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춘 칼럼] 나홀로 통화완화 …기로에 선 일본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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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입력 2023-02-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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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요즘 일본은행의 통화정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을 필두로 한 주요국들이 모두 긴축을 단행한 것과 달리 일본은행은 여전히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을 끄는 이유 중 하나다. 일본은 과연 언제까지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유지할 것인가? 그리고 이러한 완화적 통화정책은 앞으로도 지속 가능한 것인가? 그리고 이러한 완화적인 정책은 기대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점들이 모두가 궁금해 하는 점일 것이다. 여기에 2022년 12월에 단행된 정책 변경과 이에 대한 시장의 발작적인 반응은 이러한 궁금증을 더욱 증폭시켰다.

일본은행은 2022년 12월 20일에 이른바 수익률곡선관리정책(YCC:Yield Curve Control)에 일부 변화를 주었다. 즉 10년물 장기 국채 수익률은 0% 수준을 유지하되 변동 폭을 ±0.25%에서 ±0.5%로 확대하였다. 시장은 이러한 정책 변경을 금리 인상 신호로 받아들였고 이후 국채의 매도 압력이 높아지면서 장기 금리의 급격한 상승이 이어졌다. 변경된 수익률 범위 안에 금리 수준을 억제하기 위해 일본은행은 막대한 규모의 국채를 매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리게 되었다. 금년 1월 국채 매입액은 월별 단위로는 역대 최대 규모인 23조7000억엔에 달하였다. 이는 2022년 6월 16조2000억엔을 훨씬 상회하는 규모다. 다만 2023년 1월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완화정책을 유지한다는 방침이 결정된 이후 장기 금리의 상승 압력은 낮아진 상태다.

그러나 일본은행은 현상 유지에 안주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먼저 인플레이션이 있다. 일본 소비자물가는 최근 8개월 연속으로 목표치 2%를 상회하였다. 석유 및 가스요금 상승과 이에 기인한 각종 소비재 가격의 상승이 국민 생활을 압박하고 있어서 완화적 정책의 전환을 요구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일본 정부로서도 물가 관리를 해야 하는 입장이어서 완화적 통화정책에 찬성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미·일 간 금리 격차도 확대되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양국의 금리 스프레드는 400bp 가까이 상승하였고 이는 엔화 가치 하락을 유발하였다. 2022년 10월 엔·달러 환율은 150엔을 초과하였고 연초에 비해 30% 이상 엔화 가치 하락이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환율 상승은 당연히 수입물가를 자극하고 이는 다시 국민 생활을 압박한다.

이러한 상황을 일본은행이 계속 방관하고 있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다만 일본은행은 아직 수요 회복에 따른 정상적인 경제활동으로 복귀하지 못했다고 판단하여 당분간 완화적인 정책을 지속할 것으로 보이나 국민들이 느끼는 경제적 압박감과 기업이 느끼는 채권시장의 불안감은 높아만 가고 있어서 일본은행으로서는 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즉 출구전략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음은 틀림없다. 앞으로 어떠한 정책 변화가 우리에게 다가올 것인지 궁금해진다.

사실 일본은행은 매우 어려운 딜레마에 빠져 있다. 금리를 올리자니 실물경제와 재정 리스크가 걱정되고 현상을 유지하자니 일본은행의 기형적 자산 보유나 채권시장의 왜곡에 따른 효율적인 자금 조달을 방해하는 부작용이 걱정된다. 일본은행의 금융정책은 2012년 제2기 아베 정부가 등장하면서 크게 변화되었는데 이른바 양적·질적 완화정책이 도입되면서 국채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주식까지도 사들이는 매우 비정상적인 정책으로 운용되어 왔다. 그 결과는 어마어마한 일본은행의 자산 규모 확대로 나타났다. 2023년 1월 20일 기준 장기 국채에 대한 일본은행의 보유 비율은 53.5%(2013년 3월 11.5%)로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다. 이 비율은 앞으로 더 증가할 수 있다. 일본은행의 보유 자산 규모는 GDP 대비 127.7%(2022년 말 기준)로 미국 연준(33.9%), ECB(64.4%), BOE(38.6%)에 비해서도 압도적으로 크다. 일본 정부는 일본은행의 발권력에 안주해 왔다. 이미 엄청난 부채를 안고 있는 일본 정부는 자구 노력을 하는 대신 국채 발행에 의존하면서 매년 재정 규모를 확대해 왔다. 그러면서 재정 건전화 달성 시기를 끊임없이 뒤로 미루어 왔다.

필자는 이미 20년 전부터 일본 정부의 재정 건전화 목표에 대한 논의를 보아 왔지만 늘 그 목표는 단순히 목표치였을 뿐 실질적인 의미는 가지지 못했다. 그 어느 정치인도 재정 규율의 강화를 위해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정부는 이런저런 핑계로 국채를 발행하고 일본은행은 또 이런저런 핑계로 이를 지속적이고 대규모로 매입해 왔다. 그 결과가 정부의 막대한 부채와 일본은행의 막대한 자산이다. 그리고 채권시장은 가격 기능을 상실하였고 불확실성 속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작은 부싯돌의 튕김이 엄청난 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긴장감이 도사리고 있다.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은 본래 이러한 결과를 원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2012년 12월에 도입된 양적 완화 정책은 당시 출범한 아베 정부의 세 개의 화살 중 하나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정책은 원래 환율과 자산시장의 회복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소비, 투자, 수출 등 실물경제의 회복을 목표로 도입된 것이었다. 양적 완화를 통해 엔화 약세를 유도하고 그 효과로서 일본 기업의 수출 확대와 수익 증가를 기대하였다. 기업의 수익 증가는 투자 증가와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길 기대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실물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다. 기업의 수익은 증가하였고 기업은 막대한 규모의 현금을 확보하는 데 성공하였지만 이것이 투자와 임금의 회복으로 이어지지 못하였다. 돈 풀기를 통해 주가는 상승하였으나 이 또한 기업 활동, 소비 활동에 활력을 불어넣지는 못하였다. 이러한 실패를 모두 금융정책의 실패로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정책 수단이 필요함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은 효과적인 정책 조합을 통해 기대하는 정책효과를 얻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중앙은행의 발권력에 안주하여 더 중요한 경제 체질 개선에 소홀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행은 현재 딜레마에 놓여 있다. 금융 긴축으로 선회하면 재정 리스크가 증가한다. 재정 규율에 소홀했던 정부에 대한 대가다. 일본은행에도 손실이 예상된다. 막대하게 보유한 국채의 가치가 크게 하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 완화를 유지하는 것은 이러한 부작용을 더욱 키울 뿐이다. 적절한 타이밍에 어떠한 방법과 속도로 금융 긴축으로 방향을 전환할 것인지 주목된다. 우리나라는 금리 상승의 긴축 과정에서 비대해진 자산 버블의 붕괴를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경험은 우리나라 경제주체, 특히 자산 버블 붕괴로 인하여 고통을 많이 받고 있는 젊은 세대의 소비와 투자 행태에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일본도 1980년대 버블 붕괴 이후 가계와 기업의 소비 및 투자 행태가 근본적으로 바뀐 것과 같이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러한 실물적 여건하에서 경기 회복을 위한 완화적인 금융정책은 단기적인 반짝 효과는 볼 수 있지만 중장기적인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속적인 금융 완화 의존적 정책은 먼 미래에 과도한 정부 부채와 중앙은행의 기형적 대차대조표를 우리에게 남길 가능성이 높다. 일본은행의 정책 전환은 단기적으로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채권시장의 자금 이동을 통한 단기적 영향보다 더 중요한 교훈, 즉 발권력에 의존한 방만한 재정과 금융 완화의 경기 회복 능력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우리에게 더 큰 짐을 남길 수 있다는 교훈이다. 우리는 돈의 힘이 아니라 사람과 지식의 힘을 더 믿어야 한다.  



정성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히토쓰바시대학(一橋大學) 경제학연구과 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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