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 몰려오는 '트럼프 2.0' 파고 …일본의 로비 전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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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 논설위원장
입력 2024-03-1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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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 논설위원장
[곽재원 논설위원장]



 제22대 총선을 앞두고 나라가 아수라장이다. 세상이 복잡다단해지고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는데도 최근의 선거는 여야를 구별 못할 정도로 ’쟁점의 희석화‘가 심하게 일어나고 있다. 여야가 내놓는 매니페스토는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러다 보니 가짜 뉴스의 남발과 현혹, 인신공격에 빠져드는 경향이 있다. 이젠 SNS(사회관계망)에 더해 AI(인공지능)까지 가세하는 형국이라 선거 후에도 그 후유증이 간단히 수습될 것 같지 않다. 총선으로 인한 총체적 난국이다.
 한국이 총선을 치르는 오는 4월 10일에 일본 총리는 워싱턴을 방문한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는 이번 국빈 방문을 통해 미·일동맹이 자유롭고 개방된 국제질서를 유지한다는 인식을 공유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을 노리는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미국 의회에서 당파를 초월한 미·일 결속의 중요성을 재확인한다.
 기시다 총리는 4월 10일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회담하고, 11일에는 연방의회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한다. 이후 남부 노스캐롤라이나주 등 지방을 시찰한다.
 일본 총리가 미국 의회에서 연설하는 것은 9년 만이다. 지난 2015년 미국 의회 연설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희망의 동맹'을 주창했다. 미·일 양국이 "힘을 합쳐 세상을 훨씬 더 나은 곳으로 만들자"고 호소했다. 이에 앞서 2003년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총리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세계 속의 미·일동맹'을 확인했다. 일본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에 대한 후방 지원에 나선 시기였다.
 전후 미·일 관계는 오랫동안 일본이 기지를 제공하고 미국은 군사적 억지력으로 극동지역을 안정시키는 역할 분담이었다. 일본은 1990년대부터 자위대의 국제 기여를 확대했고, 2015년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제한적으로 용인하는 안보 법제를 정비했다.
 
 지금 세계는 두 개의 전쟁에 직면해 있다. 미국은 러시아의 침략을 받는 우크라이나, 이슬람 조직 하마스와 싸우는 이스라엘을 각각 지원하고 있다. 세계 2위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가진 중국과는 군사력과 첨단 기술을 둘러싼 패권 다툼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 내에서는 기시다 정권의 방위비 증액과 우크라이나 지원을 평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백악관은 지난 1월 일본 총리의 방미와 관련해 '세계에서 일본의 리더십 역할 확대'를 보여줄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기시다 내각 지지율이 부진한 상황에서도 미국 의회가 연설 기회를 주는 것은 이런 배경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일본 총리는 재선을 노리는 바이든과 좋은 관계를 구축하는 한편, 공화당 후보인 트럼프가 대통령에 복귀할 경우의 대비도 염두에 둔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가 승리해 트럼프 정권이 다시 들어선다면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서 탈퇴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지난 트럼프 정권에서 주한미군 감축에 대한 우려도 사라지지 않았다. 미국이 고립주의를 강화하면 중국과 러시아는 패권주의적 움직임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만해협과 오키나와, 센카쿠열도 등 일본 주변의 안정을 유지할 수 없게 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물론 지나친 비관론일 수 있다.
 일본경제신문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의 미국 지방 방문은 '만약의 경우'를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기시다 총리는 일본 기업이 진출해 현지 고용과 경제에 기여하고 있는 곳을 시찰할 것이라고 한다. 후보지인 노스캐롤라이나주는 도요타자동차가 전기차(EV) 등 차량용 배터리 공장을 건설해 2025년 가동할 계획이다. 일본 총리의 시찰은 일본 기업의 미국 투자 확대와 미국 고용에 대한 기여를 미국 여론에 다시 한번 호소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 공장에는 5000명 이상이 근무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적자 등 양국 간 단기적인 손익에 관심을 두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노린 행보다. 트럼프 전 정권이 출범한 2017년 도요타 아키오 도요타 사장(당시)은 미국에 1조엔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일본 총리의 노스캐롤라이나주 시찰은 바이든 정권을 향한 의미도 있다. 바이든 정권은 2022년 전기자동차 등의 육성 대책인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주요 정책으로 통과시켰다. 일본 정부로서는 바이든 정책의 핵심 가운데 하나인 탈탄소화 노력을 독려하는 메시지도 겨냥한 두 마리 토끼 잡기인 셈이다.
 
 현재로선 트럼프 복귀(트럼프 2.0)가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라 할 수 있다. 여러 변수가 있지만 '트럼프 2.0'을 제대로 두려워하고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게 일본 정치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이와 관련해 일본 언론과 싱크탱크들이 일제히 트럼프2.0 전망과 분석 보고서를 내고 있다.
 일본 언론들이 소개한 좋은 사례가 있다. 지난 2016년 9월 당시 주미대사였던 사사에 겐이치로(현재 일본국제문제연구소 이사장)는 대통령 선거를 두달 정도 앞두고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사위로서 선거전을 지휘하는 쿠슈너와 뉴욕에서 면담했다. 그는 "일본은 미국을 중시하고 있다. 당선되면 여러 가지 일을 함께 하고 싶다"고 전하고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대부분의 예상과 달리 트럼프의 당선이 확실시되던 날 밤, 사사에 대사는 쿠슈너에게 연락을 취한다. 그는 "총리가 전화하고 싶다"고 전하자 비서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즉각 아베 신조 총리와의 회담이 성사됐다. 유럽 정상들이 놀란 미·일정상 관계의 초석이 이렇게 쌓였다. 대미 투자 실적을 꼼꼼히 설명하는 전략도 트럼프의 기세를 누그러뜨리는 데 성공했다.
 집권 자민당의 아마리 아키라 전 간사장은 최근 한 TV 프로그램에서 트럼프가 재선될 경우 아베 전 총리 시절의 협상 경험을 살려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당시 직원을 관저로 복귀시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베 캠프의 참모들은 모두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이를 최대한 활용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트럼프는 거래하는 사람이다. 재선되더라도 성격이나 방식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음 선거를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종횡무진으로 자기 뜻대로 하려는 힘이 더 작용한다"고도 했다.
 그러한 트럼프도 손익계산서를 이용해 협상한 아베 총리를 '천재적'이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아마리 전 간사장은 "미국에 이익이 될 뿐만 아니라 동맹국 내에서 당신의 위치를 높여주기 때문에 이익이라는 논리를 전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트럼프 전 대통령은 복귀 시 중국에 60% 이상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에 대해서도 ”어떻게 미국을 유도해 디리스킹(위험 감소) 방식을 취하도록 할 것인지, 누가 할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와 관련해 "정상 간 대화가 아니면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아소 다로(麻生太郎) 자민당 부총재도 트럼프에 대한 로비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아소 부총재는 지난 1월 워싱턴을 방문해 명문 재벌로 미국 상원의원을 지낸 존 록펠러 4세를 만났다. 두 가문의 오래 된 인연을 활용하려는 의도다. 일본은 1952년 세계은행에 가입해 전후 부흥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빌려 전력 개발과 신칸센 등 인프라 구축에 사용했다. 당시 총리였던 아소의 할아버지 요시다 시게루(吉田茂)의 요청을 세계은행에 전달한 것은 록펠러 가문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1월 방미 때도 이런 관계를 통해 트럼프를 만나려 했으나 일정이 맞지 않아 성사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소 부총재는 이런 인연에 더해 바이든 대통령과는 오바마 정부 시절 부통령 시절부터, 트럼프와는 아베 정부 시절 부총리로 인연을 맺었다. 만약 미국에서 정권이 교체될 경우 아소는 정권교체기의 파이프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성공경험과 로비 전략이 다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를 대비하는 일련의 포석은 미·일간 지하수맥의 두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일본의 행보는 이번 바이든과 트럼프의 대결에서 트럼프의 재집권을 단정할 단계는 아니지만 어떤 상황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미즈호 리서치의 야스이 아키히코 조사부장은 “어떻게 하면 트럼프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지 고민하고, 극단적인 발언과 공약에 휘둘리지 않고 냉정하게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트럼프 복귀의 리스크를 3가지로 꼽고 있다. 첫째, 미국의 '사적화‘(私的化)다. 권위주의로 의회를 경시하고 관료들을 교체한다. 민주주의 경시로 미국의 소프트파워가 저하된다. 둘째, 본원적 미국 우선주의다. 이민자 유입을 제한하고 무역적자를 빌미로 삼는다. 수입품에 대한 10% 관세안이 대표적이다. 셋째, 중장기 과제 경시다. 화석연료 의존도로의 회귀, 감세 등 재정 기강 해이, 인종 갈등 재점화 등이 거론된다. 경제적으로는 달러 약세, 저금리, 수입 관세, 이민 제한으로 인한 인력 부족 등 전반적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트럼프의 복귀는 선거와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노골화하며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어 강권적인 중국과 러시아를 유리하게 만들 수 있다. 우크라이나 지원, 대 중국 관계, 다자간 협력 유지 등으로 민주주의 세력의 결속을 일본이 유럽 세력에게 촉구해야 한다는 논의가 일본 내에서 일고 있는 이유다.

 트럼프 2.0이 현실화된다면 그 파고가 일본보다 한국에 훨씬 더 높고 강하게 밀려올 수 있다. 정부든 기업이든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걱정하기보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다. 지금은 개별 사안이 아닌 종합적인 시뮬레이션을 해야 할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익숙해져 왔고, 이를 전제로 비즈니스를 최적화해 온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라는 국제질서가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중기적으로는 새로운 외교의 대안을 구상해야 한다.
 ‘트럼프2.0' 리스크가 점차 높아지면서 일본을 비롯한 주요국들이 미국의 외교·안보와 경제의 변화에 대비하는 모습과 총선을 앞두고 헐뜯기와 파벌경쟁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한국 정치의 모습이 확연한 대조를 이룬다. 외향화하는 일본의 밝은 미래와 내향화하는 한국의 불안한 미래를 보는 것 같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가천대·호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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