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우주인 이소연의 우주비행 15년, 그의 애틋한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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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이 객원기자
입력 2023-07-0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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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8일. 이소연 박사가 러시아 소유스 로켓을 타고 국제우주정거장에 도착해 국내 첫 우주인이 된 그 날이다. 9박 10일 간 우주에 머무른 그는 그렇게 인류 역사상 475번째 우주인이 됐다.

초등학생이었던 기자는 그를 보면서 한 때 우주인을 꿈꾸기도 했다. 첫 꿈을 품게 해준 국내 첫 우주인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우주인 이소연 박사 [사진= 김호이 기자]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
혈액 분석하는 의료기기 개발 회사에서 일하고 있어요. 여러가지 질병들을 진단하는 의료기기로 발전시키려고 하는 한국 스타트업에서 글로벌 사업개발 및 임상 연구와 관련 업무를 맡고 있어요.
 
-국내 최초 우주인 타이틀이 있다. 우주인을 지원하게 된 계기는 뭔가.
'우주인이 돼야겠다', '우주에 가야겠다'는 생각보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우주인이 선발된다는 소식을 듣고 도대체 어떤 과정으로 우주인이 선발 되고 어떤 사람이 우주인으로 적합한지가 더 궁금했어요. 그걸 눈으로 보려면 직접 지원해서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가장 생생하게 볼 수 있겠다 싶었고 우주인 돼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궁금함이 더 컸어요.
 
-어떤 사람이 우주인이 되는 것 같나.
나라마다 우주인을 뽑는 방법이 비슷하기도 하지만 차이가 있는 부분도 있어요. 우리나라는 최초 우주인을 선발하는 입장이다 보니까 우리나라 우주 기술에 대해 많은 국민들과 잘 소통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에 대한 부분도 컸다고 생각해요. 우주 실험을 실행하기에 적합하고 과학과 기술에 대한 이해가 어느정도 있는 사람을 선발하려던 목적이 있었던 것 같아요.

미국이나 러시아에서 초창기에 전투기 조종사 중에서 우주인을 선발하던 것과 차이가 있죠. 무엇보다 우주인 선발 자체가 대한민국도 우주분야의 연구와 개발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한다는 걸 알리려는 목적도 컸기 때문에 지금으로 치면 과학기술 페스티벌 같은 성격도 있었던 것 같아요.
 

[사진= 이소연 박사]

-우주를 다녀와서 심적 부담도 많았다고 들었다. 가장 힘들게 했던 건 뭔가. 풀고 싶은 오해가 있나.
지금 돌아보면 대한민국 최초 우주인이라는 사람은 어떤 임무와 책임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깊은 고민을 하지 못하고 선발된 게 아닌가 라는 반성이 있어요. 공고만 보고 우주정거장에 가서 한국 정부에서 주어진 실험을 하는 사람까지가 제 생각의 한계였던것 같아요.

막상 우주 임무를 하고 돌아와서 보니까 우주인은 사람들과 해외 국가에 대한민국 우주 활동에 대해 설명하는 과학기술 대사와 비슷한 책임과 의무가 있는 사람인데 우주인에 지원을 하고 비행을 하고 올 때까지는 그 부분에 대해서 생각할 겨를도 없었고 그런 책임이 있다는 걸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에요.

그래서 비행 이후 한국에서 활동이 어떻게 보면 훈련 받고 우주에서 활동보다 힘들었고 가장 큰 원인은 그걸 미리 준비하지 못했던 미숙함이 컸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제 의도와는 다르게 오해도 있었던 것 같아요.

대중을 향해 커뮤니케이션 하고 이야기를 하는 것과 제가 항상 같이 일을 하고 친밀하게 느끼는 사람과의 경계가 소셜네트워크가 발전하면서 많이 허물어졌잖아요. 공인이면 그 경계를 구분하고 커뮤니케이션을 명확하게 분리를 했어야 했는데 그걸 잘 못한 것 때문에 오해도 많았던 것 같아요.
 
미국으로 MBA를 가게 된 이유는 한국에서 아주 많은 일정들과 임무와 책임을 다하다 보니까 3~4년이 지나고 나서부터 심리와 체력적으로 많이 지쳐 있었어요. 그래서 잠깐은 휴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시간을 가지려면 한국에서 있는 것보다 해외에 있는 시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MBA였던 이유는 저한테 휴식이라는 건 침대에 누워있거나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지금까지 하던 일과 다른 일을 하는 게 휴식이거든요.

미래의 진로에 도움이 될만한 배움 중에 2012년에 해외에 나가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생각했더니 과학기술 분야에 이바지 하고 우주인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리더십이나 경영마인드, 비즈니스 분야의 이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과학기술 분야의 사람들이 기업이나 스타트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도 비즈니스와 관련한 협업을 하는데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양쪽을 이해하고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MBA 공부를 하게 됐어요.
 
-우주에 다녀온 경험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어떤 영향을 줬나.
우주에서 대한민국을 내려다 본 경험이 평생에 있어 '내가 1978년에 대한민국에 태어난 건 지구인 60억명 중에 큰 축복과 불공평한 이득을 얻은 것 같다'는 깨달음이 있었어요. 같은 시기에 북한에 태어났거나 다른 대륙에 태어났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것들을 얻게 되고 이룰 수 없는 것들을 이루게 된 게 사실이거든요.

살다 보면 힘든 일이나 오해 등으로 인해서 괴로울 수 있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그 시기에 그 지점에 다른 곳에서 태어나서 평생을 고통스럽게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비하면 고마워해야 될 게 훨씬 많은데 불만과 괴로움에 매몰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제 평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큰 힘과 용기, 감사한 마음이 들게 하는 계기였어요.
 

시간영수증 [사진= 김호이 기자]

-어디에서도 말하지 않았던 우주에서 그리고 우주에 가기까지 에피소드가 있나.
한국 우주식을 10가지를 가지고 올라갔는데 우주인들과 둘러 서서 처음으로 우주식을 우주에서 열었어요. 근데 미국 우주인 개럿 라이즈먼이라는 친구가 "대한민국에서 개발한 우주식을 한국 최초 우주인이 처음으로 먹는 건 너무 재미없지 않냐 그러니까 한국 우주식을 최초로 우주에서 먹은 우주인이 내가 되면 안 되냐"고 저한테 물어봤어요. 저도 생각해보니까 한국 우주식을 처음으로 먹은 게 한국 최초 우주인인 건 너무 당연한 일이잖아요. 그래서 한국 우주식을 맨 처음으로 먹은 우주인이 개럿 라이즈먼이 됐어요.
 

이소연 박사가 전하는 메세지 [사진= 김호이 기자]



-요즘 꿈은 뭔가.
제 평생의 가장 중요한 한 가지 꿈은 제가 세상에서 사라진 이후에 우주인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우주인 이소연이 기억됐을 때 '참 괜찮은 사람이었지'라고 기억되는 게 꿈이에요. 그러면 나머지 삶을 어떻게 살아야 되나 고민하고 그 고민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잘 보냈으면 해요.
 
-마지막으로 오늘도 열심히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사람, 꿈을 찾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제가 한창 꿈을 향해 달려가야하는 20, 30대였을 때 꿈이 없었던 순간엔 되게 우울했고 또 어떨땐 꿈이 너무 많아서 '누군가는 어렸을 때부터 클 때까지 하나의 꿈을 향해 달려간다는데 나는 너무 여기저기 이끌려 다니는 게 아닌가'하는 불안함이 있었어요.

근데 지금 40대를 살고 보니까 20, 30대에 그런 순간이 있었던 게 잘못한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내 꿈이 뭔지 몰라도 괜찮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우주인 이소연 박사와 김호이 기자 [사진=김호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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