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비.
많은 사람들이 럭비라는 종목은 알고 있지만 규칙, 몇 명이 출전하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무관심의 대상이었다.안드레 진 선수는 럭비가 좋아서 한국에 귀화하고 올림픽 출전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운동장을 누볐고, 도쿄올림픽을 통해 98년만에 처음 한국 선수들이 럭비 국가대표로서 올림픽에 출전했다. 특히 안드레 진 선수는 직장인이라는 점에서 더욱 놀랐다. 안드레 진 선수와 만나 그의 이중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 안드레 진 선수 제공/ 럭비 국가대표 안드레 진]



Q, 첫 올림픽 어떠셨어요?

A. 영광이었고 큰 책임감을 느꼈어요. 한국 국가대표로서 최초로 나가는 럭비 팀이고 제가 최초 귀화 선수라 무거운 책임감이 있었는데 좋은 경험이었고 앞으로 럭비가 계속 올림픽 무대에 나갈 수 있도록 노력을 할 거예요.

Q. 럭비를 처음 하게 된 계기가 뭔가요?

A. 원래 제가 초등학교 중학교 다닐 때 축구와 농구를 했어요. 한국에서 태어났고 유치원은 한국 시스템의 교육을 받았는데 초등학교 1학년 때 국제학교를 갔어요.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자기 길을 찾게 하는 교육시스템이거든요. 중학교 3학년 때 캐나다 기숙학교에 갔는데 조정과 럭비가 유명했어요. 원래는 축구와 농구를 하고 싶었는데 혼자만 다른 종목을 하기는 싫어서 럭비를 했는데 처음부터 럭비의 매력에 빠졌어요.

Q. 매력에 빠졌어도 직업으로 삼기는 힘든데 어떻게 직업이 됐나요?

A. 럭비가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취미로 시작했는데 취미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Q. 럭비를 통해 가장 크게 얻는 건 뭔가요?

A. 국적을 받은 거죠. 럭비가 없었으면 귀화도 못했을 거예요. 한국에서 태어났어도 럭비가 없었으면 한국인으로 인정을 못 받았을 거예요. 럭비 덕분에 나라를 얻었고 한국인이 돼서 럭비한테 감사하죠.

Q. 귀화를 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뭐라고 하던가요?

A. 국제학교에 다녔어도 집에서는 항상 한국말만 하고 한국 음식만 먹으면서 자랐는데 하나의 국적만 가질 수 있다는 게 웃기잖아요. 근데 법이 바뀌고 귀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됐을 때는 너무 기뻤죠. 마음은 한국인이라고 하는데 국적은 미국인이었거든요. 근데 제가 태어난 나라를 대표할 수 있고 국적을 얻을 수 있어서 기뻐하셨죠.

Q. 98년만에 한국 럭비가 처음으로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는데요. 기분이 어떻던가요?

A. 출전권을 딴 건 2019년 11월이었는데 세상에서 제일 기쁜 순간이었어요. 너무 기뻐서 시합 끝나고 인터뷰를 하는데 말도 안 나왔거든요. 특히 저희는 비인기종목이라 팬들이 별로 없어서 운동장에 서있으면 가족들이 보이는데 펑펑 우는 거예요. 그거보고 저도 울었죠.

 

[시진= 안드레 진 선수 제공]


Q. 럭비를 많은 사람들이 아는데도 불구하고 비인기종목인 이유는 뭔가요?

A. 어떤 종목들은 자연스럽게 인기종목이 되고 어떤 종목은 성적이 좋아야 인기종목이 되거든요. 펜싱이나 양궁은 전세계에서는 비인기 좋목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인기종목이거든요. 성적이 좋으니까. 근데 럭비는 우리나라에서는 비인기종목이지만 전세계에서는 인기종목이거든요. TV 시청률을 봤을 때 월드컵, 올림픽, 럭비월드컵 순이에요. 우리나라에서만 비인기종목이에요. 그러니까 스스로 마케팅을 해야죠. 성적을 내야 이슈가 될 수 있거든요. 우리는 자연스럽게 마케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투자를 안 하고 인기종목으로서의 발전 얘기만 5~6년을 했는데 우리가 스스로 나서서 뭔가를 해야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선수로서 그런 책임감을 느끼고 협회도 방송을 많이 내보내고 9월부터 초등학교 강사도 시작할 예정인데 이게 계기가 돼서 저변확대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Q. 올림픽을 가는 비행기 그리고 한국을 오는 비행기에서 어떤 생각들이 가장 크게 들던가요?

A. 일본으로 갈 때는 내가 해야 되는 역할만 생각이 났어요. 원래는 일찍가서 적응할 시간이 있는데 이번에는 코로나 때문에 4~5일 정도만 남기고 갔거든요. 그래서 출장 느낌이었어요. 도착하자마자 연습하고 개막식 하고 이틀 뒤에 시합이었어서 올림픽 나가는 것도 생각을 많이 안하고 시합을 잘 뛰어야 된다는 생각 뿐이었어요. 한국을 대표하는 것보다 국민들에게 럭비를 대표하는 게 더 컸어요. 럭비를 제대로 소개해줄 수 있는 기회가 이것밖에 없어서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었고요. 돌아올 때는 아쉽고 마음이 무거웠어요. 올림픽에 나가서 큰 영광이었고 최초로 방송에 생중계 되는 게 기쁘고 뿌듯했는데 아쉬운 모습밖에 못 보여줘서 비행기 탈 때 한국에 들어오기 싫었어요. 시간을 돌려서 시합을 더 뛰고 싶었어요. 한국에 오면 올림픽도 끝난 거고 못 이기고 돌아온 것에 대해서 슬프고 실망스러웠어요.

Q. 올림픽을 하는구나 라는 실감이 났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A. 평소에는 진천선수촌에 있어서 항상 똑같은 일상이라 실감이 안 났는데 올림픽 나가기 한달 전에 네이버 프로필 촬영이 있었거든요. 그때 메이크업도 하고 인터뷰도 했는데 다른 종목 선수들은 이런 경험들이 있었겠지만 럭비선수들은 이런 게 처음이거든요. 그래서 그때 올림픽이라는 게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Q. 홍콩에서 더 좋은 조건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뛰어야 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계기가 뭔가요?

A. 한국 사람인데 한국에서 뛸 기회가 있으면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있었거든요. 한국 럭비에 대한 가능성이 있어보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럭비라는 종목은 아는데 왜 인기가 없지?’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학교에서 스포츠마케팅을 배웠고 회사도 스포츠마케팅 회사를 다니니까 선수로서 10년 정도 뛰다가 은퇴 후에 럭비를 알릴 수 있는 스포츠마케터의 길이 보였어요.
럭비를 통해서 귀화를 할 수 있으니까 제게 조건은 중요하지 않았죠. 아버지가 항상 좋아하는 일을 하면 돈은 언제든 벌 수 있다고 말씀을 하셨거든요. 그때 당시 조건은 안 좋았더라도 지금은 조건이 점점 좋아지고 있거든요.

Q. 안드레 진 선수에게 공은 어떤 존재인가요?

A. 어렸을 때부터 저한테는 공만 있었어요. 어디를 가던 테니스공이나 축구공이 있어서 공을 가지고 놀았어요. 다른 친구들을 비디오게임이나 다른 선물들을 받지만 저든 항상 공을 받았거든요. 공 하나 덕분에 종목을 찾을 수도 있었고 공 덕분에 인생에서 중요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을 만났고 공 하나로 나라를 얻었으니까 저한테는 공이 모든 거죠.

 

[사진= 안드레 진 선수 제공]


Q. 올림픽 이후 가장 크게 달라진 건 뭔가요?

A. 원래는 저희를 찾는 분들이 거의 없었어요. 많아 봤자 1년에 1~2개 기사만 나오고요.
그것도 제 개인의 스토리를 보고 찾아오시는 분들이었는데 올림픽 끝나고는 인터뷰나 방송출연으로 정신이 없어요. 올림픽을 통해서 사람들이 관심을 주면 더 큰 책임감을 느껴요.

Q. 올림픽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A. 식당에서 어렸을 때 좋아했던 농구선수를 봤는데 같은 자리에서 뛰고 있다는 것에 감동이었어요.

Q. 한국 선수 중에서 친해진 다른 종목 선수들이 있나요?

A. 제가 미국 버클리대학교를 다닐 때는 31개 종목이 있었는데 다른 종목 선수들끼리 되게 친했어요. 근데 한국 선수촌에서는 자기 종목선수들이랑 밥 먹고 돌아다녀요. 저희 종목 선수들은 매일 보니까 다른 종목 선수들이랑도 친해지고 싶어요.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운동방식이나 일상 같은 것들이요. 이번 올림픽에서 개막식을 여자배구팀이랑 같이 했는데 여자배구 선수들이랑 얘기를 나눴는데 앞으로 더 친해지고 싶어요.

 

[사진= 안드레 진 선수 제공]


Q. 회사에서는 주로 어떤 일을 하나요?

A. 스포츠단에 있으면서 저희 회장님이 럭비협회 회장님이신데 그래서 저변 확대를 위해서 학교에 가서 강의도 하고 체육시간에 럭비를 소개해줄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좋아요.

Q. 회사를 다니고 운동까지 하는데 버겁지는 않으세요?

A. 운동선수를 할 때는 운동만 집중하고 싶죠. 웨이트도 많이해야 돼서 힘들고 3월에 무릎수술도 했거든요. 근데 저보다 더 힘들게 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회사가 운동을 위해서 배려를 많이 해주기도 하고요. 제가 지금 힘들어도 후배들이 실업시스템보다 프로 쪽으로 갈 수 있도록 럭비가 변화됐으면 좋겠어요.

 

[사진= 안드레 진 선수 제공/ 회사원 안드레 진]


Q. 평소 훈련이 없을 때는 어떻게 지내세요?

A. 소소한 행복을 많이 느끼면서 지내요. 가족들과 많이 보내고 친한 친구들을 만나거나 스포츠를 봐요.

Q. 점수를 얻었을 때 또는 상대에게 지고 있을 때 평정심을 유지하는 방법이 있나요?

A. 다음을 생각해요. 실수나 득점을 했을 때는 계속 생각하면 경기에 집중이 안 되기 때문에 빨리 잊어버려요.

Q. 몸보신을 하기 위해 먹는 것들이 있나요?

A. 다른 선수들은 보약을 먹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저랑 잘 안 맞고 대학교 때는 비싸서 잘 안 먹었거든요. 그래서 그게 적응이 됐는지 잘 안 챙겨먹어요.

Q. 선수 생활 중 가장 중요했던 1초의 순간은 언제였나요?

A. 2019년 올림픽 예선전에서 7대0으로 지고 있었는데 보너스킥을 해야 되는 이성배 선수가 교체를 당했었거든요. 근데 1분 밖에 안은 상황에서 득점을 했어요. 근데 이걸 넣지 않았더라면 장난식으로 ‘한국 여권 반납하고 도망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1초로 봤을 때 그게 가장 중요하고 의미가 있던 1초의 순간인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 말씀해주세요.

A. 정해진 길은 없다고 생각해요. 방법도 없다고 생각해요. 남이 저렇게 했으니까 나도 저렇게 해야 된다는 건 절대로 없고요. 저는 첫 귀화선수였고 한극에서 럭비를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지금이라도 한국 럭비국가대표팀 선수가 됐고 한국 럭비 덕분에 나라가 생겼는데 이게 다 처음 경험한 것들이에요. 근데 모든 걸 다 처음할 때 순간순간에 자신감을 갖고 본인을 믿으면 어느 길을 가던 맞는 길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럭비에서 판단력이 중요한데 그 판단이 틀릴 수 있어요. 더 좋은 선택지가 있어도 지금 한 판단에서 최선을 다하면 안 좋은 판단이 없다고 저희 지도자가 항상 얘기해요. 실수해도 돼요. 실수하더라도 최선을 다하면 그 실수를 좋은 결과로 만들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정해진 길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길을 만들고 그 대신 최선을 다하면 원래는 남의 길을 따라가는데 이제는 후배들이 저를 보고 제 길을 따라올 거라고 생각해요.

 
 

[사진= 김호이 기자/ 안드레 진 선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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