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선 LIVE] 말로는 거들어도 함께 싸워주진 않는다'

강인선 대통령실 대변인이 기자로서 쓴 마지막 기사 제목이다.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조선일보 편집국 부국장이었던 그는 이제 하루에 수십 수백통의 취재 문의를 받고, 윤석열 대통령의 입을 대신하는 대변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앞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에서는 외신 대변인을 맡았다. 윤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한·미 정책협의 대표단’이란 이름으로 보낸 특사에도 이름을 올렸다.

◆워싱턴 특파원과 이라크 종군기자, 대통령 대변인
 

지난 5월 15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오픈라운지에서 강인선 대변인이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윤석열 대통령 출·퇴근과 관련한 발언에 대해 반박하는 내용의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강 대변인은 이달 1일 임명됐다. 당시 인수위 측은 "30년 이상 기자로 활동한 언론인으로서 실전 경험과 폭넓은 국내·외 네트워크를 보유했다"고 강 대변인을 소개했다. 국제적 감각 등 강점을 바탕으로 윤석열 정부와 언론·국민과의 소통 통로로서 역할을 하는데 적임자라고 봤다. 그러면서 '국민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국민과 함께 가는 윤석열 정부'라는 방향성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기자 시절 국제통으로 알려진 강 대변인은 30대 후반을 미국 워싱턴DC에서 보냈다. 특파원으로 부임해 미국 정·관계를 취재한 그는 '30대 여성 특파원은 이례적'이라는 시선에 더욱 이례적으로 대응했다. '3년짜리 우정'을 기대하는 워싱턴에서 5년간 굵직한 특종들을 쓰며 특파원 사회에 새 바람을 일으킨 것이다.

과거 한 인터뷰에서 "워싱턴 특파원이었던 5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 3~4시까지 기사를 썼다"며 "기자는 남에게 정보를 알리는 것을 좋아하고 가치 있게 여기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벌어진 해프닝은 '홍일점 워싱턴 특파원 강인선 기자의 24시'라는 칼럼을 통해 전했다. 어디를 가든 과도한 호기심이 뒤따랐고, 식당 종업원이 '남편은 어느 신문 특파원이냐'고 묻는 등 곳곳에서 반복적인 대답을 요구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 전쟁 종군기자로 전장을 누빈 이력도 빼놓을 수 없다. 쉴 새 없이 폭탄이 떨어지고,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목도하는 힘든 순간에도 취재를 이어갔다. 그 일화는 2003년 발간한 책 '사막의 전쟁터에도 장미꽃은 핀다'에 담았다.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면서 한때는 풍요를 상징했던 수도 바그다드에는 공포가 덮쳤다. 그렇게 사담 후세인 정권이 전복되기까지 약 40일 동안 전쟁터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생생하게 묘사했다.

강 대변인은 책에서 '고백하건대, 나는 강자의 정의보다는 약자의 시련에 더 공감했다', '전쟁은 결국 살인과 파괴다. 그러므로 '좋은 전쟁'은 없다'고 썼다. 이때 쓴 글을 매만져 지난해에는 '여기가 달이 아니라면'이라는 책을 펴냈다. 당시를 회상하면서 "어려운 과정을 지나온 스스로가 대견하다는 마음을 처음 가져봤다"고 인터뷰한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그간의 공로들은 최은희 여기자상, 최병우 기자 기념 국제보도상, 돈 오버도퍼 기자상 등을 수상하면서 인정받았다. 윤 정부 초대 대변인으로서 활약하는 것 또한 결과물의 하나다.

강 대변인의 남다른 이력과 국제적 감각을 뒷받침하는 배경에는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 외교학 석사,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취득 등이 있다. 특히 하버드 케네디스쿨 석사는 30대 중반에 도전했는데 늘 배움을 가까이 하고,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는 강 대변인의 성격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자신만의 삶의 방식 고민해야"…너무 빠른 정치권행 우려도
 

강인선 대변인 [사진=인수위]

강 대변인은 책 '힐러리처럼 일하고 콘디처럼 승리하라'도 썼다. 워싱턴 특파원 생활을 마치고 쓴 이 책에서 그는 미 국무장관을 지낸 '힐러리 클린턴', '콘돌리자 라이스'를 보면서 느낀 점과 배운 점에 기반해 후배 여성들에 대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경험에서 녹여낸 리더십에 대한 고찰과 성공을 위한 준비물 등이 오롯이 담겼다. 책은 당시 힐러리 열풍과 더불어 2030 여성들의 공감에 힘입어 베스트셀러가 됐다.

윤 대통령 역시 강 대변인의 국제적 안목과 도전·끈기 등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경제안보'를 필두로 국제사회와의 협력 등을 강조하는 윤 정부에서 외교 정책의 중요성은 어느 때보다 커졌다. 외교 업무 실무진은 아니어도 관련 정책을 전달하고, 대통령의 의중을 알리는 입장에서 강 대변인의 역량이 십분 발휘될 것으로 보인다.

벌써 윤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이라는 취임 후 첫 외교 시험대를 통과했다. 강 대변인은 용산 대통령실과 평택·오산을 오가며 이번 회담의 의미를 전달했다. 역시 언론인 출신인 이재명 부대변인을 비롯해 대변인실 관계자 전부가 몰두했다.

한편, 일부에서는 강 대변인이 현직 언론인으로서 대변인실에 직행한 데 대해 우려하거나 날을 세우기도 했다. 정치 권력을 감시해야 할 언론인으로서 부적절한 처사였다는 것. 강 대변인은 인수위에 외신 대변인으로 합류하기 3일 전까지 기사를 썼다.

앞서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겨레신문 선임기자를 그만둔 지 6개월 만에 문재인 대통령 대변인을 맡았다. 윤도한 전 MBC 논설위원은 명예퇴직 8일 만에 문재인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으로 임명됐다. 이들과 비교해도 정치권행이 너무 빨랐다는 지적이 나왔다. 강 대변인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았다.

과거 '고대신문' 인터뷰에서 대학생들에게 '상상력'과 '용기'를 가질 것을 조언하며 "자기가 어떻게 살아 나갈지를 머릿속에 그릴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직업을 가질지를 떠나서 남과는 다른, 자신만의 삶의 방식에 대해 고민하라"고 말한 것이 강 대변인 스스로에게도 해당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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