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 근로자 성추행에도 침묵…사각지대 놓인 '원청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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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보경 기자
입력 2023-07-13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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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직장갑질119
12일 직장갑질119가 서울 영등포구 국회에서 직장내괴롭힘 금지법 시행 4주년을 맞아 '갑질금지법 시행 4주년 사각지대 해소방안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직장갑질119]

"후임들은 원청 직원이 성희롱을 해도 거절하지 못하고 들어주는 편입니다."

한 공기업 하청업체 소속 A씨는 원청 직원 B씨의 지속적인 성희롱 발언과 신체 접촉에 시달려왔다. A씨는 B씨를 만나는 것이 불안하고 두려워 문제를 제기했다. 이후 또 다른 피해자 사례들이 공기업 감사실에 정식으로 접수됐다. A씨는 "B씨는 억울하다고 동료들에게 탄원서 작성을 요구한다"며 "당당한 태도에 화가 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번 일로 원청 공기업에서 갑질을 당하지 않을까 두렵다"고 토로했다.

직장내괴롭힘 금지법 시행 4주년을 맞았지만 하청 근로자 대상 원청 갑질 처벌 한계 등 법 사각지대가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근로기준법 개정 등으로 원청에 사용자로서 조치 의무를 부담하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청직원 상대 갑질 책임소재 '원청 사용자' 분명해야

직장갑질119는 지난 1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갑질금지법 시행 4주년 사각지대 해소 방안 토론회'를 열었다. 

직장갑질119는 지난해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접수된 이메일을 전수 조사해 원청에 의한 간접고용 노동자(도급·용역·파견·협력업체 소속) 갑질 사례를 분석했다. 그 결과 하청 근로자에 대한 원청 사용자·근로자 갑질이 55.6%로 전체 절반에 달했다. 원청 인사 개입(23.5%)·하청업체 변경시 문제(13.1%)·파견근로관계 갑질(7.8%) 순이었다.

하청 근로자를 상대로 한 원청 사용자·근로자 갑질 해결을 위해서는 책임소재가 원청 사용자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근로기준법은 직장내괴롭힘 해결주체를 사용자로 규정한다. 사용자가 직장내괴롭힘 신고를 조사하고, 가해자를 징계하고, 피해자를 보호조치해야 한다. 

윤지영 직장갑질119 변호사는 "하청노동자로부터 노무를 제공받고 가해자 직원에게 권한을 부여한 원청이 책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원청이 사용자라는 점에 다툼이 없는 파견을 비롯해 용역·도급·위탁·분사 등 하청노동자에 실질 사용자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용노동부가 원청 갑질 등 직장내괴롭힘 사각지대 해소에 나섰지만 권고수준에 그쳐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다. 고용부는 지난 4월 발표한 '직장내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에서 사업 도급이 빈번한 원청사업주는 소속 근로자가 하청 근로자에 괴롭힘 행위를 하는 경우 조사·조치를 사내규범에 반영하라고 명시했다.

김현근 직장갑질119 원청갑질특별위원회 노무사는 "직장내괴롭힘법과 남녀고용평등법은 사용자와 사용종속관계를 전제로 근로자 개념을 정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원청 사용자·직원 등에 의한 괴롭힘과 성희롱에 노출된 하청노동자를 법적으로 보호할 방안이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대안으로 원청 갑질·괴롭힘을 막기 위해 괴롭힘 금지를 넘어 사용자가 조치 의무를 부담하도록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지난해 9월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개정안은 직장내괴롭힘 규정을 적용받는 사용자에 원청을 포함한다. 원청은 근로계약 당사자 여부 또는 계약형태와 관계 없이 근로자에 대해 구체적인 작업지시나 지휘감독권을 행사하는 등 근로조건에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력·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로 규정했다. 윤 변호사는 "원청 책임을 명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직장내괴롭힘 금지' 오남용 방지 방안 마련 시급

이날 토론회에서는 현행 근로기준법상 직장내괴롭힘 규정 정의가 불명확해 산업현장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홍종선 한국경제인연합회 근로기준정책팀장은 "형법상 다른 범죄행위로 규율될 수 있는 행동, 상급자와 하급자 사이의 일회적인 다툼이나 언쟁, 회사의 정당한 징계권 등 인사권 행사도 모두 직장내괴롭힘으로 신고하는 사례가 있다"고 강조했다. 

허위신고 등 직장내괴롭힘 금지 오·남용 방지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홍 팀장은 "허위신고에 대한 문제의식 수준도 높지 않다"며 "한번 신고를 경험하면 이후 신고에 대해서도 쉽게 편견을 가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명확한 직장내괴롭힘 성립기준을 마련하고 직장 내 기본 소양을 교육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홍 팀장은 "직장내괴롭힘 정의에 지속적·반복적·의도적 기준을 보완해 행위 기준 모호성으로 인한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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