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선 칼럼] 김건희의 강아지, '악마 만들기' 구태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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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 시사평론가
입력 2022-05-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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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을 악마로 만드는 일은 역사 속에서 무수히 있었다. 16세기 종교개혁의 지도자였던 칼뱅(칼빈)은 자신의 해석과는 다른 성서 해석을 용납하지 않았다. 의견의 차이는 이단이나 국가적인 범죄로 다스렸다. 그런 칼뱅에게 맞서다가 박해를 당한 사람이 카스텔리옹이었다. 그는 종교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다고 믿었고, 성서 또한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며 칼뱅에게 맞섰다. 그러나 현실에서 벌어진 싸움은 권력을 가진 칼뱅의 승리로 끝났다. 전기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이 과정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단자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보면, 나는 우리 의견과 일치하지 않는 생각을 가진 모든 사람들을 우리가 이단자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 정치에서도 나와 편이 다르면 이단으로 몰아가는 현상이 부쩍 심해졌다. 우리 진영의 반대 편에 있는 상대를 악마로 만드는 정치는 이미 일상화 되었다. 우리는 선이고, 상대는 악마라는 이분법이 무서운 정치 감염병이 되어 계속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6월, 강준만 교수가 방송에 출연해서 문재인 정부의 치명적인 실수로 ‘윤석열의 악마화’를 꼽은 적이 있었다. 적폐수사 때에는 응원하다가 정권수사 때는 180도 다른 모습을 보여 ‘내로남불’ 논란을 자초하고, 소통 자체를 막아버리는 선악 프레임을 가동했다는 비판이었다. 그때 강 교수는 “상대편을 악마라고 욕해버리면 그쪽 하고는 소통을 포기하겠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상대를 악마로 규정하고 나면 그가 하는 모든 일들은 다 나쁜 짓들이 되고 만다. 그러나 윤석열 당선인을 겨냥했던 각종 수사들에서 모두 무혐의 처분이 내려지고 있다. 공수처는 최근 ‘고발사주’ 의혹 수사 결과 윤 당선인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고, 이어 ‘옵티머스 부실 수사’ 의혹에 대해서도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미 ‘한명숙 전 총리 모해위증수사 무마’ 의혹도 무혐의 처분이 내려진 바 있다. 공수처의 장기간 수사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혐의점이 나오지 않아 이미 대선 승부가 나기 전에 무혐의 처분이 예고되었던 사안들이다. 그러니 특별히 ‘당선인 봐주기’라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검찰총장 시절부터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악마화 했던 윤 당선인은 곧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정권세력에 의한 악마화가 지나쳐 박해로 비쳤고, 결국 오히려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셈이 되었다.

윤석열 악마화로 득을 보기는커녕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어버린 여권세력이건만, 악마화의 정치라는 습관은 이제 몸에 배어 좀처럼 버리지 못하는 모습이다. 윤 당선인의 부인 김건희 여사의 외교부 장관 공관 방문을 둘러싼 논란만 해도 그렇다. 민주당 우상호 의원은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소식통’의 전언이라며 “김 여사가 강아지를 안고 와서 외교부 장관 사모님에게, 70대가 넘으신 분한테 ‘이 안을 둘러봐야 되니 잠깐 나가 있어 달라’고 했다”며 “(장관 부인이) 바깥 정원에 나가 계셨고, 그 사이에 그 안을 둘러봤다고 한다”고 말했다. 우 의원은 “(장관 부인이) ‘상당히 불쾌했다’는 전언을 들었다”고 전했다. 그의 얘기만 전해 들으면 김건희 여사는 예의도 없고 막돼먹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아니나 다를까, 친민주당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는 “하도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며 “이런 게 쌓여 나라가 망하는 것”이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하지만 이 내용은 사실이 아니었음이 외교부 당국의 설명으로 확인되었다. 외교부 당국자는 “외교부는 청와대 이전 TF측과 협의를 통해 공관 방문 일정을 사전조율 해왔다”고 밝혔다. 인수위원회 청와대 이전 TF는 “장관 배우자와 아예 마주친 사실 자체가 없다"고 반박했다.

외교 장관 부인더러 나가 있으라고 했다는 우 의원의 주장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판명나자, 이번에는 강아지를 안고 갔다는 의혹으로 초점이 이동한다. 최민희 민주당 남양주 시장 후보는 “공식적인 행동에 강아지를 안고 간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CCTV 공개를 주장했다. ‘장관 부인’은 사라지고 이제 강아지만 남았다. 이사 갈 집에 배우자가 구경가는 일에 ‘공식적’이라 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그런 사적인 길에 분리 불안이 있다는 반려견을 건물 앞까지 안고 간 것이 왜 그렇게 문제가 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민주당 정치인들은 이사갈 집 보러 갈 때 검은 정장 차림에 검은 구두만 신고 가는지 궁금하다.

우 의원이 전한 대로 외교 장관 부인을 불쾌하게 만든 일이 없었다면, 사실이 아니었다며 사과하고 매듭지을 일이었다. 그런데 민주당 정치인들과 열성 지지자들은 다시 강아지 얘기까지 꺼내며 어떻게든 문제가 있었다는 쪽으로 끌고 간다.

김건희 여사를 두둔하려고 하는 얘기는 아니다. 지난 대선 때 드러났던 허위 경력 문제에 대해서는, 대통령 배우자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옛날 일이라 해도, 송구스러운 마음과 태도를 지니고 있는 것이 옳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선 내내 계속되었던 ‘쥴리’나 ‘동거설’ 같은 마타도어를 통한 마녀사냥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든 상대 후보의 부인을 마녀로 만들려던 비열한 정치 행태였다. 대선이 끝나고 정권이 바뀌게 되었어도, 그런 악마 만들기 정치는 누그러질 줄 모르고 여전히 기승을 부린다. 악마 만들기 정치는 증오와 저주의 정치라는 감옥에 우리를 가두어 버린다.

 당선인이든 그 배우자든, 잘못한 일이 있으면 당연히 비판 받아야 한다. 다만 그 비판은 사실에 근거해서 이루어져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비판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번 논란에서 압권은 김진애 민주당 전 의원의 일갈이다. "웬 나들이가 이리 잦나?" 그러니까 외부 활동도 일체 하지 말고, 어디 다니지 말고 숨어있으라는 얘기이다. 김건희 여사는 10일 취임식장에는 참석해도 되는 건지, 민주당 정치인들에게 승낙이라도 받아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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