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탈출하는 간호사들 下] '간호법' 없는 간호사 정책…'밑 빠진 독에 물 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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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선혜 수습기자
입력 2024-01-0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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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호사 증원 정책, "현장 모르는 탁상행정"

  • 인력 증원보단 노동환경 개선 시급

  • 전문가들 "간호법 제정은 국민 건강 위한 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국내 간호사들의 해외 취업 러시로 인한 ‘K-간호인력 탈(脫)한국’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인력 증원 및 보수체계 개선 등 직접적인 대책이 나오고는 있지만 실제 간호사들이 요구하는 근원적인 해법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간호사들이 포함된 전국 보건의료인들은 “간호사들의 숙원인 ‘간호법’ 하나도 제대로 통과되지 못하는 나라에서 무슨 해외 취업을 막고, 간호사들의 어려움을 덜어줄 수 있느냐”며 정부 정책의 실효성을 지적하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9일 보건복지부와 대한간호협회 등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2019년부터 매년 700명씩 증원해 온 간호대학 정원을 오는 2025년부터 매년 1000명으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간호인력 충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같은 정부 정책에 대해 현장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은 “보건복지부의 간호대학 증원은 현장을 모르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오진수씨(가명·26세·수술실 간호사 1년 차)는 "현재 시행하고 있는 간호사 증원 정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다름없다"며 "환자들이 생각하는 온전한 의료 보살핌을 받으려면 신규 간호사가 아니라 3~7년 차의 베테랑 간호사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이서진씨(가명·29세·병동간호사 6년 차)는 "간호사의 노동환경이 바뀌지 않는 한 신입 간호사가 숙련되기도 전에 퇴사하거나, 숙련 간호사가 되고 나서 그만두거나 하는 일은 계속 반복될 것"이라며 "간호학과 정원을 늘리는 건 장롱 간호면허를 생산하는 일과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이들 모두 신입 간호사의 양적 증대는 불가피하지만, 간호사들의 탈한국 현상이 일어나는 현시점에서는 3~7년 차 베테랑 현장 간호사에 대한 처우개선이 더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사진박명섭 기자
지난해 4월 4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대한간호협회 회원들이 간호법 제정촉구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박명섭 기자]
 
간호사들 "간호 노동환경 개선 위해 간호법 제정 필요해"
대다수 간호사들은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선 ‘간호법’ 제정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간호법이란 의료법, 보건의료인력지원법으로부터 간호 인력에 관한 내용을 독립시키는 법안을 일컫는다. 현재 간호사는 의료법 안에 포함돼 있어 업무 영역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다. 이에 현장에서는 채혈 등 기본적인 일부터 간단한 수술까지 간호사들이 하는 일이 허다하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 관계자는 "간호법이 제정된다면 간호사들이 가진 여러 가지 문제들을 법안에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며 "간호법은 간호사 근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만드는 일"이라고 했다. 

올해 대한간호협회(간협)는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간호법의 재의결에 사활을 걸고 있다. 간협이 추진하는 간호법에는 △간호사 업무 범위 명확화 △간호종합계획 수립 △적절한 간호사 확보·배치 △노동 시간 확보·처우 개선 등이 포함된다.

김영경 간협 회장은 “지난해 매주 수요일마다 간호법 제정 촉구를 위해 국회와 광화문에서 염원을 외치고 호소했다”며 “올해 역시 간호법 제정이라는 우리 모두의 숙원과제를 반드시 이뤄낼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성모병원에서 간호사들이 업무를 하고 있다사진나선혜기자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성모병원에서 간호사들이 업무를 하고 있다. [사진=나선혜 기자]
 
전문가, "간호사 업무 범위 명확히 하면 오히려 정부가 걱정하는 의료비 절감 가능"
전문가들도 간호법 제정은 단순히 간호사의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김종호 호서대 법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현행 간호에 대한 의료법은 매우 포괄적으로 규정해 간호에 대한 명확한 내용이 부족하다"며 "활동 간호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나라 현실을 고려해 실효성 있는 조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수영 한양대 법학연구소 연구원은 "간호법 제정은 간호사 업무에 대한 사회의 현실적 요구를 반영해 의료공백 문제 개선과 국민의 생명, 건강에 기여하는 기능을 한다"며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한다면 국민 건강과 안전을 증진하고, 오히려 의료비 절감이라는 국가적 차원의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기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환자에게 "잠시만요" 외치지 않는 간호환경 되길
유튜브 닷페이스에 출연해 간호환경에 대해 이야기하는 간호사 장여운씨 사진유튜브 닷페이스 캡처
유튜브 '닷페이스'에 출연해 간호환경에 대해 이야기하는 간호사 장여운씨 [사진=유튜브 닷페이스 캡처]

그저 간호사로서 살기 위해 떠나는 이의 꿈은 뭘까. 김수진씨(가명·28세·병동간호사 6년 차)는 간호사가 된 뒤 가장 많이 했던 "잠시만요"를 외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환자를 하나하나 꼼꼼히 봐주고 싶지만 환자가 너무 많아 늘 '잠시만요'를 말하고 다녔다. 

다음 달 해외 취업이 확정돼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 김씨는 “한국 간호사들의 노동 환경이 좋아지는 건, 단순히 간호 인력이 증원되고, 보수가 늘어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고 자신한다. 간호법 제정은 기본이고, 소위 ‘시녀·시다바리(조수)’로 취급하는 간호사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사라져야 그나마 노동 환경이 개선된다는 신념이다.

"간호사가 어떻게 일하는지 아니까, 우리 부모님을 과연 병원에 믿고 맡길 수 있는지를 고민하면 선뜻 자신이 서질 않더라고요. 간호사인 저조차도 이렇게 생각하는데, 일반인들은 어쩌겠어요. 내 가족을 믿고 맡길 수 있는 병원이 많아졌으면 해요. 그만큼 한국 간호사들의 근무 환경이 좋아진다면 그때 저는 다시 한국에 돌아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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