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순 칼럼] 내년 대선, '외교 독트린' 대결을 제안함

이백순 법률번인 율촌 고문(전 호주, 미얀마 대사)입력 : 2021-04-18 17:04
 

[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


우리나라의 역대 정권은 주변국과의 관계에 있어 대통령이 직접 나서 불필요하고 파격적인 발언과 행동을 함으로써 외교에 큰 장애를 초래하는 소위 ‘외교 파문’을 종종 일으켰다. 노무현 정부 때에는 대통령이 "미국에 바른말 좀 하면 어떠냐? 다른 것은 다 깽판 쳐도 남북관계만 잘하면 된다"는 발언을 하여 미국 측의 친한 인사들마저 경악하게 만들었다. 이명박 정부 때는 임기 말년에 대통령이 직접 독도를 전격 방문함으로써 일본 측은 한국이 금지선을 넘어섰다고 여기고 그 이후 한국에 대해 강경 대응을 하게 하는 실마리를 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중국의 전승기념일에 천안문 성루 위에서 시진핑, 푸틴과 나란히 서서 열병식을 참관함으로써 한국이 중국에 심하게 기울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전 세계에 던졌다.

보통 대통령의 발언과 행보는 사전에 정책부서와 참모들 간 장시간 토론과 검토를 거쳐 그 발언 한 마디와 행보 한 걸음도 다 정확하게 계산되고 연출되어 행해진다. 그래서 각국 정상들의 발언과 행보는 한번 행해지면 그 파급효과가 엄청나며 그 나라에 대한 주변국의 인식 속에 되돌릴 수 없는 각인을 새기는 효과를 가진다. 이러니 국가 정상의 발언과 행보는 강력한 메시지를 상대국에 전달할 필요가 있을 때 마지막 수단으로 사용되어야 하는 최종 병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앞서 예를 든 우리 대통령들의 발언과 행보는 신중하게 계산되어 행해진 것이 아닌, 일종의 국내 지지층에 대한 보여주기식 행보였기에 외교적으로는 큰 충격을 준 ‘외교 파문(diplomatic blunder)’에 가까웠다. 이로 인해 우리 외교의 선택지가 좁아지고 주변국과의 관계가 경색되어 국가적으로 상당한 비용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사실 국내정치적으로도 얼마나 지지율을 높이는 효과가 있을지 불확실한데도 외교를 국내정치의 볼모로 삼는 경우가 과거에 적지 않았다.

이러한 파문이 반복되는 이유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외교상 중요한 행보가 전략적 차원의 면밀한 검토를 거쳐서 기획되지 않고 국내정치적 관점에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데 기인한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국익을 정확히 계량하기보다는 집권당의 이념적 잣대 또는 감성적 판단에 따라 국익을 주관적으로 규정하고 이에 따라 행동하는 경향이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즉흥적이고 감성적인 발언과 행보는 국내정치적으로 효용성이 있을지 모르지만, 국제적으로는 치명적인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어 극히 자제해야 한다. 국내적으로는 정권이 바뀌고 나면 앞 정권이 했던 경제·사회 정책들은 바꿀 수 있고 따라서 그 부작용을 회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잘못된 외교적 행보는 관련국들의 인식 속에 우리의 부정적 이미지를 깊이 각인시켜 지속적 효과를 낸다. 그래서 한번 잘못된 외교적 행보는 마치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되돌릴 수 없는 효과를 초래한다.

앞으로 우리 외교적 행보와 정책에서 이와 같은 돌출적이고 불연속적인 행태가 나타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 외교 정책 방향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현재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국가 정체성과 국익추구의 현실적 범위를 망각하고 정권이 교체할 때마다 편향된 잣대에 따라 외교정책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좌·우 성향의 정권이 번갈아 집권하면서 자기 지지층 결집 행보에 주력하다 보니 소위 ‘아포리아 현상’, 즉 외교에서 ‘길을 잃어버린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우리 외교에 하나의 명제에 대해 증거와 반증이 번갈아 가며 제시되어서 무엇이 진실이고 옳은 것인지 국내·외적으로 판별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더 이상 이런 즉흥적이고 파격적인 행보가 돌출하지 않도록 우리의 외교 독트린을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만들어 둘 필요가 있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정권의 특성에 따라 정책의 옵션들을 좀 다르게 선택할 수는 있겠지만 우리의 외교가 나아가야 할 큰 방향을 벗어나는 행보와 정책이 나오지 않도록 그 큰 틀에 대해 합의해야 한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각 후보는 자신의 외교 정책에 대한 기본 구상을 독트린 형태로 국민 앞에 제시하고 이를 대선과정에서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대통령에 당선되면 이 외교 독트린을 확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속성 있고 일관성 있게 우리 외교 정책을 집행해 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 간에도 갈등과 분열을 줄일 수 있고 주변국들도 우리의 행보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거나 우리의 의지를 오해하여 한국을 흔들려고 하는 일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외교의 기본 틀이 없으면 주변국의 눈에 우리는 항상 약한 고리로 여겨지고 늘 흔들 수 있는 나라로 보이는 것이다.
 
이백순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독문학과 △주미얀마대사 △국회의장 외교 특임대사 △주호주 대사 

이백순 법률번인 율촌 고문(전 호주, 미얀마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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