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잃어버린 반도체 30년', 美-中 패권전쟁으로 되찾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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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혜 기자
입력 2023-05-24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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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최우방국 일본, 반도체 공급망 재구축 거점 '부상'

  • '프렌드쇼어링'에 글로벌 반도체 회사 투자 봇물

  • 미·일, 인재 확보 위한 투자도 손잡아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기간 중 일본 히로시마에서 G7 정상 및 주요 초청국 정상들이 둘러앉아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리시 수낵 영국 총리,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이사회) 상임의장,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사진=AP·연합뉴스]




'최첨단 반도체 생산'을 목표로 내건 일본 라피더스가 지난 22일(현지시간) 2025년 4월부터 2㎚(나노미터·10억분의 1m)의 시제품 라인을 가동해, 2027년 양산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2030년대부터 1조엔(약 9조5000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리겠다는 포부도 드러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라피더스는 이날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는 홋카이도 치토세시에서 주민 설명회를 열고 공장 건설 계획 및 일정을 공개했다. 공장은 올해 9월 착공해 내년 6월경에 클린룸 등을 정비한다.
 
주목할 점은 미국 IBM이 첨단 반도체 제조 기술을 공여한다는 것이다. IBM은 이미 기술자들을 파견한 상태로, 올해 여름까지 파견 직원 수를 100명 규모로 늘릴 방침이다. 라피더스는 벨기에 반도체 연구개발기관인 IMEC(아이멕)과도 손잡고 극자외선(EUV) 관련 기술을 지원받는다.
 
이날 설명회에 참석한 히가시 데쓰로 라피더스 회장은 IBM이 손을 내밀어 준 덕분에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회를 누리게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은 1980년대 세계 1위의 반도체 기술로 50%의 점유율을 차지했으나, 현재는 10%까지 줄었다”며 “매우 약한 위치에 있어 첨단 반도체 기술이 부족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다행히 IBM이 일본에 손을 내밀어 기술을 공여해 주기로 했다”며 “위기감을 가지면서도 최대한 기회를 살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IBM은 양사 파트너십을 지정학적 긴장과 연관시켰다. 다리오 길 수석부회장 및 IBM 리서치 총괄 책임자는 “(IBM과 라피더스의) 파트너십은 미국과 일본 간 제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는 “일본이 반도체 능력을 높이고 안정적인 공급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며 “이는 지리적으로 안전한 공급망을 세계에 창출하는 것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또한 “우리는 일본이 향후 차세대 반도체 기술 개발과 전략적인 기술 분야의 리더로서 세계에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며 “IBM은 반도체부터 인공지능(AI), 양자컴퓨터까지 일본에 신뢰할 수 있는 기술적 파트너로 남아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잃어버린 반도체 30년, 미·중 패권 전쟁에 되찾나

반도체를 둘러싼 미·중 패권전쟁이 격화하면서, 미국의 최우방국 일본이 새로운 반도체 공급망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이 경제 안보를 이유로 중국의 반도체 산업을 노골적으로 옥죄는 가운데 일본이 잃어버린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세계 시장 점유율 50%에 달했던 일본의 반도체 산업은 1990년대 중반 이후 국제 무대에서 존재감이 쪼그라들었다. 미국에 이어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기업들이 약진하면서 일본 반도체 산업은 지난 30년간 쇠퇴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 한국, 대만의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연달아 일본에 투자를 결정하고 나선 가운데 지난 2021년 이후 관련 기업들의 투자액은 총 2조엔을 넘겼다.

최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계기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투자도 잇따랐다. 미 반도체 대기업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는 히로시마현 히가시히로시마시의 공장에 최첨단 메모리 반도체를 제조하기 위한 설비를 도입하는 등 최대 5000억엔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산제이 메흐로트라 마이크론 테크놀로지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히로시마 공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번 투자를 통해) 최첨단 반도체 제조에 있어서 일본의 위상이 향상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히로시마를 비롯한 일본에는 매우 뛰어난 노하우를 가진 장비 회사들이 있어, 협력을 통해 생산성이나 비용대비 효과를 높이고 싶다”고 부연했다.
 
플랩 라저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MAT) 반도체 부문 CEO는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수년 내 일본에서 엔지니어 800명을 채용해, 인력을 현재 대비 1.6배로 늘리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라피더스와도 긴밀히 연계해 엔지니어 파견 등을 통해 기술 개발에 협력할 계획이다. 라저는 라피더스의 2㎚ 제품 양산이 성공할 것으로 확신한다는 기대감도 내비쳤다.
 
세계적인 반도체 연구개발기구인 벨기에의 IMEC(아이멕)은 라피더스를 지원하기 위해 홋카이도에 연구거점을 마련한다. 한국의 삼성전자는 300억엔 이상을 투자해 가나가와현에 신규 반도체 개발 거점을 설치하고, 대만 TSMC는 구마모토현에 공장을 건설 중으로 제2공장도 계획 중이다.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 3위 키옥시아와 4위 미국 웨스턴디지털 간 합병 논의 역시 급물살을 타고 있다.
 
아울러 영국은 반도체 분야에서 연구개발, 기술 교환, 공급망 회복력 강화 등에서 일본과 협력하기로 했다. 영국은 글로벌 반도체 설계회사인 ARM 및 이매지네이션 테크놀로지의 본거지다. 외신은 “영국의 반도체 전략은 대만 등 지정학적으로 민감한 지역에 대한 반도체 수입 의존도를 줄여야 할 필요성을 보여준다”며 양국 협력의 배경으로 지정학적 긴장을 꼽았다 .
 
'리쇼어링'보다 '프렌드쇼어링'…인재 투자도 美·日 손잡아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일본으로 몰리는 데는 미국 정부의 ‘프렌드쇼어링’ 정책이 작용했다. 일본 정부의 2조엔에 달하는 반도체 지원책과 함께 일본이 미국의 최우방국이란 이점이 투자로 이어졌다는 게 중론이다. 일본은 미국 주도의 대중국 반도체 산업 옥죄기에 적극 동참한 상황으로, 반도체 공급망 재구축을 위한 주요 거점으로 부상했다.
 
닛케이아시아는 “미·중 기술 경쟁의 핵심에는 인공지능(AI)과 반도체가 있다”며 “세계 반도체 생산의 대부분은 대만과 한국에서 이뤄진다. 이는 서구를 지정학적 충격에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짚었다.
 
이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최근 도쿄 총리 관저에서 세계 반도체 기업 7곳의 경영자를 초청한 사실을 거론하며 “미국이 리쇼어링(해외 진출 기업의 본국 회귀)보다 프렌드쇼어링(우방국 간 공급망 구축)을 우선한다는 신호"라고 평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부상에 대응하기 위해 동맹국과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다”고 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삼성이 일본에 신규 투자하는 것도 미국이 한·일 관계 개선을 뒷받침한 덕분”이라며 “미·중 기술 패권전쟁이 치열해지는 속에서 한국, 일본, 대만, 유럽은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인재 확보를 위한 협력도 강화한다. 미국과 일본 양국 기업과 대학은 반도체와 양자컴퓨터 교육·기술개발에 총 2억1000만달러(약 290억엔) 이상을 쏟아붓는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와 일본 도쿄 일렉트로닉이 도호쿠대, 버지니아공대 등 미·일의 11개 대학과 제휴해 첨단 기술 교육 프로그램 등을 마련한다. 앞으로 5년간 총 6000만 달러 이상을 투자한다. 연 5000명의 학생이 혜택을 볼 수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했다.
 
양자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IBM이 시카고대와 도쿄대에 향후 10년간 1억 달러를, 구글이 두 학교에 10년간 최대 5000만 달러의 자금을 댄다. 아빈드 크리슈나 IBM CEO는 미·일 대학 협력을 통해 기술 과제 해결과 인재 육성이 가능할 것으로 봤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21일 히로시마에서 열린 미·일 정부의 교육에 관한 협력 각서 조인식에서 “미일 과학기술 협력은 양국 국가와 경제 안보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똑똑한 투자 중 하나”라며 “기술에 관한 규칙과 규범을 형성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일 양국은 교육에 관한 고위급 대화를 매년 실시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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