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준의 지피지기] 만68세 넘어선 시진핑, 권력 승계 징크스 넘을 수 있을까

박승준 논설고문, 호서대 벤처대학원 초빙교수입력 : 2021-07-19 05:00

시진핑 중국공산당 100주년 연설 화면 앞 셀카 찍는 남성 (베이징 AP=연합뉴스)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일인 1일 시진핑 국가주석이 톈안먼 광장에서 연설하는 모습이 나오는 베이징 시내 대형 비디오 스크린을 배경으로 한 남성이 셀카를 찍고 있다.






1953년생인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은 지난 6월 15일로 만 68세를 넘어섰다. 중국공산당 관영 매체들의 관행 가운데 하나는 어느 정치 지도자가 생일을 맞았다든가, 어디에서 생일 만찬 자리가 있었다든가 하는 동정을 일절 보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진핑의 생일이 6월 15일이라는 사실은 2018년 6월 16일 북한 노동신문이 1면에 “김정은 동지께서 어제 시 주석에게 생일축하 서한과 꽃바구니를 보냈다”고 커다랗게 보도함으로써 확인됐다.

중국공산당 정치 지도자들에게 68세 생일은 특별한 의미를 되새겨야 하는 날이다.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1976년 9월 병으로 사망할 때까지 마오쩌둥(毛澤東)은 27년간 당과 정부의 권력을 한 손에 쥐고 좌지우지했다. 마오가 죽고 권력을 잡은 뒤 개혁개방과 빠른 경제발전을 통한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추진한 덩샤오핑(鄧小平)은 정치 지도자들의 평균연령을 낮추는 ‘연경화(年輕化)’를 추진했다. 베이징(北京) 시내 중심부의 천안문 광장에서 100만 대학생과 시민들이 반(反)부패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발생한 직후인 1989년 6월에 개최된 중국공산당 제13기 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4중전회)에서 당 총서기로 발탁된 장쩌민은 ‘칠상팔하(七上八下)’라는 당 내부 합의를 이끌어냈다. “67세까지는 특정 직위에 취임할 수 있지만, 만 68세 이후에는 어떤 직위에도 취임할 수 없다”는 합의였다.

이 합의는 중국공산당 당규약에 반영됐다. 현행 당규약 제36조는 “당의 각급 영도 간부들은 민주선거로 선출됐든, 영도기관에 의해 임명됐든 그 직무는 모두 종신적이어서는 안되며, 그 직무에서 변동되거나 해제되어야 한다. 연령과 건강 상황이 공작을 계속하기에 부적합한 간부는 국가(행정부)의 규정에 따라 퇴임하거나 이임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난 2018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삭제된 조항은 국가원수의 직위인 국가주석의 3연임 금지 규정이었다. 중국공산당 당 총서기 직의 3연임을 가능하게 개정한 것은 아니었다. 지난 2012년 11월에 개최된 제18차 당 대회에서 당 총서기에 선출된 시진핑은 2017년 두 번째로 당 총서기에 재선출되어 5년 임기를 지냈기 때문에 당규약 36조를 적절하게 개정해야만 내년 10월의 20차 당 대회에서 세 번째로 당 총서기에 선출될 수 있을 전망이다.

지난 2017년 10월에 개최된 제19차 당 대회에서 시진핑이 당 총서기로 선출될 당시 함께 선출된 7인의 정치국 상무위원은 시 총서기를 포함, 리커창(李克强·총리·1955년 7월생), 리잔수(栗戰書·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1950년 8월생), 왕양(汪洋·전국정치협상회의 주석·1955년 3월생), 왕후닝(王滬寧·중앙서기처 서기·1955년 10월생), 자오러지(趙樂際·중앙기율검사위 서기·1957년 3월생), 한정(韓正·부총리·1954년 4월생)이다. 칠상팔하의 내부 합의에 따르면, 이들 정치국 상무위원들 가운데 내년 10월의 제20차 당 대회에서 임용 가능한 인물들은 리커창, 왕양, 자오러지, 한정 등 4명이다. 그러나 이들 4명은 각각 67세, 67세, 65세, 66세로, 2027년의 제21차 당 대회 때 모두 70세를 넘기게 되므로, 내년 당 대회에서 5년의 두 번 임기를 수행할 당 총서기에 선출될 수 없는 연령의 인물들이다.

현재 25명의 정치국 위원들 가운데 내년 당 대회에서 10년 임기의 당 총서기나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선출될 수 있는 연령조건을 갖춘 인물은 후춘화(胡春華·부총리·1963년 4월생), 천민얼(陳民爾·충칭시 당서기·1960년 9월생), 딩쉐샹(丁薛祥·중앙서기처 서기 겸 중앙판공청 주임·1962년 9월생) 등 5명이다. 21차 당대회가 열리는 2027년에 67세 이하라는 조건을 갖추려면 현재 1960년 이후 출생자라야 하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후춘화는 시진핑이 2012년 제18차 당 대회 당시 후진타오(胡錦濤) 전임 당 총서기로부터 당 총서기 자리를 물려받을 때 시진핑 자신의 후임자로 선정하라는 이른바 ‘격대지정(隔代指定)’의 약속을 한 인물이다. 시진핑은 그러나 지난 2017년 제19차 당 대회 때 후춘화를 정치국 상무위원의 한 명으로 지명하지 않음으로써 시진핑 자신의 후계자로 지정을 유보한 상황이다.

인구 3천만이 넘는 중국 최대의 직할시 충칭(重慶)시 당 서기 천민얼은 시진핑이 2002년에서 2007년까지 중국 동부의 저장(浙江)성 당서기 겸 성장으로 일할 때 저장성 당위원회 상무위원과 선전부장으로 시진핑의 출세를 도운 인물이며 시진핑의 신임이 가장 두터운 인물로 알려졌다. 딩쉐샹은 상하이 사람으로, 시진핑이 2007년 상하이시 당서기로 일하던 시절에 시진핑의 눈에 들어 시진핑이 당 총서기와 국가주석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외국 순방을 하거나, 중국을 방문한 외국 정상을 만날 때 반드시 수행하도록 하는 인물이다.

또 한 명 당 총서기나 총리 후보가 될 수 있는 연령조건을 갖춘 쑨정차이(孫政材·1963년 9월생)라는 인물이 있었으나, 시진핑의 반(反)부패 드라이브에 걸려 정치국원 겸 충칭시 당서기 위치에서 2018년 5월 무기징역과 종신 정치권리 박탈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다.

시진핑은 역대 중국 정치 지도자 가운데 인맥이 가장 풍부한 인물로, 아버지 시중쉰(習仲勳·1913~2002)은 13세 때 공산주의 청년단에 가입한 중국공산당의 원로 혁명가다. 시중쉰은 마오쩌둥(毛澤東)과 덩샤오핑(鄧小平) 모두로부터 신임을 받았고,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시대에 중국 경제의 중심 광둥(廣東)성 당서기와 성장을 지내면서 중국의 경제 발전을 선도한 인물이었다. 시진핑은 그런 아버지의 인맥을 이어받고, 시진핑 자신이 다시 29세 때부터 허베이(河北)성 지방 현 당서기로 시작해서 2012년 중앙 당 총서기 선출되기 이전까지 개혁개방시대 중국 경제발전을 선도한 동부 연해(沿海) 지역 푸젠(福建), 저장(浙江), 상하이(上海)시의 당서기와 성장을 지내면서 지역마다 쌓아놓은 광범위한 인맥을 보유하고 있다.

시진핑이 덩샤오핑과 장쩌민이 만들어놓은 칠상팔하의 당 내부 합의를 무시하고 내년 10월 제20차 당 대회에서 세 번째로 당 총서기에 선출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현재까지는 아무런 공식 발표나 언급이 없다. 2018년 3월 헌법 개정을 통해 국가주석의 3연임 금지조항을 삭제한 뒤 시진핑은 중국 안팎에서 장기 집권을 기도하고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받고 있다. 시진핑은 과연 올가을의 중국공산당 제19기 중앙위원회 7차 전체회의(7중전회)를 통해 장기 집권의 조건을 확정할 수 있을까. 아니면 내년 가을의 21차 당 대회를 앞두고 중국공산당이 역사적으로 징크스처럼 반복해오던 후계자 계승을 둘러싼 위기의 드라마를 또다시 연출하게 될까.

마오는 1958년 4월 국가주석 자리를 류샤오치(劉少奇)에게 넘겨주어 1968년 10월까지 9년간 류샤오치가 국가주석 자리를 유지했다. 그러나 류샤오치는 마오가 일으킨 ‘문화대혁명’이라는 정치 대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실각한 후 지방도시로 유배된 뒤 폐렴으로 사망했다. 1966년부터 1971년까지 5년간 국가부주석에 앉아있던 린뱌오(林彪) 역시 문화혁명의 광풍(狂風)속에서 쿠데타를 시도했다는 혐의를 쓰고, 아들과 함께 비행기로 국외 탈출을 시도하다가 몽골 고비사막에 추락해서 사망했다. 마오쩌둥은 1976년 9월 사망 직전에 화궈펑(華國峰·1921~2008)이라는 평범한 인물에게 권력을 넘겨주었으나 마오가 죽은 다음 당내 최고 실력자 덩샤오핑에게 밀려나서 무력화됐다. 덩샤오핑 역시 자신의 오른팔인 당내 이론가 후야오방(胡耀邦)과 자오쯔양(趙紫陽)을 차례로 당 총서기 앉혔으나, 1989년의 천안문 광장 시위사태를 전후해서 후야오방은 1969년 4월 심장병으로 사망하고, 자오쯔양은 천안문 광장 시위대학생들에게 눈물을 보인 일로 원로들의 비난을 사 실각하는 비극을 연출했다.

덩샤오핑은 그런 비극이 다시 연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칠상팔하라는 당 내부 합의를 준비했고, 이 칠상팔하를 지킨 장쩌민과 후진타오 두 총서기는 10년 임기를 마치고 무사히 퇴임하는 행운을 누렸다. 만약 시진핑이 칠상팔하라는 중국공산당 내부합의를 무시하고 내년 10월 3연임의 당 총서기나 국가주석 자리에 앉아 장기집권을 추구한다면 권력 승계에는 위기가 뒤따른다는 중국공산당의 징크스가 되살아날 가능성이 있다. 지난 7월 1일 중국공산당 100주년 기념행사가 열린 천안문 광장에는 당연히 참석해서 축하해주어야 할 원로들 가운데 중요한 얼굴들이 보이지 않았다. 전임자 후진타오는 참석자 명단에는 있었으나, 현장 TV중계 화면에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시진핑을 후계자로 격대지정 해준 전 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 장쩌민(1926- )과 총리 주룽지(朱鎔基·1928- )는 90이 넘은 고령이긴 하나 생존해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참석 여부에 대한 아무런 설명이 없이 기념대회는 종결됐다. 중국공산당 100주년 기념행사에 가장 중요한 두 원로의 불참은 시진핑의 장기집권을 놓고 당내에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게 아닐까하는 관측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박승준 논설고문, 호서대 벤처대학원 초빙교수  gjgu7749@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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