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조·금융·유통부터 ICT까지 전산업DX 추진

  • 관성 넘는 신사업책임자·기술전략가로 발탁

  • 클라우드·빅데이터·AI 기술로 DX 추진 맡아

  • 내부 기술 전문가 승진 힘든 구조·문화 작용

  • "DX 실행, 구성원들의 힘 필요성 인식해야"

(윗줄 왼쪽부터) 송창현 현대차·기아 사장, 박기은 KB국민은행 전무, 김민수 신한은행 센터장, 윤영선 롯데정보통신 상무, 승현준 삼성리서치 사장, 장우승 삼성전자 전무 (아랫줄 왼쪽부터) 이홍락 LG AI연구원 CSAI, 신수정 KT 부사장, 김윤 SKT CTO, 이호수 SKT 아폴로TF장, 서정식 현대오토에버 대표, 김지윤 현대오토에버 상무. [사진=각 사 제공]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역량을 인정받은 인공지능(AI)·소프트웨어(SW) 전문가들이 대기업 임원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다. 제조·금융 등 전통산업에 뿌리를 둔 기업의 신사업 기술전략 추진을 위해 새로 영입되거나, 통신·IT서비스 기업에 수년 전 영입된 후 두각을 나타내며 주요 업무에 전진 배치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임원급으로 영입된 AI·SW 전문가들의 공통점은 지난해 코로나19 확산 사태 이후 중요성이 재확인된 클라우드·빅데이터·AI 기술 응용·사업화 경험을 갖고 있는 인재들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이들은 새로운 조직에서 내부의 디지털전환(DX)을 가속화하기 위한 전략을 세우거나 이를 실행하는 신사업을 이끄는 데 주력하고 있다.

대기업이 디지털·IT기업에서 이미 성과를 보였던 외부 '선수'를 영입하는 배경에는 기존 전통산업과 다른 접근이 필요한 정보통신기술(ICT)융합 기술개발·사업화, 이를 위한 사업·인력구조의 변화를 이끌어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익명을 요구한 대기업 AI플랫폼 공급 기업 A사 대표는 "큰 조직에서 신사업은 여러 부서에서 사람을 차출하거나 새 조직장을 선임하는 등 과정에서 기존 조직의 인력공백, 인사형평성 문제 등으로 저항과 충돌을 빚을 수 있다"면서 "총수나 오너 일가의 신임을 받는 외부 영입 인재에 소위 '전권'을 주고 일을 맡길 때 그런 부담을 덜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대다수 대기업들은 IT서비스 전담 자회사 또는 주요 사업부에 기술담당 인력을 운용해 왔다. 이론적으로는 이들이 내부 승진을 통해 임원이 되고 기술전략을 세우고, 'DX 촉매' 역할을 맡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조직 내부에서 성장한 임원은 구체적인 DX 실행 과정에 기존 사업조직 내부의 관습이나 통념을 깨기 어렵다는 한계가 작용한다.

A사 대표는 "DX를 추진할 수 있으려면 디지털 분야에 대한 이해도와 전문성뿐 아니라 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내부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실행할 권한도 필요하다"며 "국내에서 전통산업으로 분류되는 기업의 경우 내부에서 성장한 기술담당자들이 그런 권한을 가질 수 있을 만큼 높은 자리에 있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대기업의 하향식 의사결정 구조뿐 아니라 일명 '패밀리 디스카운트'가 작용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DX를 추진할 때 내부 전문가의 메시지에는 힘이 잘 실리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주요 그룹의 DX 관련 기술자문·컨설팅 경험이 있는 B사 대표는 "대기업이 DX를 추진하는 과정에선 트렌디한 '키워드'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은데, 경험·감각은 있지만 표현이 약한 내부인은 저평가되고 그걸 선명하게 제시하는 외부인의 말이 (경영진에) 더 잘 통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 외부 인재를 영입해 혁신을 도모한 시도로 최고경영자(CEO)로 전문경영인을 선임하던 흐름이 있는데, 경영계에선 시행착오가 많았다는 반성이 나오고 있다"며 "IT 전문가를 영입해 DX를 추진하는 흐름도 어떤 신기술, 방법론, 개념을 높이 평가하든 결국 결과를 만들어내는 건 내부 사람들의 힘으로 해내야 할 과제라는 걸 인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제조·금융·유통…디지털 전문가 맞이하는 '전통산업'
전통산업에 속하는 사업을 통해 성장해 온 대기업들이 디지털 기술개발과 사업화 경험을 보유한 임원급 전문가를 영입해 중용하는 추세다.

현대자동차·기아는 올해 4월 '서비스형 운송(TaaS·Transport as a Service) 본부'를 신설하고 네이버 최고기술책임자(CTO)였던 송창현 사장을 본부장으로 임명했다. 글로벌 최고 수준 SW전문가의 경험과 노하우를 기반으로 전통적인 자동차산업의 틀에서 벗어나 혁신적인 모빌리티 사업을 추진해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송 사장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등을 거쳐 네이버 CTO, 네이버랩스 대표로 재직하며 네이버의 AI를 포함한 미래기술 연구에 기여한 인물이다. 2년 전 퇴사 후 창업한 모빌리티 스타트업 '포티투닷(42dot)' 대표 겸 현대차·기아 TaaS본부장으로서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 주력한다.

KB국민은행은 또다른 네이버 출신 기술 전문가인 박기은 전 네이버클라우드 CTO를 KB국민은행의 테크그룹 소속 테크기술본부장(전무)으로 영입했다. 기술분야에 높은 이해도와 실무능력을 겸비한 외부 전문가 영입을 통해 SW·클라우드 역량을 높이고 '넘버원 금융 플랫폼 기업'이 되는 데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박 본부장은 네이버의 서비스플랫폼개발센터 팀장, 네이버클라우드 IT서비스사업본부 수석아키텍트를 거쳐 올해 초까지 네이버클라우드의 CTO로 일했다. 클라우드·AI 기술 공급기업의 경험을 살려 금융혁신을 지원할 전망이다.

신한은행은 AI사업을 총괄하는 김민수 통합AI센터장을 삼성 계열 IT서비스 기업 삼성SDS에서 영입했다. 당시 AI 분야에 대한 꾸준한 투자와 연구개발을 위해 전문성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혁신과 기술 내재화를 이끌어나갈 부서장으로 외부 인재를 중용했다고 밝혔다. 김민수 센터장은 삼성SDS에서 AI선행연구랩장으로서 자연어이해(NLU)와 이미지인식 기술에 기반한 기업용 AI와 데이터분석 기술을 개발했다. 제조·의료·물류·금융 업종을 위한 딥러닝 AI 기술을 적용해 사업화한 경험도 갖췄다.

롯데그룹은 작년 강희태 유통사업부문(BU·Business Unit)장 직속으로 '데이터거버넌스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켜 윤영선 롯데정보통신 상무를 TF장·최고데이터책임자(CDO)로 앉혔다. 윤영선 TF장은 2010년 초부터 SKT·SK플래닛의 빅데이터 분석 업무 현장에서 일했고 KT 빅데이터분석팀장직을 거쳐 2018년 롯데정보통신 AI비즈센터장으로 영입됐다. 2019년 롯데정보통신 빅데이터사업부문장을 맡으면서 빅데이터 기반의 유통사업 혁신을 지원했다. TF에서는 유통계열사들의 분석가·AI전문가들과 함께 온·오프라인 통합서비스 강화에 집중할 듯하다.
 
세계 AI석학·데이터과학자, 삼성·LG 행…ICT업계선 기존 인사 승진
삼성전자와 LG그룹 등에는 세계적인 AI석학과 데이터과학자들이 영입됐고, 이동통신사와 시스템통합(SI) 기업 등 ICT업계에선 과거 발탁된 외부 인재들이 '특명'을 띠고 DX 전략 실현에 투입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세계적 AI 석학 승현준(세바스찬 승) 미국 프리스턴대 교수를 지난해 삼성리서치 소장(사장)으로 발령하며, 그에게 글로벌 연구개발·AI센터의 융복합 기술연구 관련 전권을 줬다. 2019년 장우승 전 아마존 수석 선임과학자를 무선사업부 빅데이터개발총괄 전무로 영입했고 올해 초 그를 CEO 직속 빅데이터센터장으로 선임하기도 했다. 이들은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외에도 반도체사업부와 가전사업부 등 전사적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AI관련 기초·응용 기술 연구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LG그룹은 지난해 말 출범한 LG AI연구원 수장으로 국제전기전자공학회 선정 '세계 10대 AI연구자'에 꼽힌 이홍락 미국 미시간대 교수·전 구글브레인 연구과학자를 최고AI과학자(CSAI)로 영입했다. 이 교수는 LG의 여러 계열사에서 더 많은 사업 성과를 내고 원천기술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AI연구원의 수장으로 LG의 전사적 AI연구를 총괄해 AI 기반 신사업 영역을 창출할 계획이다.

KT는 지난해 하반기 국내 기업간거래(B2B) 시장의 DX 수요를 공략하기 위해 기존 '기업사업부문'을 '엔터프라이즈부문'으로 확대 개편하고, KT의 최고정보책임자(CIO) 겸 CDO였던 신수정 부사장을 엔터프라이즈부문장에 임명했다. 신 부사장은 앞서 통합보안솔루션기업 넷시큐어테크놀로지의 연구소장, SK인포섹의 대표 등을 지낸 IT·정보보안 전문가다. 그는 KT에 전무급으로 합류해 정보보안단장·IT기획실장 등을 거쳐 KT '디지털플랫폼컴퍼니(Digico)' 전략의 한 축을 이끌고 있다.

SKT는 지난 2018년 AI리서치센터를 신설하고 애플의 김윤 박사를 센터장에 선임했다. 김윤 센터장은 현재 SKT의 CTO로 5세대(5G) 이동통신 표준과 상용화, 클라우드 기술과의 융합, AI 중심 기업으로의 혁신과 변화 방향을 이끌고 있다. 김 CTO는 2000년대 초 음성합성기술업체 '네오스피치' 창업자 겸 CTO였고, 이후 음성인식 기술 전문기업 '노바리스'의 CEO로 합류한 뒤 회사가 애플에 인수되면서 '시리(Siri)' 개발에도 참여한 인물이다.

SKT가 올해 'AI컴퍼니'로 변화를 선언하며 지난 3월 구성한 '아폴로TF'의 리더는 2014년 SK그룹의 SK수펙스추구협의회 ICT기술성장특별위원회 최고기술위원으로 영입됐던 이호수 박사다. 이 박사는 현재 아폴로TF장으로서 SKT 내 각 관련조직의 참여자들과 함께 SKT의 AI컴퍼니 전환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다. 그는 자신을 영입한 박정호 SKT 사장이 SK㈜ C&C 대표를 맡을 당시 ICT R&D센터에서 회사의 클라우드·빅데이터·AI 연구개발을 이끌었다. 과거 미국 뉴욕 IBM 본사의 왓슨연구소에서 일했고 삼성전자 SW센터장과 고문 등을 맡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의 현대엠엔소프트·현대오트론과 합병해 새로 출범한 '현대오토에버' 통합법인에도 과거 그룹에서 영입된 기술 전략가들이 배치됐다. 현대차그룹의 ICT사업본부장이었던 서정식 부사장과 ICT기술사업부장이었던 김지윤 상무다. 서 부사장은 그룹의 CIO로 주요 계열사의 생산성을 끌어올리고 내부 DX를 주도한 역량을 인정받았다. 그룹의 '미래차 전략'에서 한 축인 모빌리티 SW 전문기업을 지향하는 현대오토에버의 대표로 승진 발령됐다. 김 상무는 서 부사장을 측면 지원하기 위해 현대오토에버 기술총괄사업부에 임명된 것으로 보인다. 두 임원 모두 현대차그룹에 영입되기 전 KT에서 클라우드 기술·사업 분야에서 낸 성과를 인정받은 전문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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