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휘 칼럼] 美中 반도체 전쟁, 한국과 대만이 '어부지리'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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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2021-04-08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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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반도체 산업이 미·중 패권 경쟁의 새로운 전장으로 떠올랐다. 오는 12일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과 브라이언 디즈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은 반도체 부족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제너럴 모터스(GM), 글로벌파운드리, 삼성전자 등을 백악관으로 초청하였다. 국가안보보좌관이 이 회의 공동 개최자라는 사실은 반도체가 이제 경제 문제를 넘어 안보 문제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도체에 대한 미국 정부의 우려는 지난 2월 24일 ‘미국의 공급망’에 대한 행정명령에 반영되어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를 포함한 희토류, 의약품, 고용량 배터리 등 4개 품목의 공급망을 100일 동안 우선 점검하고, 국방·공중보건·IT·에너지·운송·농산물 및 식품생산 공급망 등 6개 분야에 대해서는 1년간 검토할 것을 지시하였다. 반도체 공급이 제한되면서 자동차 공장의 가동 중단이 심각해져 백악관이 서둘러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미국 정부가 노력한다고 해서 차량용 반도체 품귀 현상이 바로 해소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이달 미국반도체협회(SIA)가 보스턴컨설팅그룹(BCG)과 함께 발간한 '불확실성 시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강화'를 보면, 반도체 생산과정 전체를 수직 계열화한 회사는 물론 국가도 없다. 반도체 무역액이 반도체 판매액의 4배라는 사실은 반도체 생산과정이 얼마나 다국적인지를 잘 보여준다. 미국이 반도체 수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공급망에 참여하고 있는 120개 이상의 국가들과 협조를 구해야 한다.

반도체 생산과정이 분절화되고 탈집중화되어 있기 때문에 미국이 영향력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초기 투자 비용이 급증하면서 설계와 생산을 모두 하는 종합 반도체 회사(IDM)가 점점 줄어들고, 공장 없이 칩 설계만 하는 설계기업(fabless)과 설계를 하지 않고 공장에서 외주 제작만 도맡는 위탁제조기업(foundry)으로 나누어져 발전을 해왔다. 미국 기업은 전체 부가가치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설계에 집중하면서 부가가치가 낮은 나머지 생산공정을 해외 기업에 위탁해 왔다. 2020년 매출 기준으로 세계 10대 기업 중 IDM은 인텔·삼성·SK하이닉스·마이크론·텍사스인스트루먼츠·인피니온, 설계기업은 브로드컴·퀄컴·엔비디아, 위탁제조기업은 TSMC로 분류되고 있다. 현재 품귀 현상을 겪고 있는 차량용 반도체는 대만의 TSMC가 주로 생산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걸리는 문제는 중국 반도체 기업의 공급과 수요 증가이다. 반도체를 구매하는 전자제품 기업의 본사 소재지 기준으로 미국은 2019년 기준 33%, 중국은 26%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반도체가 제작되는 생산지 기준으로 보면 미국은 19%, 중국은 35%이다. 최종소비자 기준으로는 미국과 중국이 각각 25%, 24%이다. 이 결과를 종합해 보면, 반도체 산업에서 미국과 중국의 격차가 상당히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향후 5년 전망을 보면, 중국 시장이 미국 시장보다 더 유망하다. 이 때문에 미국 기업도 중국 시장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지정학적 갈등도 반도체 공급망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발생한 직후 반도체는 보복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갈등이 증폭되면서 트럼프 행정부는 화웨이를 비롯한 군·민융합 기업에 대한 수출금지를 강화해왔다. 대중 제재는 제3국 기업의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 제한은 물론 중국 기업의 해외 기업 인수·합병 금지로 이어졌다. 중국은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17종 희토류의 대미 수출을 제한하겠다는 위협으로 대응하고 있다. 중국은 9개 광물의 추출, 14개 광물의 제련에서 각각 세계 1위이다. 따라서 중국의 위협이 현실화되면, 반도체 공급망의 교란은 불가피할 것이다. 한·일 분쟁도 무시할 수 없는 위협 요인이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일본은 반도체의 소재·부품·장비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대한(對韓) 제재가 공급망을 교란시킬 경우 한국 기업들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공급망 붕괴에 대비하기 위해 미국은 물론 중국, 일본, 유럽도 자급자족을 위한 산업정책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기술과 세계 최대의 자본을 가진 미국이지만 반도체 리쇼어링 정책을 통해 공급망을 국내에 완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SIA와 BCG는 미국, 중국, 아시아, 유럽이 공급망을 지역화하는 데 선행투자에만 9000억~1조225억 달러, 증분원가로 매년 45억~1250억 달러가 필요할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러한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경우 반도체 가격은 지금보다 35~65% 정도 인상될 것이다.

반도체 경쟁이 첨예화되면, 미국과 중국 모두 이러한 부담을 감수하려고 할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인프라 투자 계획에 따르면 2조2500억 달러 중 500억 달러가 반도체 산업에 배정되었다. 반도체 굴기를 하지 못하면 인공지능, 자율주행, 클라우드 컴퓨팅 등과 같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에서 밀릴 것이라고 우려하는 중국도 반도체를 14차 5개년 규획(2021~25년)의 국가전략과학기술 역량강화 과제에 포함시켰다.

그렇지만 생산과정의 분절화와 탈집중화를 극복하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어느 나라도 완전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따라서 미·중 반도체 경쟁의 승부는 반도체 산업에서 비중이 큰 한국, 대만, 일본, 유럽과 어떻게 연합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들 국가와 공급망을 확대하지 못하는 국가가 경쟁에서 낙오할 가능성이 크다.

이 중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국가는 한국과 대만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의 44%를 생산하고 있으며, TSMC는 세계 최대의 위탁제조기업이다. 현재 10나노 이하의 최첨단 반도체 생산은 대만이 92%, 한국이 8%를 담당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TSMC가 애리조나주, 삼성전자가 텍사스주에 생산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SK하이닉스가 다롄에 있는 인텔의 낸드 메모리 사업부를 인수하는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미·중 반도체 경쟁은 1980년대 말 미·일 반도체 분쟁과 유사한 국면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은 1980년대 무섭게 치고 올라왔던 일본 반도체 산업을 제재하여 주저앉힌 바 있다. 한국과 대만은 미국이 일본이 갈등하는 사이에 반도체 산업을 약진시켰다. 지금처럼 기술개발을 계속 선도한다면, 양국은 이번에도 어부지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왕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외교학과 △런던정경대(LSE) 박사△아주대 국제학부 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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