정치 사회에서 사치일지도 모른다.

이번 피해로 1000만그루 이상의 소나무가 타버렸다. 애국가에 나오는 철갑을 두른 그 소나무, 차후에는 산불 대응이 과학적으로 또한 체계적으로 돼야 한다. 산불에 국한된 사안만은 아니다. 주택이나 공장화재에도 화재 발생 단 수초 내에 대응하는 안전사고 예방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사물인터넷은 인간 편리에만 적용하는 게 아니다. 동식물 전부 대상이다. 그래서 만물인터넷으로 칭하기도 한다. 기술이 있는데도 안 쓰면 죄 짓는 일이다.



문송천 필자 이력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미국 일리노이대(어바나 샴페인) 전산학 박사 ▷유럽IT학회 아시아 대표이사 ▷대한적십자사 친선홍보대사 ▷카이스트·케임브리지대·에든버러대 전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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