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선 칼럼] ‘검언유착’ 판결과 공영방송의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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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 시사평론가
입력 2021-07-22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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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 시시평론가

이른바 '검언유착' 사건으로 불렸던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의 강요미수 혐의에 대해 1심 재판부가 무죄 판결을 내렸다. MBC 보도와 민주언론시민연합의 고발로 시작된 수사는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이 "증거가 차고 넘친다"며 일찌감치 '검언유착'이라고 단정하여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추 전 장관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관여하지 말라는 수사지휘권을 발동하여 자신과 가까운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이끄는 수사팀에 전권을 부여하기도 했다. 그런 사건이었던 만큼 1심 무죄 판결이 미치는 파장은 클 수밖에 없다.

이 기자와 공모했다는 의혹을 받았던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검사장)은 “추미애, 최강욱, 황희석, MBC, 소위 ‘제보자X’, 한상혁(방송통신위원장), 민언련, 유시민, 일부 KBS 관계자들, 이성윤, 이정현, 신성식 등 일부 검사들에게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하고, 필요한 조치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나섰다.

특히 ‘검언유착’ 사건 수사의 계기가 되었던 MBC 보도의 책임을 둘러싼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자신들의 보도 책임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자 MBC는 지난 17일 <뉴스데스크>를 통해 입장을 밝혔다. 해당 의혹을 보도한 행위가 '권언유착'이라는 비판이 ‘악의적이고 근거 없는 음해들’이며 그런 ‘모략’은 터무니없다는 것이었다. “MBC의 최초 보도는 한 종편 기자의 부적절한 취재 방식을 고발했을 뿐, 지목된 검사장의 실명을 언급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의혹의 실체를 예단하지 않았다”는 것이 MBC의 주장이었다. 그리고 MBC를 가리켜 '친여 매체' '정권 방송'이라고 표현한 보수신문의 보도에 대해 ‘일방적인 비하’라며 반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MBC의 이러한 입장은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납득이 되지 않는다. MBC 채널을 통해 방송된 수많은 보도들, 그리고 MBC 기자들이 여러 매체를 통해 발언한 내용들을 보면, MBC 측이 이 사건을 ‘검언유착’으로 몰아갔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MBC가 이제 와서 뭐라고 주장한들, 그 기록들은 없어지지 않고 겹겹이 쌓여있다. 지난해 MBC뉴스와 라디오 프로그램들은 이 사건을 ’검언유착’으로 몰아가는 발언들을 수없이 쏟아냈고, 그래서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당시 이 상에 응모한 MBC 장인수-신수아 기자가 심사위원회에 제출한 공적설명서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한 종편 기자의 취재 윤리 위반을 고발하기 위해 시작된 취재는 이철 측, 검찰 측, 채널A를 취재해 나가는 과정에서 검언유착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그 실체를 드러내는 데까지 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검언유착은 의혹도 아니요, 이미 ‘드러난 실체’였던 것이다. 상을 받은 신수아 기자는 수상 소감에서 다시 이렇게 말했다. “검언유착이 어느 수준에서 이뤄졌는지 전모를 알 순 없어도 공통의 목표를 위해 서로가 서로에게 협조하며 사건을 만들어가는 모습은 적나라했다."

MBC 보도와 기자들은 이 사건에서 검언유착이 있었음을 그렇게 단정했다. 하지만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검찰수사에서의 무혐의 판단, 이동재 기자에 대한 1심 무죄 판결 결과를 보면 ‘언’의 윤리적 문제는 있었지만, ‘검’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는 나타난 것이 없다. 자신들이 검언유착이라고 예단하지 않았다는 MBC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고, ‘이번 의혹의 실체가, 여전히 베일에 싸인 이유’를 한동훈의 수사 비협조에 떠넘기는 모습도 무척이나 비겁해 보인다. 조국 수호 집회 때 ‘딱 보니까 100만’이라던 말이 나왔던 MBC에서, 이번에는 ‘딱 보니까 검언유착’이라는 확신을 갖고 밀어붙였던 것이 이 사건 보도였던 셈이다.

그렇다면 MBC는 검언유착 보도에 대해 더 이상 강변을 늘어놓을 것이 아니라 국민과 시청자들에게 사과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쯤 되니 MBC를 향해 ‘친여 매체’니 ‘정권 방송’이니 하는 소리가 나오는 것인데, 그것을 ‘일방적인 비하’라고 하는 데 동의할 국민이 얼마나 될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MBC는 종편 기자의 취재 윤리를 말했지만, 국민들은 공영방송의 보도 윤리를 말해야 할 상황이다. 비단 MBC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는 지난 시절, 정권의 방송장악에 따른 많은 대가와 희생을 치러야 했다. 그때 권력의 방송장악에 맞서 싸웠던 사람들이 정권이 바뀐 뒤로 공영방송의 주축들이 되었다. 당연히 과거와 같은 악순환은 마감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논란은 지난 정권 시절과 다를 바 없이 반복되고 있다. KBS의 외부 진행자나 고정 출연자 자리는 대부분 친여 인사들이 차지하고 있다. 김어준의 편파방송으로 논란이 그치지 않는 TBS의 경우는 ‘문재인 캠프 방송’이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친여 인사들 일색이다. 공영방송들이 친여 인물들끼리의 잔치판이 되고 있는 현실은 공영방송의 기본이 무엇이었던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공영방송은 시민들의 수신료, 혹은 세금으로 운영되는 방송이다. 그 시민들 가운데는 진보적인 사람들도 보수적인 사람들도 있고, 여당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면 모든 시민들의 생각을 균형있게 반영하는 방송이 되는 것은 공영방송의 기본적인 책무이다. 수신료와 세금은 똑같이 받아가면서 누구의 목소리는 크게 들리도록 하고, 다른 누구의 목소리는 배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럼에도 지난날 방송장악을 그렇게도 비판했던 사람들이 이제 입장이 바뀌어 같은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 방송계에서의 내로남불이다. 그러니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방송이 정권의 도구가 되었다는 논란의 악순환은 끝없이 되풀이 된다. ‘검언유착’ 사건에 대한 사법적 판단들, 그것을 받아들이는 MBC의 성찰 없는 태도를 지켜보면서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를 다시 한번 묻게 된다.

유창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 박사 ▷한림대 외래교수 ▷경희사이버대 외래교수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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