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닫은 경쟁당국] 前 공정위 심의위원도 혀 차는 '솜방망이' 처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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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선영 기자
입력 2023-06-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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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정서 밑도는 정액과징금…공소시효도 짧아

  • "과징금, 부당이익금 이상 환수하는 수단돼야"

 

유성욱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감시국장이 6월 15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업집단 호반건설의 부당내부거래 제재와 관련해 세부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호반건설에 대한 과징금이 과소한 것은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 봐주기'로 볼 수밖에 없다. 공소시효도 짧은 현 상황에서 과징금은 불법 행위로 인한 부당이익금 이상을 환수하는 수단이 돼야 한다."

공정위 심의위원을 지낸 이병철 법무법인 찬종 변호사는 27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이같이 지적했다.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받는 호반건설에 부과된 과징금 규모를 놓고 솜방망이 규제 논란이 재점화하는 모습이다. 국민 정서에 부합하지 않는 낮은 과징금과 짧은 공소시효로는 시장 혼란을 막기 힘들다는 게 비판의 핵심이다.

공정위는 지난 15일 호반건설이 2010∼2015년 동일인(김상열 회장) 2세 등 특수관계인 소유인 호반건설주택, 호반산업 등 회사들을 부당하게 지원하고 사업 기회를 몰아준 부당내부거래 행위에 대해 시정 명령과 함께 과징금 608억원을 부과했다.

공공택지를 양도받은 총수의 장·차남 소유 회사들이 1조3000억원대 아파트 분양 이익을 거뒀고 편법으로 경영권을 승계했다는 게 공정위 측 설명이다. 다만 택지 양도를 통한 부당 지원 금액이 얼마인지는 특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공정위 관계자는 "분양 매출에는 해당 회사 자체적인 노력으로 가치를 증가시킨 부분이 포함될 수 있다"며 "지원 금액이나 지원성 거래 규모를 파악할 수 없어 정액 과징금 최고액(법 위반 행위 당시 기준 20억원, 지금은 40억원으로 상향)을 부과했다"고 말했다.

택지를 양도받은 9개 회사에 각 20억원, 각 회사에 택지를 양도한 호반건설에 180억원 등 과징금을 매긴 데 대한 부연이다. 

호반건설은 부당내부거래 관련 공소시효(5년)가 지나 검찰 고발도 피했다. 특정경제가중처벌법에 따른 업무상 배임 혐의에 대한 공소시효가 이득액 50억원 이상일 때 최장 15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나치게 짧다.

올 1월엔 테슬라 위법 건과 관련해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당시 공정위는 테슬라 충전 주행 거리와 충전 속도, 연료비 절감 금액 등을 과장 광고한 건에 대해 20억원대 과징금을 부과하고 '주문 취소 수수료 환불 불가' 방침에 대해서는 시정 명령을 내렸다.

법령에 따르면 테슬라가 과장 광고를 통해 기록한 매출액의 2.0%, 최대 570억원까지 과징금 부과가 가능했지만 공정위는 매출액의 0.1%인 28억원만 부과했다. 시장에 미치는 효과와 현실적 부담 능력 등 객관적 요소보다 '중대성이 약하다'는 심판관의 주관적 판단이 더 크게 반영됐기 때문이다.

이 변호사는 "과징금 부과는 법적 근거에 따라 객관적으로 가중치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며 "현행 시행령은 위반 행위에 대한 중대성 여부를 결정할 때 공무원의 주관적 판단이 많이 개입된다"고 지적했다.

과징금 처분을 내린 사건은 그나마 '엄중하게' 본 편이다. 공정위 '2022년 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사업자에 부과한 처벌(2172건) 가운데 자진 시정(738건)과 기타 무혐의(932건) 등을 제외한 502건 중 과반은 시정 명령(182건)과 시정 권고(11건), 경고(96건) 등 조치에 그쳤다. 고발(29건), 과태료(185건) 등 실질적 징계 처분은 미미했고 과징금 부과도 112건에 불과했다.

오히려 타 부처가 자체적으로 추가 처벌을 고민하는 상황이 연출될 정도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호반건설 사건을 거론하며 "불공정도 이런 불공정이 없다. 국토부는 호반건설의 2019~2021년 '벌떼입찰' 건을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고 직격했다.

국토부는 후속 조치로 위장 계열사 등을 동원해 공공택지를 공급받는 벌떼입찰 행태와 관련해 2013년 이후 지난 10년간 당첨 업체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섰다.

앞서 지난 1월엔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건에 대해 중소벤처기업부가 불만을 터뜨리며 공정위 측에 검찰 고발을 요청하기도 했다. GS리테일이 하도급법을 위반했는데 중소기업 피해 규모를 감안하면 공정위 처벌이 약하다는 취지에서다.

공정위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그간 수차례 과징금 기준이 상향되긴 했으나 처분 수위와 실효성이 높아진 국민 눈높이에 미달한다는 문제의식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내부적으로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 중인 것으로 안다"며 "법률이 정한 범위 내에서 법 집행을 해야 하는 한계가 있어 시행령을 개정하지 않는 한 지금과 같은 상황은 반복될 것"이라고 토로했다.

정률 과징금 부과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익명을 요청한 공정거래법 전문가는 "실제 법 위반 금액이 상당한데도 위반액 산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정액 과징금을 부과하는 사례가 많다"며 "정액 과징금은 법 집행을 하는 공정위만 편한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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