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 이상국 오늘의시] 32조원이 날아간 시 한편, '분서갱(焚書坑)' 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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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논설실장
입력 2021-05-12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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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나라 장갈의 시를 올린 중국 배달앱 창업자 왕싱, 당국 경고에 시총 폭락…대체 무슨 시?

[시와 역사] 장갈(章碣, 당나라 시인)의 분서갱(焚書坑) 읽기
 

[중국 소셜미디어에 왕싱이 올린 당나라 시 '분서갱']


중국판 '배달의민족'이라 불리는 메이퇀뎬핑(美團點評) 창업자인 왕싱(王興)이 시 한편을 중국 소셜미디어에 올렸다가, 한때 시총이 32조원이 날아가는 사태가 발생했다. 초유의 필화사태라고 할까. 진시황의 분서갱유가 21세기판 '분서갱유'로 비화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분서는 언론을 탄압하는 일이고, 갱유는 권력에 불편한 언론을 한 자를 매몰시키는 일이다. 메이퇀뎬핑은 배달생활앱이다. 왕싱은 시진핑이 알리바바를 옥죄는 방식으로 그의 발언을 탄압하고 있는 상황을 의식한 듯, 당나라 장갈의 시를 읊었다. 그런데 대번 당국의 경고를 받았고, 주가가 폭락했다.


竹帛煙消帝業虛(죽백연소제업허)
關河空鎖祖龍居(관하공쇄조룡거)
坑灰未冷東龍亂(갱회미랭동룡란)
劉項元來不讀書(류항원래부독서)

책 태우던 연기 꺼지자 황제의 천하통일 꿈도 사라졌네
함곡관과 황하가 황궁을 헛되이 지킬 뿐
구덩이의 재가 식기도 전에 산동에 반란 일어났다
유방과 항우도 본디 책을 읽지는 않았거늘

                          당나라시인 장갈의 '분서갱'



장갈이 저 시를 읊을 수 있었던 것은, 진시황이 죽고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안전이 보장되는 상황에서 지난 날의 잿더미와 무덤에서 진실을 꺼내어, 언론탄압과 권력독주의 결말을 경고하는 일은 어쩌면 쉽다고도 할 수 있다. 늦은 경고이지만 퍼렇게 살아 지속되는 진실을 보여주는 점은 가치있다. 왜냐하면, 권력과 언론의 갈등과 투쟁은 언제 어디서나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언론이란 이렇게 짓밟고 으깨어도, 시간이 지나면 죽은 자리에서 다시 살아나 바른 말을 하는 역사로 점철해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윈이나 왕싱이 기업과 자신이 치명적인 위험에 처할 상황을 무릅쓰고, 바른 소리를 내뱉은 것은 일견 무모해 보이지만 저 '분서갱유' 속에 들어있는 사회(死灰, 사그라든 재)의 분노를 DNA로 간직하기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메이퇀뎬핑 CEO인 왕싱(출처:TV캡처)]



'분서갱유'는 진이 통일제국을 세운지 9년이 되는 진시황 34년에 승상 이사가 황제에게 올린 글이다. 이사는 의약, 점복, 농업에 관한 실용서적과 법령을 제외한 모든 책과 글들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나라에 관한 기록이 아닌 것들을 비롯해, 시경과 서경, 제자백가의 모든 책을 불태워야 한다고 건의했다. '분서갱유 상소문' 일부를 들여다 보자.

"복희·신농·황제·요임금과 순임금은 모두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과 법도가 서로 달랐습니다. 또 하나라·은나라·주나라 3대 역시 서로를 그대로 따르거나 잇지 않고, 각각 자신들 나름의 방법을 좇아 천하를 다스렸습니다. 이것은 서로의 정책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시대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위대한 제국을 창업하시고 자손만대에 길이 빛날 공로를 이룩하셨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유학을 공부하는 어리석은 학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더군다나 제나라 출신 박사인 순우월(淳于越)이 말한 내용은 모두 옛날 하나라·은나라·주나라 시대의 일인데, 어떻게 본받을 만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유학자(儒學者)들은 개인적으로 학문을 가르치고 배우며, 나라에서 새로운 법령과 제도를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깨우치는 일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나라에서 새로운 법령이 나왔다는 말을 들으면, 제각각 자신들이 개인적으로 익히고 배운 학문의 잣대를 들이대고 비판합니다. 또 그들은 조정에 들어오면 마음속으로는 반감을 품고, 조정 밖에 나가서는 이것은 맞네 저것은 틀렸네 하고 거리에서 마구 떠들어 댑니다. 또 명성을 얻기 위해 황제 앞에서까지 터무니없는 말을 늘어놓고, 남과 견주어 특별하게 비교될만한 기발한 주장을 내세우려고 합니다. 그들은 입만 열면 비난을 늘어놓고 또한 뭇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이끌고자 합니다. 유학을 공부하는 선비들의 이와 같은 행동을 금지시키지 않는다면, 위로는 황제의 권위가 추락하고 아래로는 붕당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마땅히 이들을 금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신은 간청합니다. 역사를 기록하는 관리로 하여금 진(秦)나라에 관한 내용 이외의 모든 기록을 불태워 버리도록 하십시오. 또 박사관(博士官)이 아니면서 시경(詩經) 서경(書經), 그리고 제자백가의 서적을 간직하고 있다면, 모두 지방 관리들에게 바치도록 해, 이것들을 모두 모아 불태워 버리십시오. 또한 시경이나 서경을 들먹이며 현실을 비판하는 자가 있다면, 그 일가족을 모두 몰살시키십시오. 만약 나라의 관리가 이와 같은 사실을 알고도 체포하지 않았다면, 역시 일가족을 몰살시키는 죄로 처벌하십시오. 이러한 황제의 명령이 내려간 다음 30일이 지나도록 서적을 불태우지 않은 자는 묵형에 처하거나, 먼 변방을 수비하는 군인으로 보내 낮에는 장성을 쌓는 노역에 힘쓰도록 하고 밤에는 적의 동정을 살피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의약과 점복, 농업에 관한 서적들은 불태우지 마시고 남겨두시기 바랍니다. 또한 법령을 배우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라의 관리를 스승으로 삼아 배우도록 하십시오."[출처 '2천년을 살아남은 명문'(2006년, 고전연구회)]

 

[진시황 초상화.]



진시황은 이사의 생각을 받아들여 책을 불태우고 유학자들을 구덩이에 파묻어 죽였다. 이 사건은 공자 이래 유가(儒家)에서는 최대의 트라우마가 되었다. 책과 문자의 화신들이었다고 할 수 있는 그들은 애지중지했던 이성적 분별의 토대가 '시대정신'이란 기치 아래 한 순간에 매몰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디지털세상이 지향하는 글로벌한 개방성과 자본주의적 특성을, 현재 중국의 지도자들은 중국특색으로 '공산주의적 체제' 아래서 새롭게 정렬하려는 의욕을 지니고 있는 듯 하다. 시진핑의 '시대정신'은, 이념지형도 속에서 나름으로 유연성을 발휘하고 있는 결과이긴 하지만, 미래형 기업을 창업한 기업가들에게는 기존의 형식에 얽매인 과도한 국가적 간섭과 주도로 보일 수 있다.

마윈이 현실적인 비판을 내놓고, 왕싱이 시로써 권력의 한계를 개탄하는 상황은, 시진핑으로 하여금 '이사의 충고'를 곱씹게 하는 것 같다. 그들을 탄압하고 그들이 번성한 기업적 토대를 허물어뜨림으로써 그 비판과 불만을 잠재우고 시대적 공기를 스스로가 의지한 대로 순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중국은 분서갱유조차 검토할 수 있는 권력시스템을 갖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읽는 장갈의 시는 삼엄하고 뜨겁다. 시를 한번 꼼꼼히 읽어보자.

竹帛煙消帝業虛(죽백연소제업허)
책 태우던 연기 꺼지자 황제의 천하통일 꿈도 사라졌네


죽백(竹帛)은 죽간(竹簡)과 비단을 말한다. 종이가 없던 시대엔 푸른 대나무 위에 편지글을 새겼고 비단 헝겊에 글을 썼다. 문자를 기록한 매체를 죽백이라 불렀다. 여기서는 책과 문서를 가리킨다. 연소(煙消)는 연기가 되어 사라지는 것을 뜻한다. 책들이 연기가 되어 사라진 분서(焚書)는, 이사의 말처럼 위대한 제국이 번성하는 기반이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업(帝業, 황제가 이루고자 했던 천하통일의 꿈)을 허망하게 만들었다. 왜 그럴까. 비판과 언론을 용납하지 않는 권력과 자기성찰이 없는 패권의 독주는, 결코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큰 그림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關河空鎖祖龍居(관하공쇄조룡거)
함곡관과 황하가 황궁을 헛되이 지킬 뿐


함곡관은 지금의 하남성 신안현 동쪽에 있는 관문이다. 낙양의 서쪽에 있어서 천하에서 가장 험한 관문으로 불린다. 진나라에서 산동 6국으로 통하는 문이기도 하다. 황하는 중국 북부를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강이다. 진나라의 영토로 들어온 강이다. 함곡관과 황하는 천하를 제패했던 진시황의 땅을 상징한다. 황제가 차지했던 그 관문과 강은, 조룡(진시황의 별칭)이 살던 황궁을 헛되이 가둬놓고 있을 뿐이다. 언론과 인문이 사라진 나라에선 생동(生動)도 확장도 있을 수 없다. 영토는 막연히 땅이 아니라, 인심(人心)과 문물이 넘실대는 번창의 영역이란 말이다.

坑灰未冷東龍亂(갱회미랭동룡란)
구덩이의 재가 식기도 전에 산동에 반란 일어났다


갱회(坑灰)는 언론인과 학자를 가둔 구덩이와, 책을 불태운 잿더미를 말한다. 그 주검들이 식기도 전에 그리고 불태운 책의 기운이 식기도 전에 동쪽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민심의 동요를 업고 또다른 권력을 꿈꾸는 세력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미랭(未冷)이다. 거대한 권력이었는지라, 그 수명이 오래갈 것 같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며 예고도 없다. 거대한 제국이 순식간에 반란에 휩싸인다.

劉項元來不讀書(류항원래부독서)
유방과 항우도 본디 책을 읽지는 않았거늘


승상 이사는 '유학을 하는 선비들이 말만 꺼내면 옛 일을 들먹이며 현실을 비판한다'고 문제삼았지만 책을 붙들고 씨름하는 그들이 진나라의 '위험'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책을 읽고 논리를 세워 왕도를 주문하는 이들은, 오히려 제국을 완성하고자 하는 충정을 지닌 이들로 볼 수 있다. 민심의 이반을 틈타 황제에게 칼을 겨눈 이들은, '부독서(不讀書)'로 자기 성찰이 없으며 오히려 기회만을 읽는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진나라는 그렇게 망하지 않았는가. 장갈은 인문과 이성을 도외시하고, 체제를 순정(純正)하게 정리하고자 했던 권력의 욕망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우렁차게 일갈해준다. 당나라 문흥(文興)의 기반을 예찬하는 반어이기도 하다.
왕싱이 올린 시는, 권력의 힘으로 많은 사람들의 이성과 본성이 이룩하는 사회시스템과 언론을 제어하고 변경하고자 하는 역사적 충동들에 대한 경고를 담은 시이기도 하다. 어디 중국만 해당되는 일이겠는가.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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