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人사이드] 기시다, 국회 연설서 한국 '단 두 문장' 언급...아베 정권 그대로 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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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현 기자
입력 2021-10-08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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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후미오 신임 일본 총리가 취임 나흘 만에 처음으로 한국을 언급했다. 하지만, 단 '두 문장'으로 끝난 발언에선 한·일 관계 개선의 단서를 찾기 어려웠다.

8일 오후 기시다 일본 총리는 일본 도쿄도 국회의사당에 방문해 취임 후 첫 '소신 표명 연설'을 진행했다. 해당 연설에서 그는 "한국은 중요한 이웃 나라다"라며 "(양국 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기 위해서라도 우리나라(일본)의 일관된 입장에 기초해 한국에 적절한 대응을 강력히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소신 표명 연설이란 일본 총리가 임시국회나 특별국회를 소집해 향후 정부 방침을 제시하는 자리다. 일반적으로 일본 총리는 매년 1월 일반국회에서 '시정 방침 연설'을 통해 한 해의 정부 정책 방침을 제시하지만, 이 외의 시급한 현안 혹은 신임 총리 취임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을 경우 이에 준하는 소신 표명 연설을 진행한다.
 

8일 오후 일본 도쿄 중의원(하원)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취임 후 첫 소신 표명 연설을 진행했다. [사진=AFP·연합뉴스]


지난 4일 취임한 기시다 총리는 그간 북한과 중국, 대만 등의 이웃 국가과 미국·호주·영국 등 주요국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면서도, 우리나라(한국)와 관련한 발언은 피해왔다. 이는 이웃 국가에 대한 외교적 결례로 평가된다.

이날 그는 취임 나흘 만에 한국을 공식적으로 언급했지만, 6900자에 달하는 전체 연설문 중 해당 발언은 단 두 문장에 불과했다. 이는 앞선 아베 전 총리와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의 관련 발언을 거의 그대로 유지한 것으로 평가되지만, 중요도와 무게감은 한층 낮아진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2019년 10월 아베 전 총리가 "한국은 중요한 이웃 나라"라고 발언한 것이, 지난해 9월 스가 전 총리의 첫 소신 표명 연설에선 "한국은 극히(極めて·기와메테) 중요한 이웃 나라다. 건전한 일한(한일) 관계로 되돌리기 위해 우리나라의 일관된 입장에 토대를 두고 적절한 대응을 요구하겠다"로 이어졌다. '기와메테'는 극히, 더없이, 지극히, 매우 등을 의미하는 단어다.

다만, 이후 스가 총리는 올해 1월 국회에서 진행한 시정 방침 연설에서 다시 '기와메테'를 빼고 "한국은 중요한 이웃 나라"라고만 언급하며, 외교적 중요도를 격하했다.

특히나, 아베 전 총리가 해당 표현을 처음 언급했던 2019년 10월 당시에는 한·일 관계가 극한 대립으로 치달았던 상황이었기에, 일본 측에서 양국의 관계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당시 우리 법원은 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판결을 내렸고, 일본 측은 이에 대한 보복 조치로 같은 해 7월부터 우리나라에 대한 주요 반도체 소재·부품의 수출 규제를 강화했다. 이후 한 달여만인 8월 말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한 상응 조치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날 기시다 총리는 미국, 북한, 중국, 러시아, 한국 순으로 등 입장을 표명하며 주요 외교 상대국 중 우리나라를 가장 마지막에 거론했다는 점도 신임 일본 내각이 우리나라에 대한 외교적 중요도를 격하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아울러, 기시다 총리가 지적한 일본의 '일관된 입장'이란 역사 문제와 관련한 관계 악화의 책임이 우리 측에 있기에 관계 개선의 해법 역시 우리나라가 제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강제 징용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등 일제 시기 일어났던 문제는 과거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통해 양국이 모두 합의했으며, 일본 측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통해서도 충분히 보상했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우리 법원의 관련 배상 판결은 이들 협정과 합의를 깨드린 '국제법 위반 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기시다 총리는 2015년 당시 일본 외무상으로서 한·일 위안부 협정을 체결한 주역이며, 지난달 집권 자민당의 총재 선거 과정에서 해당 합의는 '세계가 높게 평가한 합의'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당시 "(한국이) 이조차 지키지 않으면 미래를 향해 무엇을 약속하더라도 미래는 열리지 않는다"면서 "(양국의) 대화는 필요하지만, 한국은 그 기본을 확실히 지키면서 생각하면 좋겠다. 공은 한국에 있다"고 강조했다.

기시다 초대 내각 명단과 일본의 각종 선거가 임박한 시기를 고려했을 때도, 당분간 기시다 내각에서 양국의 관계 개선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에선 이달 말 총선(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으며, 내년 여름에는 상원의회에 해당하는 참의원 선거도 진행한다. 따라서, 기시다 총리와 자민당 측에 일본 내 여론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는 우리나라와의 타협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기시다 총리는 외무상으로 아베 정권 말기부터 이 자리를 지켜온 모테기 도시미쓰 현 일본 외무상을 유임했으며, 일본의 수출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경제산업상에는 극우 성향으로서 수정주의 역사관을 옹호하는 하기우다 고이치가 임명됐다. 아울러 자민당 핵심 간부직인 간사장과 부총재 자리는 아베 전 총리의 최측근인 아마리 아키라와 아소 다로가 차지했다.

반면, 우리 정부는 외교 관계 개선을 위해 양국이 대면해 함께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입장을 이어가고 있다. 이날 외교부는 "일본과 미래 지향적 관계로 발전해나갈 수 있도록 소통하며 협력해 나가기를 기대한다"면서 "양국 간 현안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성명을 발표했다. 

한편, 이날 기시다 총리는 앞서 취임 직후 기자회견에서 공개했던 △코로나19 대응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강조하는 새로운 일본식 자본주의의 실현 △국민을 지키는 외교·안보정책 등 3개의 중점 정책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아울러, 새 내각의 외교·안보 정책의 기반이 미·일 동맹이라는 점을 재확인한 후 △자유 △민주주의 △인권 △법의 지배라는 보편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미국 △호주 △인도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ASEAN) △유럽 등 동맹국·동지국과 제휴해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고도 강조했다. 사실상 대중 강경 입장을 피력한 것이다.

이날 기시다 총리는 중국에 대해서도 대화와 협력을 이어가며 안정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동시에, (중국 측의) 책임 있는 행동을 강하게 요구하겠다는 스가 전 내각의 기존 입장을 그대로 유지했으며, 러시아에 대해선 북방 영토와 관련한 보다 강경한 입장을 추가했다.

북한 관련 입장 역시 크게 변하지 않았다. 기시다 총리는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을 용인할 수 없다는 점을 재확인하고 "일·조(북·일) 평양선언에 따라 납치, 핵 미사일 등 현안을 포괄적으로 해결하고 북·일 국교 정상화를 실현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납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조건 없이 만날 수 있다는 점도 반복했다.

다만, 이날 오전 북한 측은 일본인 납치 문제는 "이미 완전히 끝난 문제"라면서 "일본 수상은 조·일 관계 문제와 관련한 언행을 신중하게 하라"고 경고했다.
 

기시다 후미오 신임 일본 총리(당시 일본 외무상·오른쪽)와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사진은 2017년 2월 모습. 두 사람은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를 체결한 주역이다. [사진=외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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