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2시간짜리 계엄은 대통령 하차로 대단원의 막을 고했다. 대화 부재로 여야 간 불협화음이 커지더니 급기야는 헌정 사상 두 번째 대통령 탄핵이란 오명을 남겼다. 타협 부재의 정치 고질병을 질타한 헌법재판소 판결이었다. 여야 모두 국민들 앞에서 떳떳하게 논쟁을 벌이지 못한 채 언론을 매개체로 교묘하게 이용하는 온갖 술수들을 음지에서 펼친 게 화근이었다. 무늬만 정치를 하는 듯한 시늉 내는 저급한 정치가 따로 없다. 딥페이크도 따로 없다. 이런 게 민주주의를 위장한 딥페이크 정치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계엄 이후 탄핵소추 결론까지 4개월은 전쟁 대하 드라마 한 편을 보는 듯했다. 대통령은 마치 전쟁 영화의 주인공인 양 장수의 길을 자진해서 선택한 듯했다. 헌재 결론을 총평하면 여야 모두 책임에서 자유롭지는 않다는 게 요지다. 협치를 상호 거부했기 때문이다. 야댱도 대통령으로 하여금 국회를 배제케 유도한 책임이 컸으나 헌재는 대통령의 헌법정신 위배에 대해 상대적으로 더 무겁게 다뤘다. 지난 수개월간 국정 공백과 민생 외면의 부작용은 실로 심각했다. 민감국가 지정이 눈앞에 닥쳐와서 국가 산업이 위태롭고 국가 신인도 저하가 뻔한데도 여야는 마치 남의 나라 일처럼 방임했다. 이 과정에서 야당은 초법적 행태를 물불 안 가리고 상대에게 과도하게 행사하기까지 했다. 그리하여 정국이 탈출구를 전혀 찾질 못하고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급기야는 불행한 사상 초유의 대형 산불 재난 사태가 발생했다. 따라서 이는 한마디로 정치권 혼란이 자초한 산불로 봐야 한다. 단 이틀 사이에 30군데에서 산불이 동시다발로 났을 정도로 손을 놓고 있었다. 정국이 그 모양이니 산림 당국이나 소방 당국인들 제대로 돌아갔을 리가 있겠는가. 총체적 난국이란 게 따로 없다.
이런 치졸한 정치의 원인은 정치의견 수렴과정에서 여과 장치가 결여돼 있다는 점에 있다. 그래서 절차가 무시된 결과 중심 사고방식이 고착화돼 있고 권위에 대한 도전이 쉽고 빠르게 진행된다. 이게 한국 사회 전반에서 권위의 문턱을 낮추어 놓은 결과까지 초래했다. 우리가 과도한 평등주의에 빠져 있는 것 아닐까. 이에 반해 선진 정치의 특징은 여과 절차가 만들어져 있다는 데 있다. 절차 중시의 문화를 실현하고 있는 선진국, 특히 미국과 영국에서는 이원제 의회 구조를 갖고 한다. 양원제는 의회 안정성을 추구하는 것이 가장 큰 취지이며 대통령중심제나 내각제와는 전혀 무관하다. 하원 통과 안이 비합리적일 경우 상원에서 바로잡을 기회가 있다. 속도와 효율성에서는 떨어지지만 의회 안정성을 추구하는 것이 목적이다. 하원에서 통과된 안이라 하더라도 상원을 또 한번 거쳐야 하기 때문에 여과 기능만큼은 충분하다. 우리는 급속으로 발전해 오다 보니 과정을 생략하는 일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그러다 보니 권위에 대한 존중 의식도 저절로 사라졌다. 밑에서 위를 우습게 본다. 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만일 개헌을 한다면 우리도 절차를 중시하는 양원제 도입 방향을 검토해야 한다. 특히 이번 29회에 걸친 탄핵소추에서 봤듯이 의회 전제를 방지하기 위해선 단원제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로 명시된 헌법 제1장에서 명시한 정신이 산 민주주의를 실현해 나갈 수 있다. 그게 저열 정치를 벗어나 고급 정치로 가는 길이다.
왜 토론을 통한 설득 과정이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가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대통령 파면을 결정하면서도 국회를 향해 정부와의 관계에서 관용, 그리고 자제를 기조로 대화와 협상을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으며 야당이 주도한 고위 공직자 29차례 연속 탄핵도 이례적이며 일방적이라고 평가했다. 대통령 취임 이래 야당이 주도한 이례적으로 많은 탄핵소추로 인하여 여러 고위 공직자의 권한 행사가 정지됐다고 지적했다. 또한 2025년도 예산안이 헌정 사상 최초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야당 단독으로 전면 감액 의결됐다고 꼬집었다. 정부가 받아들이기 곤란한 법률안들을 야당이 일방적으로 통과시킴으로써 대통령의 반복적 재의 요구를 유발했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의 국회 배제와 국회의 대통령 존중 결여의 원인은 어느 일방의 책임은 아니며 쌍방 간 대화 부족에 기인한다고 봤다. 국회 역시 정부와의 관계에서 타협하는 관용을 보였어야 했다는 지적도 했다. 소수 의견이라고 다수결 묵살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다. 동일한 사유로 탄핵소추를 반복적으로 발의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은 다수 의석 정당이 탄핵제도를 정쟁의 도구로 변질시킬 위험이 있다는 재판 의견도 있었다. 이를 놓고 어느 기자는 합법의 탈을 쓴 위장 민주주의라고 했다. 이래서 딥페이크 정치라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어느 공당 대표에 대해 대표 자신에 대한 형사상 범죄 혐의 관련 혐의 재판을 여럿 받으면서까지 차기 대선에 나오겠다고 하는 일 자체를 무리라고 봤다. 또한 국민의식 수준에 대한 도전이라고 봤다. 탄핵 후에도 개헌과 같은 중대사에 대해서 심지어 당내에서조차 대화가 없이 언론 플레이를 답습하는 행태도 나타났다. 당내 개헌 논의를 당 중진(국회의장)이 제의했으나 토론 과정 없이 당대표 주변 인물이 그대로 물리쳤다. 그러자 국회의장은 며칠 후 없던 일인 듯 말 한마디 없이 그대로 물러섰다. 이게 우리 정치의 고질적 토론 부재를 증명해주는 것이다. 당내에서 그러니 당외로는 오죽하겠나.
결론적으로 대화와 협력이 없다 보니 여야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현실이 한국 정치의 불편한 진실이다. 즉 토론 부재는 정치 재난을 불러 일으키는 원인이라는 게 헌재의 지적이다. 이런 우리 사회의 토론 무시 문화에 대해 이견을 달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런 불상사가 다시 생기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서든 고쳐야 할 것 아닌가. 대통령이 통치행위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법을 모르고 어리석게 했을 리는 없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오히려 법리에 너무 강해 그게 역으로 작용한 경우다. 그러나 왜 그 길로 갈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분석은 필요하다. 토론 부족의 단원제가 그 이유 중 하나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협치를 하도록 제도화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런 시스템으로서는 의회 양원제가 있는데 혹시 이것이 우리에게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 면밀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헌정 사상 부끄러운 대통령 탄핵이 재발하지 않게 하기 위해 새로운 제도가 도움이 된다면 도입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 절차 중시의 양원제가 거대 정당의 전횡을 방지하는 데는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본다.
탄핵 후에도 개헌과 같은 중대사에 대해서 심지어 당내에서조차 토론과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오히려 늘 그랬듯 당내 정파 간 언론 플레이를 답습하는 행태도 나타났다. 예를 들면 당내 개헌 논의를 당 중진인 국회의장이 제의했으나 당대표의 반발로 아무 후속 토론 과정 없이 며칠 후 아예 없던 일인 듯 사라졌다. 이게 우리 정치의 토론 부재 불치병이다. 그러므로 탄핵으로 민주주의를 복원시켰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겠지만 그것은 야당의 자족 내지 자만에 불과한 것이다. 탄핵을 유발하는 요인이 싹 트지 않도록 서로 조심하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지만 이번에 봤듯이 계엄 선포자와 탄핵 유발자 쌍방 간에 그런 요인을 사전에 제거하기 위해 아무도 노력하지 않다가 돌아설 수 없는 형국에 이른 것이다. 그래서 의회 양원제가 하나의 해법이 되리라 보는 것이다. 우리도 한때 양원제를 실시하려 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먹고살기 힘들 때 이를 악물고 이겨내겠다는 굳은 각오로 누구나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기 위해 노력했다. 정치권도 그런 노력에 합세했다. 그래서 이른바 한강의 기적이 불과 단 20년 만에 극적으로 이루어졌다. 지금과 같은 환란 속에서도 국가 동력이 꺼지지 않도록 국민들은 각자 위치에서 여전히 안간힘을 다하고 있으나 정치권은 권력 찬탈에만 혈안이 되어 국가 앞날에는 눈이 멀었다. 기업도 맥을 잃고 있지 않나. 삼성을 보라. 메모리 1위의 역사를 쓴 지 32년 만에 1위 자리를 엔비디아에 내주었다. 글로벌 7위의 위치에서 단숨에 39위로 추락했다. 그러면 100위 아래로 더 내려갈 때까지 방관만 하고 있겠다는 뜻인가. 선거철 다가와 말로만 무슨 강국 하고 외쳐대면 뭐하나. 그걸로 국가산업이 발전하고 국가동력이 움트나. 정치 풍토 개선을 위해 토론 문화를 만들고 그를 위해 필요하면 개헌도 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도 기업들도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다.
문송천 필자 이력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미국 일리노이대(어바나 샴페인) 전산학 박사 ▷유럽IT학회 아시아 대표이사 ▷대한적십자사 친선홍보대사 ▷카이스트·케임브리지대·에든버러대 전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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