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순 칼럼] 국가정체성, 우리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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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순 법률번인 율촌 고문(전 호주, 미얀마 대사)
입력 2021-03-10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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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






우리나라 외교를 걱정하는 많은 사람들이 하는 말이 한국외교는 어디를 향해 나아가는지 방향성이 없어 보인다는 말을 한다. 우리나라는 정권이 교체되면 외교정책 방향이 크게 선회하여 외국에서 보기에는 좌·우로 갈지자걸음을 하는 것 같다는 말도 들린다. 그리고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우리가 미·중 간에 안미경중(安美經中)으로 표현되는 등거리외교를 계속해 나갈 수 없는 여건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도 이런 양다리 걸치기를 외교의 원칙처럼 거론하면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국제 현안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유지하거나 우리 국익과 직결된 문제에 대해서도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각국들의 눈치를 살피며 저자세를 유지하는 모습이 우리에게 일상화되고 있다.

물론 외교에서는 일도양단 식의 명쾌함이 오히려 독이 되고 이분법적인 선택이 심각한 후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에 협상에서도 ‘건설적인 모호성’을 담은 표현이 자주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모호성도 외부적으로 자국의 입장을 명시적으로 다 밝히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고려에서 나온 것일 뿐, 자국의 명확한 입장은 속 깊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국익에 대한 깊은 성찰과 숙의 끝에 우리가 양보할 수 없는 국익의 하한선과 우리가 추구해야 할 상한선을 정해야 한다. 이 국익의 범위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없기에 우리 외교가 흔들리는 것이라는 진단을 할 수 있다.

한 개인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성찰을 하고 이 성찰 위에 자신의 행동기준을 설정한 다음 이에 맞춰 언행일치를 보일 때 주변에서 줏대 있는 인간이란 평가를 받게 된다. 국가도 개인과 마찬가지로 국가 정체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하고 이에 입각하여 자국의 외교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견고하게 추진해 나갈 때 외국에서 이런 나라를 쉽게 흔들 수 없는 나라로 인식하게 된다. 역으로 이런 정체성이 결여되거나 국민 간에 외교방향에 대한 합의를 이루지 못하여 불규칙적인 행보를 보이는 나라들을 외국이 가벼이 보고 이런 나라를 더 흔들어서 자국 쪽으로 끌어오려고 생각하게 만든다.

외부의 도전이 더욱 거세지는 이 시점에 우리도 국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더 깊이 하여 우리 외교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끌어낼 필요가 있다. 국가 정체성(national identity)이란 어떤 국가가 가지는 지정학적 여건, 그 국가의 군사·경제적 능력, 그 국가가 지향하는 목표, 외국이 그 나라에 대해 가지는 인식 등이 종합되어서 도출되는 그 나라만의 성격이라 말할 수 있다. 사람마다 그 개성이 다르듯이 모든 국가도 외국과 다른 그 나라만의 특성이 있는데, 이를 국가 정체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한국은 어떤 정체성을 가진 나라인지를 앞서 말한 4가지 잣대에 견주어 도출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한국은 지정학적으로는 반도국이자 중추국이라 할 수 있다. 반도국이란 대륙과 해양 사이에 존재하는 한반도라는 지리적 특성에서 나오는 변경할 수 없는 숙명이다. 중추국이란 반도국 중에서도 주변 강대국들의 이익이 교차하는 지역에 있어 그 반도가 어느 국가와 가깝게 지내느냐에 따라 주변국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에 있는 나라를 지칭한다.

둘째, 한국은 능력면에서 5000만 인구에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추고 있어 강중국의 범주에 든다. 그리고 국제사회에서는 다른 개도국들에 지원도 해주면서 나름대로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는 중견국(middle power)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셋째, 우리는 지역평화를 추구하고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는 분단국이다. 우리나라는 모든 나라의 친구가 되고 어떤 나라도 우리의 적으로 만들기를 바라지 않는 평화애호국이다. 한국은 지난 70년간 유지되어온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에 큰 혜택을 받고 성장한 국가로서, 현 질서를 유지하는 편이 유리한 현상유지국이다.

넷째, 우리나라는 기술과 문화면에서 혁신적 면모를 보여주면서 국제사회로부터 기술과 문화를 선도하는 선도국·매력국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국제무대에서 강대국들의 논리와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강대국 간, 그리고 선진국과 개도국 간 입장을 조율해 줄 수 있는 교량국 역할을 해야 한다는 기대를 받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국가 정체성은 크게 10개로 압축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외교는 이 같은 10개 특성에 기반하여 수행되어야 한다. 즉, 우리는 강중국에다 선도국으로서 자신감을 가지고 국제문제에 우리의 입장과 국익을 개진해 나가야 한다. 또한 강대국 경쟁에 끌려 들어가기보다는 중견국들과 연합하여 강대국 사이에 완충지대를 설정해 나가야 한다. 가능하면 중추국, 교량국으로서 전략적 입지를 활용하여 강대국의 대립을 완화·중재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 국제무대에서 현 국제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 평화애호국으로서 동북아 다자협력을 강화하고 분단을 극복하기 위해 남북한 화해·협력을 추진해야 한다. 한편 현상유지국으로서 현상을 변경하거나 평화를 교란하는 국가에는 다른 나라와 연대하여 대항하여야 한다. 선도국·매력국으로서 우리의 기술과 문화가 세계에 널리 퍼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국가 정체성에 입각하여 외교가 나아갈 방향을 위와 같이 설정해 놓은 다음에는 흔들리지 않고 이 길을 걸어가야 한다. ‘역사는 반복하지는 않지만 변주한다’는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우리가 정체성을 망각하면 우리는 과거의 시련을 다시 겪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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