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국제정치]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와 미국 중심의 국제 경제 구조 재편 시도에 따른 난폭한 상호관세 부과 후유증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관세 제일주의’다. 예상치 못하게 미 국채 시장에 충격을 주자 일단 개별 협상을 통해 관세를 조정하겠다면서 상호관세 부과를 90일간 유예한 상태다. 그러나 중국에 부과한 145% 관세는 예외였다. 중국은 국제 다자 무역 질서를 도외시한 미국의 ‘비이성적 조치’에 반발하면서 미국에 125%에 달하는 보복 관세로 결사 항전을 천명하고 있다.
일단 현재까지 나타난 결과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조급성이 좌충우돌식 정책으로 나타나고 있어 국내외의 신뢰를 잃은 것처럼 보인다. 미국 재정 적자 감소 및 국제 공급망 재편으로 중국과의 ‘불공평한 무역 관계’를 청산하겠다는 ‘전략적 명확성’은 분명한 것 같지만, 예상치 못한 저항에 따른 전술적 대응이 불확실성을 배가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압박에 온몸으로 저항하면서 공격을 받는 입장인 중국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상대적 안정성을 보이면서 미국에 대항하는 ‘반미 연합전선’ 구축에 열중인 모양새다. 미·중 간의 첨예한 갈등 속에서 전 세계 경제도 신음하기 시작하면서 ‘승자 없는 전쟁’에 대한 우려가 증폭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우선 미국의 상황이 더 좋지 않아 보인다. 올해 1분기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022년 이후 3년 만에 전 분기 대비–0.3% 역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100일 경제성적표가 부진하자 경기침체 우려도 커지고 있다. 최근 관세는 인플레이션 심화 가능성이 크고 많은 이들이 경기침체 가능성을 더 고려하도록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기침체에 대한 공포가 커지자 투자자들이 주식과 금, 원유, 구리 등을 투매하면서 미 금융시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내림세를 보였다. 게다가 전 세계 최고 안전자산으로 평가받는 국채금리의 상승은 미국의 재정 적자 증가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으며,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인 감세 정책과 인플레 잡기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외교적 협상에서도 미국식 방안이 주효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일단 상호관세 우선협상 대상국 5개국 중 제일 먼저 협상에 나선 일본과의 합의가 난항이다. 1985년 당시 미국과의 플라자 합의에 따른 환율 조정 여파로 ‘잃어버린 30년’의 아픈 기억이 있는 일본은 결국 미국과의 선제적 합의가 환율 조정으로 또다시 이어질 수 있다는 인식하에 무이자 ‘100년 국채’ 매입 등 미국의 요구를 듣지 않았다. 이는 일본과의 우선 합의를 통해 전반적인 미국 주도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미국의 전략에 손상을 입혔다. 미국의 지나친 요구에 대한 일본의 반발은 다른 국가들의 대미 협상에 일정한 기초를 제공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리창(李强) 총리가 이시바 일본 총리에게 국제주의 다자질서를 견지하자는 친서를 보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상대적으로 중국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안정적이다. 물론 세계 1위 제조업 국가로서 ‘과잉 생산’으로 의심받는 생산 제품들을 수출이나 내수로 소화해야 하므로 장기적으로는 타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중국은 트럼프의 재집권에 만반의 대비를 했다는 듯 내부적으로 강력한 내수 지원 정책과 함께 중국식 ‘애국주의’까지 동원해 대항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중국 정부의 대미 항전을 인민의 70% 이상이 지지하고 있다며 미국의 관세정책이 결코 중국을 무릎 꿇릴 수 없다는 여론전을 전개하고 있다. 민생 경제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지만, 일단 이번 기회를 새로운 국제 무역 질서 구축의 호기로 인식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객관적 자신감도 일부 있다. 중국은 전 세계 공급망의 40%를 담당하고 있는 경제 영향력 최강 국가라는 인식과, 이에 따른 제조업 산업 클러스터가 구축돼 있다는 현실적 자신감이 크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계속 미국과의 갈등을 유지하기는 어렵지만 소위 지구전(持久戰)이라는 버티기는 일정 기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하이테크 기술 분야에도 상당한 진전이 있었고, 대미 수출 의존도를 13%까지 낮췄고 금융시장도 아직은 안정적이므로, 일정한 내수 증가만 뒷받침해준다면 위기 극복이 가능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인식과 정책의 근저에는 강력한 사회주의의 ‘체제적 효용성’이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체제 속성상 표면적인 일사불란함을 보인다고 해서 곪고 있는 상처가 치유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일단 양국은 협상을 둘러싸고 서로 먼저 연락하라는 자존심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겉으로는 협상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어떠한 조짐도 없지만 이미 서로 간의 분위기 조성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 11일 아이폰 등 중국 수입 전자제품에 대해 관세를 면제했다. 금액으로는 미화 약 1020억 달러에 달하는 수치로 작년 전체 미국 대중수입품의 22%를 차지한다. 중국도 모든 추가 관세 부과를 취소해야 협상이 가능하다는 입장에서 선회해 왕샤오홍(王小洪) 공안부장과 미 정부 고위관료 간의 회담을 제3국에서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펜타닐 관세가 관세 전쟁의 시작임을 생각해 볼 때 의미있는 진전으로 보인다.
문제는 수출 주도형 국가인 한국이다. 중국과 미국이 여전히 수출 1·2위 국가이기 때문이다. 미·중 무역 갈등은 적어도 통상분야에서는 승자 없는 전쟁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당장 어느 쪽이 유리해 보인다고 그 방향으로 갈 리도 만무하다. 결국은 전 세계 패권을 염두에 두고 일합을 겨루는 것이기 때문에 일희일비할 문제가 아니다. 무역, 과학기술, 금융 등 거의 전 분야에서 갈등이 노정돼 있다. 미·중 간의 담판을 통해 구체적 타협안이 나오길 기대하지만 이를 기다릴 수만은 없는 일이다. 국내 정치가 어려운 상황이지만 국가 전략 차원에서 중지를 모아야 한다.
▷한국외대 교수 ▷대만국립정치대 동아연구소 중국 정치경제학 박사 ▷한중사회과학학회 명예회장 ▷HK+국가전략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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