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범인이 한국인일까봐 두려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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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혜 기자
입력 2022-07-12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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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에게 총을 쏴 숨지게 한 야마가미 데쓰야가 지난 7월 10일 오전 일본 나라 서부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며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범인이 한국인일까 두려웠어요.”
 
한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일본에 거주한 적도 없으며, 재일교포도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일본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지인은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피습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으로 든 생각이 “한국인이면 어쩌나”였다는 것이다.

그는 “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 왜 두려움을 느꼈는지 모르겠다”며 그런 생각을 한 본인이 “이상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범인이 일본인이라는 소식에 “안도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지인만 이런 감정을 느낀 건 아닌 듯싶다. 8일 피습 소식이 전해진 후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범인이 한국인이나 재일교포가 아니길 바란다”는 식의 글이 올라왔다. 범인이 한국인이거나 재일교포라면 일본이 우경화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혐한 감정이 고조될 것이란 긴장이다.
 
실제 일본에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범인의 국적을 밝혀라”라는 식의 글이 확산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를 특정하진 않았지만, 문제의 원인이 마치 일본 외부에 있는 듯한 뉘앙스다.
 
더구나 일부 일본 언론들은 범인 어머니의 종교가 통일교인 것으로 확인되자, 혐한 정서를 부추기는 기사들을 내보내고 있다. 범인의 어머니가 평소 지인에게 “한국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거나, 과거 통일교 신자였던 사람들을 인터뷰해 “고액의 헌금으로 인해 붕괴한 가정이 다수”라는 식이다.
 
한 일본 매체는 “한국에서 아베 전 총리만큼 사나운 비난을 받은 일본인은 없다”며 “우익 군국주의자, 반한 정치인 같은 말을 신문들이 태연하게 쓴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죽은 사람을 나쁘게 말하지 않는 일본의 문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미국 등 주요 매체는 용의자가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였다는 점에 주목한다. 미국 외교전문지 디플로맷은 “(범인이) 고립돼 친구나 가족과 거의 접촉하지 않았다”며 “몇 마디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이웃조차 없었다”고 했다.

이어 “이번 공격은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줬으나, 사실 이번 사건 전부터 일본에서는 유사한 살인을 자행한 고독한 암살자(은둔형 외톨이)들이 있었다"며 “차이점은 이전의 공격자들은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정치인이 아닌 불특정 다수를 표적으로 삼았다는 것”이라고 했다.
 
일부 혐한 감정을 부추기는 보도들을 보면서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저서 '구로사와 아키라 자서전 비슷한 것'을 통해 회상한 관동대지진의 모습이 생각났다. 
 
“동네에서 어느 집의 우물물은 마시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우물 바깥 담장에 백묵으로 쓴 수상한 기호가 있는데, 그게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표시라는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이실직고하자면 그 수상한 기호란 건 내가 쓴 낙서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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