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칼럼-지금] ‘대장동 00했다면’…3인 원죄와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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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수석논설위원
입력 2021-10-20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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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B, 대장동 개발 LH 배제 안 시켰다면

  • 검사 윤석열, 부산저축은행 비리 수사 제대로 했나

  • 이재명 시장, 민간 초과이익 환수 조항 꼼꼼히 봤나



‘만약 00했다면’이라는 가정(假定)은 별 쓸모없는 상상일 때가 많다. 특히 역사에서 가정은 무의미하다고, 허무하다고들 한다. ‘어느 위인이 어떤 일을 안 했다면', '특정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등의 물음 말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실체적 진실이 드러나 잘잘못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진 일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 이는 정사(正史)로 기록된다. 하지만 현재 진행 중이거나 여전히 논란이 일고 있는 경우라면 가정법은 무의미하지 않다. 되레 그 실체와 관련자들의 책임을 더 선명히 드러나게 한다.

IF(이프)로 시작하는 영어의 가정법은 다양한 시제가 있다. 이 중 가정법 과거는 지금 현재와는 반대되는 상황을 가정한다. 지금과 다른 사실의 가정을 통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지금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는 ‘대장동 의혹’도 그렇다. 가정법 과거를 결정적인 순간과 사람에 대입하면 대장동 스캔들의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언제 어디서부터, 누가, 얼마나 잘못한 건지 판단할 수 있다.

◆만약 MB가 LH 배제 안했다면
대장동 가정법 1호는 12년 전인 2009년 10월 7일로 돌아간다. 이날은 대한민국의 공공 땅 사업을 총괄하는 한국토지공사와 공공주택 사업을 전담한 대한주택공사가 통합,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 탄생한 날이다. 당시 이명박(MB) 대통령은 출범 축하식이 열린 경기도 성남시 분당 사옥을 찾았다. 문제의 대장동에서 불과 10㎞ 떨어진 곳이다.

MB는 축사에서 대장동 의혹의 서막을 여는 발언을 했다. 

“새롭게 통합된 회사는 민간 회사와 경쟁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경쟁해서도 안 됩니다. 오로지 스스로 경쟁해야 합니다. 공기업은 이익이 나지 않아서 민간 기업이 일을 안 하겠다고 하는 분야에서 서로 보완하며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대통령 기록관 공식 축사 중)

"LH는 빠져라, 이익이 나는 일은 민간기업에 맡기라", 대장동 개발의 방아쇠를 당긴 순간이었다. 10월 5일 LH가 성남시와 함께 대장동 공영개발 실무작업을 본격화한 지 불과 이틀 만에 나온 국정 최고위직, 대통령이 한 발언이다.

LH가 올해 국정감사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LH는 2008년부터 대장동 개발 사업을 따내기 위해 성남시에 성남판교대장 지역을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해달라고 제안했다. 한 차례 거절당한 끝에 성남시와 사업을 시작한 LH는 2009년 10월 5일부터 10월 19일까지 개발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을 듣는 ‘공람 절차’에 들어갔다. 그런데 7일 대통령이 위 발언을 했고, 이지송 당시 LH 사장은 다음날인 8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민간과 경쟁하는 부분은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곧이어 신영수 당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의원이 등장한다. 대장동 지역구 국회의원이면서 국회 국토해양위 소속인 그는 LH에 대장동 개발사업에서 빠지라고 재촉한다. 나중에 신 의원 동생은 1차 민간개발업자인 씨세븐으로부터 제3자를 통해 뇌물을 받은 죄로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았다. 씨세븐은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핵심인물인 남욱 변호사와 정영학 회계사 등이 일했던 곳이다.

결국 LH는 2010년 6월 28일 성남판교대장 도시개발사업을 최종적으로 포기했다.

이명박-이지송-신영수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는 현대건설이다. 회장을 지낸 MB, 대표이사 출신 LH 전 사장, 건축사업본부 상무보 출신 신 전 의원으로 엮인다.

만약 MB가 LH를 배제하지 않았다면 대장동은 공영개발을 계속 했을 터, 그러면 당연히 화천대유, 천화동인은 이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을 거다.
 

◆만약 윤석열 검사가 제대로 수사했다면
공기업 LH가 빠진 이후 이후 대장동에 ‘민간업자들’이 전면에 나섰다. 그들의 돈줄은 부산저축은행이었다. 이 지점에서 다음 가정은 검찰 수사로 이어진다. 부산저축은행 비리 수사 말이다.

2011년 대검 중앙수사부가 직접 나섰던 이 수사의 그 주임검사는 윤석열 당시 중수2과장이었다. 수사 시작 때 윤 과장의 상관인 중수부장은 김홍일 현 윤석열 국민캠프 정치공작진상규명특별위원장이었다. 그 후 인사로 중수부장은 ‘대장동 50억 클럽’ 중 한 명이라는 의혹을 받는 최재경 전 청와대 민정수석(박근혜 정부)으로 교체됐다.

2011년 11월 2일자 당시 중수부가 내놓은 ‘부산저축은행그룹 비리 사건 수사 결과’ 보도자료를 꼼꼼히 다시 훑어봤다.

보도자료 핵심 내용은 “불법 대출 6조1000억원에 이르는 거대 금융 비리 확인”이라고 적은 굵은 글씨체 그대로다. 수사 최대 성과로 자랑하는 특수목적법인(SPC) 관련 부동산 불법 대출의 주요 사례 5가지를 적시했다. △신안섬 개발 사업(이하 대출총액 6516억원) △인천 효성동 도시 개발(6155억원) △시티건설 등 골프장 사업(2733억원) △용인 수지 상현동 아파트 시행(770억원) △순천 왕지동 아파트 시행(447억원) 등이다. 위 사건들에 대해 불법 대출이 이뤄진 과정과 정관계 로비 의혹 등 그 수사 내용과 결과를 자세히 실었다.

그러나 대장동 PF 대출 건은 다뤄지지 않았다. 대장동 개발사업의 시행사인 대장프로젝트금융투자(대장PFV) 등은 2009년 11월부터 부산저축은행 등 11개 저축은행에서 1805억원의 부동산대출(PF자금)을 받았다. 여기에 다시 천화동인 4호·5호의 소유주로 막대한 배당 수익을 거둔 남욱 변호사와 정영학 회계사가 또 등장한다. 이들은 핵심 역할을 담당하며 불법 대출금을 토지매입 비용 및 운영비 등으로 사용했다.

이때 총 대출금 1805억원 중 1155억원이 부산저축은행그룹에서 나왔다. 대검은 그런데 용인 수지, 순천 왕지동 등 상대적으로 적은 규모의 대출 비리는 대대적으로 수사했지만 대장동은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10억여원의 뇌물을 받은 이를 참고인으로 조사하는 데 그쳤다. 수사팀은 씨쎄븐 대표를 '면담'만 했다.

국민의 막대한 세금(공적자금)이 투입된 터라 이를 담당하는 공공기관인 예금보험공사가 2014년 부산저축은행 대출금을 갚지 못한 대장PFV 측을 검찰에 수사의뢰하기까지 했다. 이 때 수원지검은 그 참고인을 구속기소했다.

가정법은 간단하다. 만약 2011년 윤석열 검사가 부산저축은행 비리에서 대장동 관련 부분을 제대로 파헤쳤다면 어땠을까. 남욱, 정영학은 이때 걸러졌을 것이고. 김만배도 탄생할 수 없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과거 대검찰청 중수부는 나는 새도 떨어트렸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이보다 더 딱 들어맞는 표현은 없을듯하다. 권위와 실력이 있었다. 여러 이유로 수사를 안 하는 건 있어도 몰라서 못하는 건 거의 없었다. 몰라서 못했다면 무능이고, 알고도 안했다면 비리 가능성이 농후한 직무유기다.

뒤늦게나마 이런 가정법을 확인할 길이 열렸다. 김오수 검찰총장이 대장동 개발 로비 의혹 사건과 관련해 2011년 부산저축은행 사건 부실수사 의혹을 다시 수사하도록 지휘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김 총장은 18일 대검찰청 국정감사에 출석해 “관련 사건 기록을 수사팀이 광범위하게 검토하고 또 더 수사할 것이 있으면 수사하는 방향으로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재명 시장, 초과이익 환수조항 꼼꼼히 챙겼다면
MB의 LH 배제, 검사 윤석열의 대장동 불법 대출 무(無)수사를 거쳐 세 번째 ‘대장동 가정법’은 민간 초과 이익 제한이다. 만약 2015년 이재명 성남시장이 민간 초과 이익 환수 규정을 꼼꼼히 챙겼다면 오늘날 이 사달이 벌어지지 않았을 거다.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을 종합해 보면 대장동 개발 사업 실무 책임을 맡은 성남도시개발공사 관계자들은 2015년 5월 대장동 개발 사업협약서를 최초 작성할 때 ‘민간 초과 이익 환수’ 조항 필요성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 빠졌다.

당시 화천대유는 사업협약서 초안을 만들어 공사 개발사업1팀에 검토를 요청했다. 팀 실무자는 5월 27일 오전 10시 34분 ‘사업협약서 수정 검토’ 제목의 문서를 만들어 팀장에게 결재를 올렸다. 그 문서에는 ‘민간사업자가 초과 이익을 거뒀을 때 이를 나누는 별도의 조항이 들어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그런데 불과 7시간 뒤인 오후 5시 50분 이 내용을 없앤 사업협약서 검토 공문을 작성했고, 결국 이 협약서가 실제로 적용됐다. 바로 이 포인트가 대장동의 막대한 수익을 민간이 가져가게 된 계기였다.

이 과정에서 당시 유동규 공사 기획본부장이 압력을 넣었는지,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이재명 시장이 최종 결재를 한 설계자, 책임자라고 자인한 상황에서 이 조항이 삭제된 건 대장동 가정법의 주요 팩트다.

사실 이재명 시장은 이런 일이 일어나기 3개월 전인 2015년 2월 “민간 수익을 지나치게 우선시하지 않도록 하라”고 적힌 문건에 결재를 했다. 하지만 5월에 ‘초과이익 환수 조항’이 사업협약서에서 빠진 걸 챙기지 못했다.

물론 이재명 후보가 18일 국정감사에서 말한 것처럼 성남시가 이익 금액을 선확정해 민간업자들의 비용 부풀리기를 통한 ‘장난질’을 막았을 수는 있다. 그럼에도 ‘통상적인 이익 규모를 벗어날 경우 배분에 대해 다시 논의한다’는 단서조항을 달았다면 어땠을까.

만약 그랬다면 대장동 의혹은 관과 민, 법적인 싸움이 될 수 있을지언정 지금과 같은 정치적 스캔들이 되지 않았을 거다. 검사 윤석열과 시장 이재명은 비슷하다. 몰랐다면 무능이고 알고도 그렇게 했다면 구린 거다.

그래서인지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18일 경기도 국정감사 마무리 발언에서 대장동 의혹과 관련해 “이 일을 담당했던 사람의 하나로서 정말 무한 책임감을 느낀다. 제가 최선을 다했다고 하지만 부족해서 (대장동 개발이익을) 완전히 회수하지 못한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사실 대장동 가정법의 가장 마지막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다. 대한민국 부동산을 걷잡을 수 없는 폭등, ‘불장’으로 만든 정책 실패 말이다. 지난 3년 대장동 개발 이익이 천문학적으로 커진 가장 직접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만약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처참하게 실패하지 않았다면, 대장동 개발은 민관이 협력한 모범적인 부동산 비즈니스 모델로 남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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