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③] "상상은 나이가 아니라 자유에서 나온다" – 세르주 블로크 인터뷰

 
세르주 블로크 작가 사진 김호이 기자
세르주 블로크 작가 [사진= 김호이 기자]

그림은 놀이면서 언어이며, 삶을 꿰뚫는 철학이다.
세르주 블로크의 선은 단순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언뜻 보기엔 여백과 농담이 많은 드로잉 같지만, 그 속엔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진지한 시선이 녹아 있다. 블로크는 말한다. “단순하게 하는 게 가장 어렵습니다. 솔직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니까요.”
프랑스 태생의 세계적인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작가인 그는 신문, 책, 아동도서, 전시 등 다양한 매체에서 활동하며 그림과 글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세르주 블로크를 만나, 그의 그림에 담긴 철학과 유머, 그리고 상상력의 근원을 들었다.

 
사진 김호이 기자
[사진= 김호이 기자]
사진 김호이 기자
[사진= 김호이 기자]


단순함의 미학, 그러나 결코 단순하지 않은
블로크의 그림은 미니멀하다. 몇 개의 선과 여백만으로도 캐릭터의 감정과 상황이 살아난다. “단순하게 보이지만, 단순하지 않아요. 복잡하게 그리는 건 사실 더 쉬울 수도 있습니다. 단순함은 진실되고 솔직해야 하고, 인위적이어선 안 되거든요.”
그가 자주 활용하는 ‘여백’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다. 상상의 틈이며, 독자의 몫이다. “여백은 독자가 들어갈 수 있는 문이에요. 감상자에게 상상의 여지를 주고 싶습니다. 뭐, 제가 좀 게을러서 그럴 수도 있고요, 하하.”

그림과 글은 ‘두 발’처럼 함께 걷는다
텍스트와 이미지 사이의 관계를 묻자, 그는 명확한 비유를 꺼낸다. “걸을 때 두 발이 필요하잖아요. 그림이 한 발, 글이 한 발입니다. 두 개가 균형을 맞춰야 이야기가 잘 전달되죠. 서로 반복하지 않도록, 서로를 보완해야 합니다.”
그는 ‘글도 그리고, 그림도 쓰는’ 특별한 창작자다. 이 둘을 동시에 다룰 수 있는 능력을 “운이 좋았다”고 표현하지만, 그 배경에는 오랜 시간 쌓인 훈련과 성찰이 있다.
 
사진 김호이 기자
[사진= 김호이 기자]


어린 시절의 자유가 평생의 상상력으로
그는 유년 시절을 ‘자유롭고 평범했다’고 회상한다. 형제와 놀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시간들. “그 자유로운 시간이 제 그림의 바탕이 된 것 같아요.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창의적인 존재예요. 문제는 자라면서 그 자유를 잃어버린다는 거죠.”
그래서 그는 아이들을 ‘잘 키우기’보다는 ‘자유롭게 놔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아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과잉보호하지 않는 것. 상상력은 자유로운 상태에서 나옵니다.”
 
사진 김호이 기자
[사진= 김호이 기자]


그림은 삶이고, 기억이며, 반복되는 실패 속의 진실이다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는 기준은 무엇일까. 블로크는 단호하다. “모든 선은 아름답습니다. 쉘 실버스틴이 그렇게 말했죠. 저는 잘 그린 그림이나 명작보다, 실패한 그림이 더 강한 메시지를 준다고 믿습니다.”
그림이 막힐 때는 어떻게 하냐고 묻자, “그냥 그립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즉흥적으로, 재즈처럼 해요. 잘 안 되는 것 같아도 사실 잘 되고 있는 겁니다.”
 
인터뷰 장면 사진 김호이 기자
인터뷰 장면 [사진= 김호이 기자]


과거에서 오늘로, 오늘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손끝
그는 과거의 낙서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오래된 메모를 꺼내 다시 그리기도 한다. “음식과는 달리 그림은 유통기한이 없어요. 20년 전 끄적임이 지금 작품이 되기도 하죠.”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손으로 그리는 이유는 명확하다. “종이가 더 편해요. 동굴에 그림을 그리던 사람들과 우리는 같은 행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행위 자체는 바뀌지 않았어요.”

신문이든 책이든, 결국은 ‘생각을 나누는 일’
그는 《뉴욕 타임즈》, 《르 몽드》 같은 세계 유수의 언론들과 협업해왔다. 신문 작업은 책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책은 오래 남고, 신문은 순간이지만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죠. 신문은 소멸하지만, 그 안의 그림은 더 많은 사람에게 가닿을 수 있어요.”
 
세르주 블로크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사진 김호이 기자
세르주 블로크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사진= 김호이 기자]


복잡한 시대, 그림의 역할은 ‘위로와 용기’
오늘날의 세상은 점점 더 복잡해진다. 블로크는 “20세기 초도 마찬가지로 악몽 같은 시대였다”며, 복잡함 자체는 인간의 본질적인 조건이라 말한다. 그 속에서 예술의 역할은 무엇일까. “사람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돕는 거예요. 위로가 필요하고, 유머가 필요하죠. 그래서 그림을 그리는 겁니다.”

“상상을 현실로 바꾸는 데 가장 필요한 건 용기입니다”
끝으로 그에게 꿈을 물었다. 대답은 짧고 분명했다. “평화요. 사람들이 지금보다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상상으로 현실을 바꾸고 싶은 이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세르주 블로크 작가와 사진 김호이 기자
세르주 블로크 작가와 [사진= 김호이 기자]


“용기를 가지세요. 겁먹지 마세요. 상상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것을 현실로 바꾸는 데 필요한 건 단 하나, ‘용기’입니다.”

세르주 블로크.
그의 그림은 오늘도 조용한 선 하나로,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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