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현대차 '새봄' 준비했던 다거(大哥)를 떠나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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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이재호 특파원
입력 2021-12-27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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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간 현대차 중국 사업을 총괄했던 이광국 사장이 귀국을 앞둔 지난 12월 23일 베이징의 한 식당에서 진행된 송별 행사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이재호 기자]

지난 2019년 10월 현대차는 국내영업본부장을 맡고 있던 이광국 부사장을 중국사업총괄 사장으로 승진 임명했다.

국내영업본부장 시절 과감한 영업 전략과 적극적인 브랜드 마케팅 추진으로 한때 32%까지 떨어졌던 내수 점유율을 40% 이상으로 끌어올리며 성과를 인정받은 터였다. 

갑작스러운 중국 파견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당시 중국 사정은 한국과 판이했다. 2016년 114만대를 넘겼던 판매량은 이후 계속 줄어 2019년 65만대 수준까지 쪼그라들었다.

인맥에 의존하는 이른바 '관시(關係)' 경영에서 탈피해 한국에서의 성공 경험을 중국에 이식하는 게 시급했다. 이 사장을 중국에 급파하게 된 배경이다. 

중국에 첫발을 디딘 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20년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사태 초기 공장 가동이 일시 중단되는가 하면, 직원들 역시 한동안 정상 근무가 어려웠다. 시작부터 가시밭길이었다.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여파로 그해 중국 자동차 판매량은 전년보다 7% 가까이 감소했고, 현대차도 44만대를 판매하는 데 그쳤다.

이 사장은 중국 전역을 누비며 실적 개선을 모색했지만 반전은 쉽지 않았다. 

지난 8월 관영 신화통신은 이례적으로 현대차의 중국 내 행보에 대한 보도를 냈다. 

'현대차의 중국 시장 점유율이 3% 밑으로 떨어졌다'가 기사 제목이었을 정도로 부정적인 논조였다. 신화통신은 "시장 변화를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고 현지화 과정도 더디다"고 지적했다. 

중국 자동차 업계 전문가들의 견해도 비슷하다. 현대차가 부진한 원인으로 △신차 출시 부족 △전기차 시장 진출 지연 △영업망 위축 △잦은 전략 수정 등을 거론한다.

지난해 장쑤성 옌청에서 열린 한·중 무역투자박람회에 참석한 이 사장은 주중 한국대사관 관계자 및 재중 한국 기업인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여러가지로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기자와 만나서도 "이른 시일 내에 현대차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는데, 이후 부진한 실적이 발표되거나 신차 론칭이 늦어지거나 주재원이 추가로 철수하거나 할 때마다 반복되는 입버릇이 돼 버렸다.

중국에 와 느끼게 된 현대차의 위상은 애매하다. 중국 소비자들은 상당히 실리적이다. 구매력이 있다면 벤츠 등 고급 브랜드를 소비하고, 그렇지 않다면 가성비가 좋은 로컬 브랜드 차량을 산다. 

전기차의 경우도 하이엔드 시장은 테슬라, 그 밑은 니오·샤오펑 등 로컬 브랜드로 완전히 양분돼 있다. 다른 외국 브랜드가 끼어들 틈은 없다. 

품질은 독일·일본에 미치지 못하고 가격은 중국 제품보다 비싼 현대차의 설 자리가 갈수록 좁아지는 이유다. 삼성 등 다른 한국 기업들의 공통된 고민거리이기도 하다. 

이 사장은 "중국에 2~3년 머문 것만으로 중국통이 되긴 어려운 것 같다"며 중국 시장 공략이 녹록지 않았음을 토로했다.

다만 악전고투 속에서도 재도약을 위한 씨앗을 뿌리는 데 소홀하지 않았다. GV70 전기차 모델 등 경쟁력 갖춘 신차 출시 준비, 광저우 수소연료전지 생산기지 착공, 상하이 디지털 연구개발(R&D)센터 오픈 등을 꼽을 수 있다.

지난 23일 베이징의 한 식당에 재중 한국 기업 법인장과 주재원, 언론사 특파원 등 20여명이 급하게 모였다.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귀국길에 오르는 이 사장을 위한 송별 자리였다. 

머쓱한 표정으로 일어선 이 사장은 "지난 2년간 후회 없이 일했다. 중국은 인연이었다"는 짧은 소회를 전했다.

윤도현의 '너를 보내며'를 목청껏 부르며 이별을 아쉬워하는 좌중을 달래기도 했다. "먼산 언저리마다 너를 남기고 돌아서는 내게 시간은 그만 놓아주라는데…"

베이징의 교민 밀집 거주지역인 왕징에서 이 사장은 '다거(大哥·형님)'로 통했다. 늘 소탈하고 격의 없는 태도로 후배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격려하는 선배였다. 

한겨울 칼바람 속에서도 현대차의 새봄을 준비했던 이 사장이 그의 말처럼 '인생의 1막 2장'을 성공적으로 열어젖히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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