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협치는 사라지고 저주와 증오로 꽉 막힌 여의도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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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교수
입력 2023-06-07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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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교수]




여야 대표끼리 만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회동 방식을 놓고 열흘 넘도록 샅바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양당 대표는 TV공개토론과 비공개 대화를 약속했지만 토론 방식을 놓고 대치 중이다. 국민의힘은 TV토론과 함께 비공개 회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TV토론을 우선 진행하자는 입장이다. 양당은 서로에게 회동 지연 책임마저 떠넘기고 있다. 국민들은 그들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에게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서로에게 책임을 돌리는 이유도 구차하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요구하는 TV토론은 하되 (비공개) 회담도 하자는 건데 TV토론만 재촉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반면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TV토론 개최 여부에 대한 확답은 하지 않은 채 비공개 회동만 주장한다”며 반박했다. 핑계 아닌 핑계다. 원내 제1, 제2 정당 대표가 만나야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여야는 사사건건 대립하고 있다. 이 와중에 국정 동력은 바닥났고 국민 갈등도 위험수위에 도달했다. 야당은 대통령을, 대통령은 야당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나타난 불행이다.

대화와 협치가 실종된 정치는 위험하다. 여야는 서로를 적으로 규정한 채 절멸에만 올인하고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과 야당 대표 간 만남이 없다. 검사 출신 윤석열 대통령은 야당 대표를 피의자로 여긴 채 공식 만남을 기피하는 듯하다. 대통령이란 자리는 불편함까지 감수하는 자리다. 윤 대통령에겐 검사 윤석열이 아니라 국민통합을 책임 진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범죄혐의에 따른 사법처리와 별개로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위해 야당 대표를 만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정당 대표끼리 만남도 연장선상에 있다. 여야 대표가 취임 이후 4개월 넘도록 만나지 않고 있다는 건 분명 비정상이다.

최근 흥미롭게 읽은 <스웨덴 패러독스>는 정치란 무엇인지 돌아보게 한다. 스웨덴에서 35년 넘게 생활한 최연혁 교수가 전하는 스웨덴 정치는 부럽다. 100년 전만해도 스웨덴은 부패와 특권이 판치고 노사분쟁은 극심했다. 그런 스웨덴은 70~80년 만에 가장 살기 좋고 경쟁력 있는 국가로 재탄생했다. 최 교수는 불가능할 것으로 여겼던 모순을 이겨낸 역설을 설득의 정치에서 찾았다. 상대를 인정하고 설득하는 상생정치에 답이 있다. 회의장에서는 적의를 드러내고 또 회의장 밖에서조차 눈길을 피하는 우리 정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책에서 소개한 스웨덴 사례는 부럽다. 스웨덴 여당 ‘안이 뢰프’ 중앙당 대표가 11년 동안 당대표직을 마치고 떠나는 날(2023년 1월 26일)이다. 그와 경쟁관계에 있던 상대 당대표와 마지막 토론은 국민들에게 잔잔한 감동과 웃음을 선물했다. 국영TV를 통해 생중계된 토론에서 뢰프는 7개 정당 대표와 번갈아가며 토론을 진행했다. 평소라면 날카로운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으며 불꽃 튀는 정책 논쟁을 벌였겠지만 이날은 덕담을 건네며 화기애애했다. 여당과 야당 대표는 서로 경쟁하며 정책논쟁을 이끌어 왔던 파트너를 떠나보내는 아쉬움을 표하고, 선물을 전했다. 국민들은 진한 감동을 느꼈고 박수를 보냈다.

이날 클라이맥스는 앙숙관계였던 지미 오케손 민주당 대표의 고별사였다. 평소 뢰프와 오케손은 여야 대표로서 날카롭게 대치했다. 이날은 달랐다. 오케손은 “안이 뢰프는 토론장에서는 정적이었습니다. 우리는 때로 얼굴을 붉힐 정도로 날선 비판을 주고받았습니다. 사상과 가치 차이로 정치적으로는 가까워질 수 없는 사이였지만 우리 정치를 역동적으로 살아 숨 쉬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나눈 멋진 토론은 물론이고 제 마음을 찌른 아픈 표현까지도 감사합니다. 한 명의 훌륭한 토론 파트너를 떠나보내는 것이 참 아쉽습니다”며 쉬는 동안 읽으라며 책을 선물했다. 정치적으로는 불편했지만 경쟁 파트너를 떠나보내는 아쉬움을 담은 고별사였다.

뢰프는 고별사를 통해 화답했다. 그는 “저도 오케손과 함께 했던 뜨거운 논쟁이 그리울 겁니다. 우리는 정치 토론에서는 매서운 경쟁자 관계였습니다. 하지만 정치를 벗어나서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육아 정보를 주고받는 사이였습니다. 토론에서는 날카로운 설전으로 다름을 확인했지만 같은 지역구 출신으로서 좋은 정책토론을 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라며 예의를 표했다. 두 정당 대표 토론은 국영 SVT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됐다. 동영상 인터넷 뉴스도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스웨덴이 여러 모순을 극복하고 강소국으로 올라선 배경에 정치안정이 있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장면이다.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이자 세계 6위 군사강국이다. 절대빈곤에서 벗어나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러나 소모적이며 불안정한 정치는 여전히 걸림돌이다. 저급한 말싸움이 난무하는 여의도 정치를 떠올리며 책을 읽는 내내 부러움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1년째 만나지 않고, 또 제1당과 제2당 대표끼리도 외면하는 상황에서 국가발전이 가능할까. 최 교수는 “국회에서 벌이는 좋은 논쟁과 연설은 국민의 정치적 식견을 살찌우고 토론 문화를 확산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면서 설득의 정치를 강조했다. 스웨덴 국회는 대화와 설득을 바탕으로 민감한 국가 이슈를 해결했다. 연금개혁과 국방공조, 코로나 대응에서 한목소리를 냈다. 야당 오케손 대표는 “위기 시에 정부와 함께해야 한다”며 특별담화를 발표하기도 했다.

김기현 대표가 “얼굴 한번 봅시다. 밥이라도 먹고 소주를 한잔하든지”라며 띄운 회동 제안은 여의도 정치가 상생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 이재명 대표 또한 “국민들은 밥만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정책TV토론을 역제안함으로써 만나야 한다는 필요성에는 공감했다. 형식과 절차는 회동이란 대의 앞에서 사소한 문제다. <스웨덴 패러독스>는 ‘사회적 갈등을 정치에서 해결해 주지 못하면 분열과 폭력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정치에서 갈등 원인을 제거해주면 국민은 평온한 일상을 유지할 수 있지만, 정치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사회에 던져 놓으면 주말 거리는 온통 진영 간 대립의 장이 되고 만다’고 경고하고 있다. 요즘 서울 주말거리가 그렇다.

만남과 대화 시간에 비례해 상대에 대한 이해는 넓어진다. 국민들은 꽉 막힌 여의도 정치가 새로운 전환점을 모색하길 기대한다. 저주와 증오로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우리 국회가 스웨덴 국회처럼 기품 있는 토론장이 되길 기대한다면 욕심일까. 정책논쟁은 치열할지라도 존중하며 협치하는 국회를 보고 싶다. 양당 대표 간 회동이 품격 있는 여의도 정치로 가는 첫 걸음이길 기대한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전북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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