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보다 무서운 돈…이스라엘 못 떠나는 태국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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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혜 기자
입력 2023-10-25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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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동자 3만명 중 1만8500명 체류 원해

  • 태국 북동부 농민들 귀국해도 '빚' 걱정

  • 일자리 얻기 위해 발생한 수수료 갚아야

  • 저임금·심각한 불평등에 해외 취업…빈부격차 해소 자구책 마련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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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아무리 많아도 목숨보다 소중하지 않다. 당장 돌아와라.” 세타 타위신 태국 총리는 지난 23일(이하 현지시간) 팔레스타인과 전쟁 중인 이스라엘에 있는 자국 노동자들에게 귀국할 것을 호소했다.

이스라엘에 체류하던 태국인 노동자 3만명 가운데 약 3000명이 귀국했고, 8500명은 귀국을 신청했다. 반면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약 1만8500명은 여전히 이스라엘에 머물길 원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에 있는 태국 노동자의 80% 이상은 태국의 가장 가난한 지역인 북동부 출신이다. 태국 북동부에는 양질의 일자리가 없으며, 벼농사로는 입에 겨우 풀칠이나 할 수 있는 수준이다. 태국 농민들은 높은 보수를 보장하는 일자리를 찾아 1980년대부터 이스라엘로 향했다. 이후 2011년 이스라엘과 태국 양국이 농업 분야 근로자 도입 협정에 합의하면서 태국 농민들은 대규모로 이스라엘로 건너갔다. 
 
문제는 태국인들이 이스라엘로 가기 위해서는 땅이나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 수수료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태국 노동자가 이스라엘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서는 공식 수수료 7만바트(약 260만원)를 비롯해 최대 12만바트(약 446만원)가 필요하다. BBC는 “일찍 귀국한 이들의 걱정은 채무”라며 “태국 노동자들은 통상 최소 5년은 이스라엘에서 일하며, 그렇게 해야만 빚을 갚을 수 있다”고 짚었다.
 
이스라엘에 태국인 왜 많나…“팔레스타인 인력 대체”
BBC, CNN, 타이랜드비즈니스뉴스 등 외신은 지난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으로 태국인 다수가 사망한 이유에 주목했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이후 23일 기준으로 태국인 근로자 30명이 사망했고, 18명이 다쳤다. 외국인 중 가장 많은 사상자다. 또 19명은 하마스에 인질로 억류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스라엘 내 태국인 노동자 약 3만명 가운데 5000명은 이스라엘 농작물의 약 75%가 재배되는 가자지구 인근 키부츠(집단농장) 등에서 일했다. 하마스 공격에 태국인 다수가 사망한 이유다.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 노동력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태국을 주목했다. 특히 1987년 인티파다(팔레스타인 주민의 대이스라엘 저항 운동) 이후 태국 노동자들의 이스라엘 유입이 빨라졌다. 인류학자 마탄 카미너는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이 다른 나라 출신의 이주 노동자로 대체됐다”며 “노동력 수급에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이스라엘 정부가 내린 전략적 결정이었다”고 닛케이아시아에 말했다.

이스라엘의 노동자 권익 보호단체인 카브 라오베드(Kav LaOved)의 대변인은 “1990년대에 건설 현장과 농업 분야에서 일했던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을 이주 노동자가 대신하기 시작했다”며 “봉쇄와 테러 등 보안 문제로 인해 팔레스타인 노동자에 대한 신뢰가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CNN에 말했다
 
이후 태국과 이스라엘이 2011년 체결한 농업 분야 근로자 도입 협정이 2013년부터 시행되면서 수만명에 달하는 태국 노동자들이 이스라엘로 건너갔다. 레베카 라이즈만과 논나 쿠쉬니로비치의 연구에 따르면 이스라엘 농업 분야의 외국인 근로자 가운데 거의 100%가 태국 출신이다. 또한 대부분은 남성이며 84%는 태국 북동부 출신이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대부분 태국 북동부 시골 지역 출신인 이들은 돈을 벌어 고향에 있는 가족에게 보내 집을 짓거나 대출금을 갚거나 자녀를 교육시킨다”고 전했다. 태국 시골 출신 노동자들은 이스라엘에서 월 최저 5300셰켈(175만원)을 버는데, 이는 태국에서 벌 수 있는 소득의 두 배에 달하는 수준이라고 타이랜드비즈니스뉴스는 전했다.
 
그러나 밝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 국무부는 2022년 인신매매 보고서를 통해 이스라엘 농업 부문에 고용된 일부 태국 근로자의 처우 수준을 강제 노동으로 규정했다.

더구나 이·팔 전쟁의 불안 속에서 태국 노동자들은 계속 일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스라엘 내 태국인 노동자들을 돕기 위해 설립된 단체인 '농장 노동자를 위한 지원'(Aid for Farm Workers)은 성명을 내고 “(피난처로) 대피한 태국 노동자 다수는 즉시 현장으로 출근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이번 전쟁으로 태국 노동력이 이스라엘에서 대거 빠져나갈 경우 처우가 개선되는 전환점이 될 것이란 분석도 있다. 이스라엘 내 태국인 노동자를 연구하는 야헬 쿠를란더는 “노동력이 극도로 부족해지면, 그들은 더 많은 돈과 더 많은 권리를 요구할 수 있다”고 짚었다.
 
“빈부격차 줄이고 양질의 일자리 늘려야” 태국 정부 향한 비판도
하마스의 공격으로 사망한 태국 노동자 수가 많다는 사실은 태국의 심각한 소득 불평등을 방증한다. 이들 다수는 위험을 무릅쓰고 해외에서 일자리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타이랜드비즈니스뉴스는 “제한된 취업 기회와 저임금으로 인해 지방 노동력 대부분은 수도 방콕으로 이주하거나 이스라엘 등 해외 취업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태국은 동남아시아 국가 가운데 소득 불평등 수준이 가장 높다.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35%를 번다. 소득 하위 10%는 전체 소득의 고작 2%만 차지한다. 또한 빈곤층의 79%가 농촌 지역에 거주한다.
 
세계은행은 “2020년을 기준으로 농촌 지역의 빈곤율이 도시 지역보다 3%포인트 이상 높았다”며 “농촌 빈곤층의 수가 도시 빈곤층보다 거의 230만명 더 많다. 남부와 북동부 지역의 빈곤율은 국가 전체 빈곤율의 거의 두 배에 달했다”고 분석했다.
 
또한 태국의 2019년 지니계수는 43.3%로 동아시아 및 태평양 지역에서 소득 불평등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농촌 가구의 경우 월 평균 소득은 도시 가구의 약 68%에 그쳤다. 
 
나콘파놈대학교의 인류학자인 푸나트리 지아비리야분야는 "이들은 정부가 방치한 가난한 이주 노동자, 가난한 농부들“이라며 ”국민들이 가족을 떠나 해외로 나갈 일이 없도록 (태국 정부는) 지역 발전을 위한 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BBC에 말했다.
 
타이랜드비즈니스뉴스는 ”태국 정부는 소득 불평등 해소, 중산층 확대, 자국 내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중점을 둬, 근로자들이 위험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해외 취업을 모색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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