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SW인재 대란] ② "1~2년 키우면 다 빼앗긴다" 스타트업·중견기업 개발자 이탈 속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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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섭 기자
입력 2021-06-2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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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개발자 35%를 네이버·카카오에 내준 중소업체도

  • 연봉 1.3~1.5배 인상에 수천만원 사이닝 보너스 지급

  • 중견사, 필리핀, 베트남에 지사 설립, 현지 개발자 채용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신입으로 뽑은 개발자들을 1~2년간 교육해 이제 손발을 맞춰볼 만하니 네이버, 카카오로 다 떠났습니다.”

서울 강남구 소재 중소 IT 기업 A사 대표의 하소연이다. 지난 1~2년간 개발자 중 35%가 네이버와 카카오로 이직했다. 나머지 개발자들도 최소 한 번 이상 이직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A사 대표는 “현 연봉에서 1.3~1.5배를 올려주고 이직 시 수천만원에 달하는 사이닝 보너스(회사에 새로 합류하면 주는 인센티브)를 주는 대기업을 중소기업이 당해낼 재간이 없다.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에 묶여있는 개발자들의 경우 5000만원씩 얹어주고 데려가는 경우도 있다”며 “중소기업보다 사회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대기업으로 이직한다는 데 말릴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개발자들이 한 달에 1~2회 정도 단체로 휴가를 낼 때가 있다”며 “그날은 대기업 면접이 있는 날”이라고 덧붙였다.

개발자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대기업들이 자금력을 앞세워 개발자들을 소위 ‘싹쓸이’하고 있다. 현재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포항공과대 등 상위권 대학 출신 개발자는 초봉이 8000만~90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에서도 애플 iOS와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보안, 블록체인 등 희소성이 큰 5대 분야의 개발자는 연봉이 1억원을 넘어선다. 이들을 데려가는 건 모두 대기업이다.

그 외 수도권 또는 지방 소재 대학을 졸업한 개발자들의 초봉은 4000만원에서 5000만원 수준이다. 중소업체들이 이들을 채용한다. 그러나 최근 개발자들이 부족해지다보니 대기업들이 이 인력까지 모두 빨아들이고 있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졸업생이라면 출신 대학에 상관없이 모두 채용한다. 당장 필요한 인력이 아니어도 미래를 대비해 개발자를 뽑는 것이다.

중소업체는 ‘울며 겨자 먹기’로 비전공자를 채용해 1년간 가르치며 실무에 투입한다. 최근 중소기업, 스타트업에 입사하는 신입 개발자 10명 중 4명이 비전공자다. 개발자들의 몸값이 치솟자 개발직군으로 전향한 이들은 민간 교육기관에서 적게는 6개월, 많게는 1년간 코딩 교육을 받고 전직한다. 그러나 실무에 바로 투입하기에는 실력 미달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중소기업이 이들을 1~2년 가르쳐 업무에 투입하면 대기업이 가로채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네이버· 카카오 취업 사관학교’냐"라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IT 스타트업 B사 대표는 “스타트업에서 1~2년간 타이트하게 근무한 개발자들은 대기업이 가장 선호하는 인력”이라며 “대기업 입장에선 데려가서 바로 투입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췄고, 이직하는 개발자 입장에선 연봉이 높아지고 회사의 네임밸류도 높일 수 있으니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게임업계 스타트업도 개발자가 귀하긴 마찬가지다. 넥슨과 넷마블, 엔씨소프트, 크래프톤 등 주요 게임사들이 올해 초부터 연봉 인상 경쟁을 벌이면서 개발자 구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자금 여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중소 게임사들은 전문계 학교에 손을 내밀고 있다. 서울 강남구 소재 한 게임 스타트업은 개발 인력을 확보하기 너무 어려워 최근 ‘경기게임마이스터고’에 산학협력을 제안했다. 경기도 안양시에 있는 경기게임마이스터고는 게임 분야 최초의 산업수요 맞춤형 고등학교로, 지난해 4월 개교했다.

정석희 경기게임마이스터고 교장은 “최근 들어 중소 게임사들로부터 산학협력 요청이 제법 늘었다”며 “최근 게임사들이 연봉 인상 경쟁을 벌여 중소기업 입장에선 인건비 부담이 큰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소·중견업체들은 대기업이 인력을 빼앗아가는 것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여력이 있는 만큼, 부족한 인력을 직접 키워 쓰는 게 그들의 역할이라는 지적이다.

중소 게임개발사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 입장에선 자금력이 있기 때문에 필요한 인력을 직접 교육할 수 있다”며 “대기업이 배출한 인재들이 업계 전반으로 퍼져나가는 게 산업 전체적으로 더 올바른 방향”이라고 말했다.

중견기업은 필리핀, 베트남에 지사를 세워 현지 개발자를 채용하고 있다. 현지 개발자들의 몸값은 한국의 5분의 1 수준이다. 2017년 이전만 해도 10분의 1 수준이었으나, 한국 기업들이 현지에서 개발자 영입 경쟁을 벌이면서 최근 인건비가 크게 올랐다.

중소·중견업체들은 개발자 수급에 대한 해결책이 없어 답답하다고 입을 모은다. 업계 전반적으로 개발자 100명이 필요한 상황에서 매년 배출되는 인력은 90명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미흡한 대응을 지적하는 이유다.

A사 대표는 “10년 전부터 개발자가 부족하다고 수많은 기업이 얘기해왔는데,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이 지경이 됐다”며 “업종에 따라 유망한 분야의 경우 대학 관련 학과의 정원을 조정했어야 하는데, 실패했다. 한국이 IT 강국이라는 데 사람이 없어 일을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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