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예스 재팬'과 디스아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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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권 기자
입력 2023-03-17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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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오른쪽)가 16일 오후 일본 도쿄 긴자의 오므라이스 노포에서 친교의 시간을 함께하며 생맥주로 건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연진은 과거 동은을 괴롭히고 이용했다. 시간이 흘러 동은은 연진에게 사과와 보상을 원했다. 연진의 거부로 사안은 법정으로 갔고 결국 연진이 동은에게 피해액을 보상하라고 판결이 났다. 하지만 연진은 이를 거부했고 결론적으로 동은이 국가의 정부에서 동은에게 보상을 지급하기로 했다. 연진의 사과는 없었다.”
 
화제의 넷플릭스 시리즈 '더글로리'의 스토리가 이렇게 흘러갔다면 어땠을까. 드라마 제목은 '더글로리'가 아니라 '디스아너드(dishonored, 불명예)'가 되었어야 할 것이다. 영광은 없고 명예가 실추된 결과이기 때문.
 
윤석열 정부의 터무니없는 일본 강제동원 해법을 빗댄 비유가 화제다. 한국 정부 산하 재단이 국내 기업을 통해 조성한 재원으로 강제징용 피해자와 그 유족에게 배상하게 된 결과를 꼬집어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피해자의 국가가 피해자에게 배상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때문이다.
 
한국이 한 발짝 물러서며 일본과 화해 무드가 형성되긴 했다. 일본은 16일 한국에 대한 반도체 핵심 소재 3개 품목의 수출 규제를 해제하기로 했다. 일본 제품 불매 운동, 이른바 '노(No) 재팬'의 발단이 일정 부분 해결된 것이다.
 
일본 현지 언론들은 "한국이 모든 면에서 일본을 거부하는 ‘노 재팬’에서 이제는 정반대의 ‘예스 재팬’으로 돌아섰다"고 평했다. 일본의 산케이신문도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 대중문화 등에 관심이 많은 한국 청년 세대가 여론을 바꿀 것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일본 언론의 말처럼 정말 '예스 재팬'으로 흐름이 완전히 돌아섰을까. 물론 '노 재팬 운동'이 예전 같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요즘 한국 극장가에서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인 ‘스즈메의 문단속’과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1,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유니클로 등 일본 패션 기업 매출도 상당 부분 회복됐다.
 
하지만 '반일 감정 확산'의 단초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일본은 화이트리스트(수출 절차 간소화 혜택을 주는 백색국가 리스트) 원상회복과 관련해 "한국 측 대응 상황에 달렸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마련한 강제동원 '3자 배상' 해법이 잘 시행되는지 지켜보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불명예를 감수하는 제안을 했지만 사과는커녕 그 불명예를 이행하는 방법까지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일본은 원칙적으로 식민지배가 불법이 아니라고 말한다. 일본 측의 기존 입장을 보면 '식민지배는 불법이 아니다' '강제동원은 없었다' '1965년의 청구권 협정으로 모든 배상 문제는 해소됐다' '2018년 한국 대법원 판결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강제징용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일본의 이런 태도에 강제징용 피해 당사자들은 배상금을 받지 않겠다고 거부했다. 사과 없이 제3자가 주는 돈으로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첨예하게 대립각이 형성되면 사안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 노 재팬의 또 다른 국면이 시작되는 것이다.

화이트리스트 원상회복이냐, 명예냐. 실리냐, 영광이냐. 정부의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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