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발 중동 정세의 긴박한 흐름으로 원유 공급망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일본이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수입하는 원유 가격이 한 달 만에 80% 이상 폭등하며 일본 경제를 강타하고 있다. 특히 기록적인 엔화 가치 하락(엔저)이 겹치면서 엔화로 환산한 원유 가격은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일본 전체 원유 수입의 절반 이상을 사우디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이번 가격 급등은 민생 경제는 물론 국가 재정 전반에 심각한 부담을 안겨줄 것으로 전망된다.
1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일본 석유업계가 사우디로부터 장기 계약으로 도입하는 대표 유종인 '아라비안 라이트'의 3월 선적분 가격은 배럴당 126.28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전월 대비 무려 57.71달러(84%)가 뛰어오른 수치다. 일본 정유사들이 장기 계약으로 도입하는 이른바 '직접거래원유(Direct Deal)'는 아시아 지표인 두바이유와 오만유의 월평균 가격에 사우디 측이 수급 상황 등을 고려해 결정하는 '조정금(OSP)'을 가감하여 매달 가격을 산정하는데, 이번 급등은 지표 원유인 두바이유 가격 자체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최고치에 근접할 정도로 크게 오른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문제는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일본 기업과 소비자들에게 전가되는 실질적인 비용 부담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점이다. 3월 평균 엔/달러 환율은 158엔대 후반으로, 원유 가격이 달러 기준으로 역대 최고치였던 2008년에 비해 엔화 가치가 약 33%나 절하된 상태다. 이에 따라 3월 선적분의 엔화 환산 가격은 배럴당 2만 100엔(약 19만원)을 돌파했다. 이는 비교 가능한 데이터가 있는 1986년 이후 가장 높은 가격이다.
에너지 비용 급등은 국내 가솔린 가격과 공공요금 인상으로 직결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19일부터 정유사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며 가격 억제에 나서고 있으나, 원가 상승 폭이 워낙 커 한계에 직면했다.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기준 전국 평균 보통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70.2엔을 기록했다. 정부 보조금 덕분에 190엔대에서 하락했으나, 보조금 지원이 중단될 경우의 가격 상승 압력은 여전히 거센 상황이다.
재정적 부담도 임계점에 다다랐다. 노무라증권의 분석에 따르면 원유 가격이 배럴당 130달러일 때 보조금이 없다면 보통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225엔에 육박하며, 이를 억제하는 데 필요한 보조금은 하루 약 160억 엔에 달한다. 노자키 우이치로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현재 확보된 기금과 예비비 등 약 1조 엔의 재원은 지금 같은 고유가·엔저 추세가 이어질 경우 5월 말쯤 고갈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고유가 여파는 전기와 가스 요금으로도 번질 기세다. 일본 화력발전의 핵심 연료인 액화천연가스(LNG)는 통상 일본의 평균 원유 수입 가격에 연동해 조달 가격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에너지 업계는 3월부터 시작된 원유가 급등이 3개월의 시차를 두고 반영되면서, 오는 6월부터는 일반 가정의 전기 요금을 큰 폭으로 끌어올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거시경제에 미칠 타격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미쓰이스미토모 DS 자산운용의 와타나베 마코토 선임 거시 전략가는 "만약 원유 가격이 향후 1년간 130달러 선에서 유지될 경우 일본의 인플레이션율을 1.28%포인트 밀어올리는 동시에,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2.65% 감소시킬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동 분쟁이 일시적으로 소강상태에 접어들더라도 호르무즈 해협의 물류 정상화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점이 불안 요소를 키우고 있다.
일본 정부는 중동 의존도가 94%에 달하는 현재의 에너지 공급 구조가 국가 안보에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실감하게 됐다는 평가이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임시방편적인 보조금 지급에는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미쓰비시 UFJ 리서치&컨설팅의 아쿠타 도모미치 주임연구원은 "공급망 다각화는 일본이 취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유효한 선택지"라며 "효율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부족한 물량을 보완하기 위해 미국이나 남미 등으로 조달처를 분산하는 작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