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태윤 칼럼] 기술전쟁 시대, 국내 대기업의 경쟁정보 기능 확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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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태윤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글로벌전략·정보학과 대우교수
입력 2023-08-09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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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태윤 교수
[엄태윤 교수]
 



미국과 중국 간의 기술패권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가운데 바이든 정부는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바이오, 희토류에 이어 최근 인공지능(AI)에 대해서도 중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미 정부와 일본 기시다 정부는 경제안보와 글로벌공급망 재구축 문제에 관해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하고 있으며, 일본 정부와 민간기업들은 그 어느 때 보다 기업정보 기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지금 종합상사가 반도체 기업들과 함께 일본 증시를 견인하고 있다. 일본은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 칩(Chip)4 동맹, 대중국 반도체 투자규제 등에 힘입어 반도체 산업의 부활을 추진하고 있다. 미쓰비시 상사, 미쓰이물산 등 종합상사는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이후 세계적인 정보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일본경제를 부흥시켰는데, 그동안 이들의 역할이 과거와 같이 화려한 조명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지난 5월 미쓰이 물산의 2022년도 순이익이 1조 1,306억 엔을 기록하는 등 일본 종합상사들의 순이익이 1조 엔을 넘어서고 있어 세간의 관심이 다시 집중되고 있다. 그 배경은 일본 종합상사들이 거래하는 원유, 천연가스 등 자원가격의 상승 때문이었다.
 
바이든 정부에서 경제안보와 글로벌공급망 재구축이 가장 큰 화두로 부상되면서, 세계 각국에서 정부는 물론 글로벌기업들도 경제정보 수집의 필요성을 새삼 느끼기 시작했다. 기시다 정부는 경제 안보를 강조하면서 일본 대기업과의 공조체제를 강화하고 있으며, 일본 종합상사의 해외정보 수집능력과 정보 판단의 중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 대기업들은 기시다 정부와의 가교역할을 수행할 정보담당 임원을 두고, 최근 벌어지고 있는 경제안보와 글로벌공급망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비하고 있다.
 
현재 세계 경제는 전기차, 반도체, 인공지능, 희토류, 바이오, 로봇, 자율주행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기술이 주도하고 있다. 일본 종합상사도 해외정보 네트워크를 통해 해외 자원투자, 컨소시엄 프로젝트 등에 참여하는 것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승차 공유, 자율주행기술 등 미래 핵심산업에도 투자하고 있다.
 
한편 미국 기업들은 1980년대 중반부터 불확실한 미래 상황에 대비하고 일본기업 등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기업정보 기능의 역할을 담당하는 경쟁정보(competitive intelligence) 조직을 설립하고, 체계적으로 기업정보를 수집·분석하는 시스템을 갖추어 성과를 거두고 있다. 현재 미국과 유럽의 글로벌기업들은 경쟁사들의 전략을 파악하고 세계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경쟁정보 조직을 활용하고 있다.
 
한편 국내기업의 정보수집 조직은 어떠한지 살펴보자. 국내 종합상사는 197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경제를 이끌어 왔으며 재벌그룹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었다. 삼성물산, ㈜대우, 현대종합상사, LG상사, ㈜선경, ㈜쌍용 등은 당시 학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이 기업들은 수출주도형의 국내산업을 견인했으며, 전 세계에 구축된 막강한 정보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수출을 주도했다.
 
한국 대기업들의 규모가 커지고 세계적인 전문기업으로 성장하면서 종합상사의 역할이 줄어들었으며, 대신 계열사들을 관리하고 기업 비전을 제시하는 컨트롤타워 조직이 필요하였다. 그동안 국내 대기업들은 비서실, 구조조정본부, 정책본부, 미래전략실 등 다양한 이름으로 컨트롤타워를 만들어 계열사 관리, 경쟁전략 수립, 신사업 및 미래비전 구상 등을 위한 창구로 활용해왔다. 그러나 삼성그룹의 경우, 2017년 삼성전자의 미래전략실이 해체된 이후 컨트롤타워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중국에 대한 미국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바이든 정부는 자국 기업 보호를 위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각종 규제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맞서 유럽 각국도 새로운 규제정책을 입안하고 있다. 세계 정치·경제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어 글로벌기업의 경쟁정보 기능이 중요해지고 있다.
 
최근 바이든 대통령이 미 정보기관인 CIA의 윌리엄 번스 국장을 미 정부 내각에 합류시켰다고 한다. 그 이유는 “CIA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확하게 예측하여 바이든 대통령의 대외정책에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한편 미쓰이 물산은 “1991년 소련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에 대한 쿠데타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여 일본 외무성에 전달했다”고 하며, 이토추상사의 전 회장 세지마 류조도 “1973년 제1차 오일쇼크를 예측하여 이토추상사에 많은 이익을 주었다”고 한다. 이처럼 정보(intelligence)는 국가정책에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민간기업의 이익 창출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정보는 보통 국가정보(national intelligence)와 경쟁정보(competitive intelligence)로 구분할 수 있다. 국가정보는 최고 통수권자의 정책판단을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며, 경쟁정보는 민간기업 CEO의 전략적 의사결정을 위해 사용된다. 최근 세계 각지에서 불확실성이 높아지자 국가정보에 못지않게 경쟁정보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SK하이닉스 등 국내기업들은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으며 세계시장에서 경쟁자들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고객 요구, 기술변화, 국제분쟁 등 다양한 환경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 국내기업들이 적기에 전략적인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경쟁정보 조직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대기업의 컨트롤타워는 경쟁정보라는 순기능을 가지고 있다. 한국 기업이 세계시장에서 초일류기업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업의 경쟁정보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미·중 간의 기술패권경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 장기화 등에 따라 발생하는 각종 경제안보와 글로벌공급망 문제에 잘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보기관의 국가정보는 물론 민간기업의 경쟁정보 기능이 효율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엄태윤 필자 주요 이력
 
△Pace대학 경영학 박사 △한국외국어대 국제관계학 박사 △한국외국어대 특임 강의교수 △주미 한국대사관 참사관 △제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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