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돋보기] 수사기관보다 유튜버 믿어… 음모론에 빠진 '방구석 코난들'

홍승완 기자입력 : 2021-05-20 16:22
국과수 부검 결과·목격자 증언에도 억측 난립… 이들 지칭하는 신조어 '방구석 코난'까지 등장 여자 문제에 친구 A가 범인? 음모론에 부채질하는 무속인 유튜버까지 등장 의혹 제기 배경에는 뿌리 깊은 경찰 불신 있어... 신뢰도 조사서 국민 68% "신뢰 안 해"

16일 오후 서울 반포한강공원 수상택시 승강장 인근에서 열린 '고 손정민군을 위한 평화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손정민씨를 추모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서울 한강공원에서 실종됐다가 숨진 채 발견된 대학생 손정민씨(22) 사망 사건과 관련한 정황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와 목격자 제보를 통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믿지 못하고 여전히 각종 음모론과 억측이 난립하고 있다.

심지어 경찰이 손씨 실종 시간대에 한강공원을 출입한 차량 154대를 일일이 분석하는 등 수사력을 총동원해 진실을 파헤치고 있음에도, 반포한강공원과 서초경찰서 앞에는 약 400명이 모여 '신속·공정·정확 수사 촉구'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친구) A씨를 수사하라", "죽음의 진상을 밝혀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경찰 수사가 미진하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선 경찰의 수사보다 일부 언론과 유튜버가 제기하는 음모론을 맹신하는 이들을 두고 '방구석 코난'이라고 비판한다. 방구석 코난이란 밖에 나가지 않는다는 뜻의 '방구석'과 일본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의 합성어로,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을 뜻한다.
 

[그래픽=우한재 기자]
 

20일 경찰 등에 따르면 손씨에 대한 추모가 각종 음모론과 무분별한 신상털기로 변질되면서 수사에 혼선을 주거나 수사력이 분산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예를 들어, 손씨 부검 결과 타살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일부 네티즌은 손씨와 함께 술을 마신 친구 A씨를 살인범으로 지목하며 자수를 촉구하고 있다. 또 영상이 흐릿해 자세히 보이지 않는 폐쇄회로(CCTV) 영상을 근거로 신원미상의 남성들이 손씨를 물에 빠트렸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는 A씨에 대한 신상털기도 도를 넘고 있다. 일부 커뮤니티의 검색창에 손씨의 이름을 치면 A씨 신상정보가 연관검색어로 나올 정도다. 이는 정보통신망보호법 위반으로, 명백한 불법행위다.

[그래픽=우한재 기자]
 

또한 A씨 가족들마저 마녀사냥 표적이 되고 있다. A씨 가족 중 사건 수사에 영향을 미칠 만한 유력 인사가 있다는 유언비어가 대표적인 사례다.
 
실제로 A씨 외삼촌이 최종혁 서울경찰청 수사과장(전 서울 서초경찰서장)이라는 루머가 돌자 최 과장은 직접 사실무근이라고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또 A씨 아버지가 전 강남경찰서장이라거나 강남세브란스병원 교수라는 루머도 퍼졌지만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이후 A씨 아버지가 근무하는 병원이라며 서울의 한 개인병원 이름이 공개되자, 이 병원 포털사이트 페이지에는 별점을 낮게 주는 '별점 테러'가 쏟아졌다. 이어 "살인범 가족", "의사 자격이 없다" 등 악성 댓글도 이어졌다.

범죄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은 A씨를 범죄자라고 단정하고 그와 가족의 개인정보를 공유하거나 협박하는 경우가 늘어나자 '무죄 추정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리나라는 형사소송법 제275조의2를 통해 '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는 원칙을 법령으로 명확히 하고 있다.
 

11일 유튜브에 올라온 무속인 영상. 이 무속인은 손씨 사망 배경에 여자 문제가 있고, 손씨와 친구 A씨 간에 다툼이 있었다고 예단했다. [사진=유튜브 방송화면 갈무리]
 

특히 손씨 사망 사건을 두고 근거 없는 주장을 여과 없이 내보내는 유튜버까지 등장해 음모론 확산을 부채질하고 있다. 한 무속인 유튜버는 지난 11일 "제 점괘로는 (손씨와 A씨 간) 다툼이 있었고 손씨 머리 부분에서 발견된 2개 상처는 어떤 물체에 타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며 그 물체가 A씨 휴대폰이라고도 덧붙였다. 또 "여자 문제가 분명히 있고, 찾지 못한 A씨 휴대폰 속 여자 사진 등 결정적인 증거가 나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점괘에 근거해 손씨 사망 사건을 예단하는 이 영상은 20일 오전 11시 기준 28만회 재생됐다.

전문가들은 손씨 사망 경위를 두고 여러 음모론이 끊임없이 확산하는 배경에 경찰에 대한 낮은 신뢰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언론과 인터뷰에서 "공적 기관에 대한 신뢰가 하락해 진실을 얘기해줄 것이라는 인식도 함께 떨어졌다. 경찰의 경우 이용구 법무부 차관 사건과 정인이 사건 등을 거치면서 시민들이 직·간접적으로 학습을 한 것이 반영된 듯 하다"고 밝혔다.

앞서 경찰은 이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장면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을 보고도 이를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덮은 것으로 드러나 머리를 숙인 바 있다. 또 학대당하다 숨진 16개월 입양아 '정인이 사건'과 관련해 신고가 세 차례나 접수됐지만, 이를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사실이 알려져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손정민군 친구의 사라진 휴대폰 수색 나선 경찰. [서울=연합뉴스]
 

실제로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2019년에 실시한 국가사회기관 신뢰도 조사에서 경찰을 신뢰한다는 비율은 2.2%에 불과해 공공기관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국민들이 틈만 나면 욕하는 국회(2.4%)와 검찰(3.5%)보다도 낮은 수치다. 또 한국리서치가 작년 1월에 진행한 '국가기관 업무수행 및 신뢰도 평가'에서도 10명 중 6명 이상(68%)이 경찰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하기도 했다.

경찰이 내놓는 수사 내용마다 불신하는 여론이 높아지자 경찰은 수사를 믿고 지켜봐달라고 재차 당부하고 있다. 경찰은 "수사 초기부터 인터넷 등을 통해 확인되지 않은 루머가 마치 사실인 것처럼 퍼져 수사에 불필요한 혼선이 발생하거나 수사력이 분산되는 등 다소 어려움이 있다. 경찰은 사망 전 행적을 확인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 확인되지 않은 의혹 제기보다는 경찰 수사를 믿고 결과를 지켜봐 주시기를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사진=아주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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