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균 칼럼] 누구를 위한 '규제완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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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명예교수
입력 2022-04-21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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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명예교수 ]



정권교체와 함께 경제정책의 중심방향도 변할 것이 확실하다. 앞선 보수정부들과 마찬가지로 ‘윤석열 정부’도 규제완화가 경제정책의 큰 흐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권교체의 핵심원인으로 만인이 공감하는 부동산정책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은 듯 부동산 세금 인하, 재건축 규제 완화, 임대차법 재개정 등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을 거의 뒤집겠다는 각오가 엿보인다. 문재인 정부가 소극적이었던 공급확대에서는 1기 신도시 재건축에 관한 발표가 이루어졌지만 부동산 가격상승이 재연되자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만만치 않다.

한국 경제에서 규제완화는 그동안 모든 보수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했던 정책과제이다. 이명박 정부는 ‘비지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하면서 소위 ‘규제 전봇대 뽑기’에 나섰지만 결과는 반대로 나타났다. 전경련 분석에 따르면 2009년 1만1050건이던 정부 등록규제는 이명박 정부 마지막 해였던 2012년 8월 1만3594건으로 오히려 늘었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인하하여 기업에게 100조원을 경감시켜 주었지만 의도했던 투자증대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은 “세금 무서워 투자하지 않는 기업은 없다”는 경험담을 남기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는 규제를 “손톱 밑 가시”, “암덩어리”로 폄하하면서 대통령이 주재하는 ‘규제개혁 끝장 토론회’까지 연출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국회를 통과한 법률까지 심의하는 ‘규제개혁특별법’을 구상했지만 공청회에서 제기된 ‘위헌’ 비판에 접었다.

윤석열 당선인의 공개된 규제완화 공약은 앞선 두 보수정부보다 더 친재벌적이고 신자유주의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낙수효과가 아니라 분수효과가 재발할까 우려된다. 주요 선진국들의 기조와 배치되면서 한국 경제가 기업, 시장, 경제의 세 가지 차원에서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시대착오적인 규제환경에 놓일 우려가 크다. 그러나 정권과 무관하게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발전하려면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경쟁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기업규제에서는 특히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대기업에 의한 시장지배력의 남용을 억제하여 공정한 경쟁질서를 확립해야 한다. 한국 경제에서도 이에 관한 광범한 합의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납품단가 후려치기, 기술탈취 등에서 규제는 솜방망이 처벌로 인해 실효성이 없다. 규제개혁은 실적경쟁, 혁신경쟁을 촉진해야 한다.

시장 차원의 규제에서는 당연히 소비자의 권익 보호가 가장 중심에 있어야 할 것이다. 대기업들이 공정위의 오랜 ‘후견’에 힘입어 ‘정상적인 영업활동’으로 호도하고 있는 담합을 근절하는 것이 한국 경제가 정상적인 시장경제로 발전하기 위한 첫걸음일 수 있다. 자동차 연비 규제에도 불구하고 수입자동차의 ‘디젤 스캔들’은 막지 못했고 ‘한국 무시’라는 비난이 끼어들 틈도 없이 손해배상을 포함한 법정 처벌은 솜방망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보상과정은 피해자들의 ‘억장’이 무너지게 하고 있다. 불량식품을 선택할 자유보다 정부가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은 모든 국민이 건강한 식품을 소비할 수 있도록 적정소득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당선인은 지난 20일 전북지역을 방문해서 금융산업에 관해 “풀 수 있는 규제는 다 풀겠다”고 약속했다. 라임·옵티머스 펀드사기에서 드러난 것처럼 정보의 비대칭이 심각한 금융시장에서 약육강식을 피하려면 소비자 보호를 확보한 금융시장질서가 먼저 확립되어야 할 것이다. 매년 2000명이 넘는 산재 사망자 발생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었지만 그것이 적용되지 않는 사업장이 80%가 넘는다. 기업의 영업활동 자유보다 당연히 노동자의 생명이 우선되어야 한다.

경제 차원에서의 규제로는 최저임금제, 노동시간제, 환경규제 등이 있다. 노동권과 소비자 권익은 물론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는 강화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다. ‘120시간 노동’이 함의하는 노동시간의 유연화는 노동자의 자유로운 선택으로 분식된 강제노동이다. 정부가 노력해야 할 부분은 노동자가 법정노동시간 40시간만으로도 인간다운 생활에 충분한 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 정책을 펴는 것이다. 임금인상 때마다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중소기업의 어려운 사정’은 임금인상 억제가 아니라 중소기업의 지불능력을 개선함으로써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공정한 하도급질서는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아울러 임금억제나 규제완화를 통해 소기업을 한계기업, ‘좀비기업’으로 존속시키기보다 생산성 향상을 정부가 지원하는 것이 기업과 노동자 모두가 상생하는 길이다. 규제에는 기업이 이윤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인권보장, 환경보호와 같은 공동체적 가치의 구현에도 동참해야 한다는 ‘기업시민의식(Corporate Citizenship)’의 확립을 위해 국가가 설정하는 기준도 있다. 미국이 중국을 제재하는 이유로 거론하는 신장지구에서의 인권탄압과 강제노동이 그 사례이다.

규제는 규칙이다. 무작정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것은 이미 앞선 보수정부들의 경험이 말해주고 있다. 이념적으로도 시대착오적이다. 효율성 중심의 규제완화를 뒷받침했던 세계화 이데올로기는 이제 안전(안보) 가치의 부상과 함께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미·중갈등은 물론 우크라이나전쟁과 상하이 봉쇄는 공급망의 내재화가 기업 차원을 넘어 국민경제 전체의 과제가 되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해주고 있다. 이제 규제개혁은 디지털화, 탄소중립, 미·중 갈등 및 위드코로나 국면에서의 공급망 재편, 경제안보의 강화, 지역균형발전을 목표로 하는 국가비전을 수립한 다음 여기에 담을 과제를 선별하는 것이다. 미래비전 없는 ‘묻지마’ 규제완화는 본말전도의 위험한 실험이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 박사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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