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사람들] 권석 PD의 '무한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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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이 객원기자
입력 2023-08-01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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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실상부한 MBC 대표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아빠 어디가', '진짜 사나이' 등을 연출한 권석 PD가 지난해 소설가로 데뷔했다. 권석 PD는 여전히 멈추지 않고 여러 도전을 시도 중이다. 진짜 '무한도전' 중인 권 PD와 이야기 나눴다.
 
권석 PD [사진= 김호이 기자]권석 PD [사진=김호이 기자]
 -지난해 소설가에 도전을 했는데 어쩌다가 소설을 쓰게 됐고, 청소년 소설인 이유는 뭔가.
창의적인 일을 계속 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어요. PD 연차가 쌓이면서 현업을 떠나고 관리자가 됐어요. 부장이나 국장, 본부장으로 프로그램에 관여할 수 있지만 그래도 프로그램은 PD의 것이지요. 오롯이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고 싶은 욕심에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소설을 쓰는 것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과 비슷해요. 무(無)에서 무엇을 창조해내는 일이죠. 고되지만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단 프로그램은 협업이고 소설은 혼자하는 일이죠.

청소년 소설을 쓰게 된 것은 나이 50을 넘어서니까 인생에 대해 보는 눈이 생겼어요. 철이 덜 들어서 그런지 40대까지만 해도 인생은 미스테리였어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여전히 너무 많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몰랐죠. 그런데 50이 되니까 철이 들더라구요. 부감샷을 보듯이 인생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안목과 여유가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이제껏 경험한 시행착오와 깨달은 생각을 청소년들에게 소설의 형식으로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청소년 시기 권석은 어떤 학생이었는지 궁금하다.
제 사춘기 시절은 참 길고 힘들었어요. 그렇다고 가출을 하거나 거칠게 반항을 한 건 아니었어요. 겉으로 볼 땐 범생이처럼 보였겠지만 안에서는 말 그대로 질풍노도의 광풍이 불었어요. 살아있다는 거 자체가 그냥 힘들었어요. 원래 이 시기는 그런가 봐요. 

교회에 열심히 다녔는데 그 영향으로 제 자신에게 상당히 엄격했어요. 원하는 것은 저 위인데 현실은 바닥이라서 자아상이 부정적이었어요. 여드름이 많이 나서 외모컴플렉스도 심했고 사춘기 때 고민하는 성에 해서도 죄 의식에 사로잡혀 지냈어요. 

청소년이나 지금이나 저를 사로잡는 단어는 '성장'이예요. 나이 50이 넘었지만 여전히 성장하고 싶습니다. 성장이란 인생의 의미를 더 잘 아는 일이에요. 왜 우리는 태어났고 어떻게 살아야 하고 또 어디로 가는가? 삶에 대해 알고 싶고 더 풍성하게 누리고 싶어요. 소설을 쓰는 이유도 그 것 때문이에요. 
 
-좋은 콘텐츠란 뭘까. PD님께서는 어떤 이야기가 끌리고 흥미로운가.
콘텐츠 만드는 일은 서비스 업이에요. 소비자에게 좋은 것을 줘야 합니다. 저는 소비자에게 긍정의 에너지를 줄 수 있어야 좋은 콘텐츠라고 생각합니다. 긍정의 에너지라 하면 여러 가지가 있겠죠. 즐거움, 감동, 힐링, 동기부여 등. 하지만 거창하게 생각할 것 없어요. 미국작가 레이몬드 카버(Raymond Carver)의 단편소설 중에 'A Small, Good Thing'이란 작품이 있어요. 이 제목을 소설가 김연수 씨가 너무 잘 번역하셨어요. '작지만 위로가 되는'으로 옮겼습니다. 저는 이게 좋은 콘텐츠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작지만 위로가 되는 콘텐츠. 저도 작지만 위로가 되는 이야기에 끌리고 이런 콘텐츠를 만들고 싶습니다.
 
-인간관계의 기준이 있나. 그리고 PD로서 기회를 주고 싶은 끌리는 사람들은 누군가.
저는 예절 바른 사람이 좋아요. 콘텐츠 제작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거든요. 서로 예의를 지키고 존중할 때 협동심이 돈독해지고 시너지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기회를 주고 끌리는 사람은 꿈이 있는 사람이죠. 하지만 그 꿈은 가치가 있어야 해요. 자신과 주위에 도움이 되는, 서로 윈윈하는 꿈. 그런 꿈은 모든 일의 원동력이 되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회복탄력성을 주죠.
 
-기회는 누구에게나 간절하다. 지금의 권석을 있도록 해준 뜻밖의 기회는 뭔가.
제가 MBC 예능 프로그램 '놀러와'를 처음 만들 때 케이블 채널에서 활동하는 노홍철씨를 지상파에 데뷔시켰어요. 방송 한지 불과 한 달 만에 노홍철씨가 대박 났어요. 당시만 해도 그런 캐럭터는 지상파에서는 처음 보는 별종이었죠. 지금까지 노홍철씨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요. 노홍철씨가 또 방송에서 보여지는 것과는 다르게 의리 하나는 끝내줍니다. 노홍철씨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어요. 제가 도움을 청할 때 기꺼이 나서주거든요.

제가 소중하게 간직하는 추억이 중고등학생 때의 교회생활이었어요. 교회 중고등부 임원을 하면서 많은 특별 활동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했어요 문학의 밤, 수련회, 야유회, 찬양 대회, 체육대회 등등. 그때는 몰랐지만 이런게 곧 콘텐츠를 제작하는 일이었던 거죠. 이러한 경험들이 나중에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소설 쓸 때 큰 도움이 됐어요.
 
권석 PD와 방송인 노홍철 [사진= 김호이 기자](왼쪽부터) 권석PD와 방송인 노홍철 [사진=김호이 기자]
-반대로 사람들이 PD님을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사람들이 저를 선택했다기 보다 제가 속해있는 방송국과 프로그램을 보고 따라왔다는 게 맞는 말 같아요. 김태호PD나 나영석PD처럼 저만의 브랜드가 있는 레벨은 아니니까요. 현실에서 직장의 간판은 중요합니다.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확실히 주어집니다. 그리고 그 기회를 디딤돌로 삼아 도약할 수 있는 내공을 준비하고 있으면 되죠.
 
-PD가 된 계기는 무엇인가. 처음 PD가 됐을 때의 꿈을 얼마나 이뤘나.
선택의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어요. 자기가 좋아하는 걸 선택하는 게 있고 자기가 싫어하는 걸 제치고 남은 걸 선택하는 방법이 있어요. 저는 뒤의 방법으로 PD란 직업을 선택했어요. 대학 4학년 때까지도 전 내가 뭘 잘하는 지, 뭘 좋아하는 지를 모르겠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싫어하는 걸 하나씩 지워나갔어요. 계속 공부하기는 싫었고, 고시는 두 번 낙방하니 더 이상 하기 싫었고, 그렇다고 대기업에 취직하기도 싫었어요. 그러다 남은 것 중에 하나가 언론사 취업이었어요. 이건 싫지는 않다고 생각했죠. PD가 무슨 직업인지도 잘 몰랐지만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게 싫지 않았죠. 그리고 언론사 취업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했죠.

PD가 됐을 때는 제 꿈의 100%를 이뤘다고 생각했지만 곧 그게 아니란 걸 알게 됐죠. 방송국에 입사하는 순간부터 0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새로운 챕터가 열린거고 진짜 승부가 시작된거죠.
 
-직업병이 있나. 직업병이 일상생활에 있어서 어떤 영향을 주나.
우선 실제 병을 얻었습니다. 조연출 때 편집실에서 편집만 하다보니 두통이 생겼어요. 일반 두통약은 아무 소용이 없고 병원 처방약만 듣습니다. 아직까지 저를 괴롭히는 게 두통입니다. 생활 속의 직업병이라 하면 PD나 작가라면 누구나 그럴텐데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분석한다는 거죠. 미장센을 보고 대사와 캐릭터를 분석하고 플롯을 따지면서 보는 거죠.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고 그냥 자동적으로 그렇게 분석하며 콘텐츠를 보게 됩니다. 머릿속을 비우고 편하게 콘텐츠를 즐기지 못하는 거죠.

-PD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특히 유튜브 등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는데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는지 궁금하다.
제가 지금 일하고 있는 MBC 아메리카에서 제작하는 강연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헐리우드 배우이신 김종만씨가 출연하셨어요. 그분은 지금까지 1500번에 가까운 오디션을 봤어요. 그렇게 탈락에 탈락을 거듭하면 자존감이 무너지면서 절망할 수 밖에 없을텐데 이 분에겐 자기만의 노하우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라'였답니다. 오디션을 볼 때마다 심사위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려하지 말고 나 스스로에게 깊은 인상을 주라는 뜻입니다. 내가 내 앞에서 오디션을 본다는 생각이죠. 그러면 오디션에 떨어져도 스스로에게 만족스러웠으면 실망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김종만씨의 마음가짐이 많은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에게 적용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역설적이지만 오히려 그게 통할 것 같아요. 인기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는 게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하면 독창적일 수 있고 진정성이 넘치게 됩니다. 독창성과 진정성에는 누구나 끌리게 돼있죠.
 
-내 인생에 가장 영향을 준 대중문화 스타가 있나. 
이경규씨가 진행했던 MBC 예능 프로그램 '몰래카메라'를 참 좋아했어요.
방송국에 입사해서 이경규씨와 많은 프로그램을 했어요. '돌아온 몰래카메라'도 만들기도 했어요. 한국 최고의 코미디언과 같이 일하게 된 것은 제게 굉장한 행운이었죠. 이경규씨에게 예능과 방송에 대해서 많이 배웠습니다. 제가 볼 때 이경규씨가 한국 코미디언 중에서 제일 웃깁니다. 이경규씨와는 지금까지도 연락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권석 PD가 전하는 메세지 [사진= 김호이 기자]권석 PD가 전하는 메세지 [사진=김호이 기자]
-PD님의 창작의 원동력은 뭔가. 어떤 스토리텔러가 되고 싶은지도 궁금하다.
아무래도 20년이 훌쩍 넘은 예능PD 생활이 가장 큰 원동력입니다. 책을 많이 읽거나 글을 많이 쓰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많은 만화, 드라마, 예능프로그램, 영화를 봤지요. 그 때문인지 저는 문체나 문장은 약하지만 스토리텔링엔 강한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장르는 휴먼 드라마예요. 그래서 저는 감동과 교훈을 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유치하고 교조적으로 보여도 그런 글을 쓰고 싶어요. 사실 이런 쪽을 제일 잘 할 수 있기도 해요. 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느니 제가 잘하는 쪽을 더 키우고 싶어요.
 
-앞으로 스스로에게 바라는 모습이 있나.
저는 오래 글을 쓰고 싶어요. 대박을 치고 바로 잊혀지는 작가보다는 꾸역꾸역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제가 글을 빨리 쓰는 스타일이 아니라 느리지만 꾸준하게 작품을 쓰고 싶어요. 물론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작가가 되고 싶지요. 하지만 인기에 영합 하고 싶지는 않아요. 왜냐면 제가 글을 쓰는 목적은 두 가지예요. 하나는 글을 쓰면서 제 세계관을 좀 더 완성시키고 싶어요. 그리고 세상에, 특히 청소년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요. 이 목적이 훼손되면 전 아마 글을 쓰지 못할 겁니다.
 
-마지막으로 수많은 창작자에게 한 말씀 해달라.
재능이 부족하다면 열정으로 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재능도 있고 열정도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죠. 하지만 둘 중 하나만 갖고 있어도 자신의 콘텐츠를 상당한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다음은 우리 소관이 아닌 것 같아요. 운이라고 할 수도 있고 하늘의 뜻이라고 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이것 만은 분명해요. 행운은 준비된 사람만이 잡을 수 있다.
 
권석 PD와 김호이 기자 [사진= 김호이 기자]권석 PD와 김호이 기자 [사진=김호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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